죽고 또 죽고 또 죽고...
Dec 27, 2022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7
before
after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거기 누구 없나요? 저 좀 도와주세요!”


잎이 딱 두 장 있는 삽수 식물을 사왔는데 그중 잎 하나가 누렇게 뜨고 있습니다. 제 얼굴도 누렇게 떴습니다. SNS를 돌아다니며 급하게 S.O.S를 쳤습니다. 필로덴드론 파스타짜넘(Pilodendron Passtazzanum)*을 처음 들였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 택배 박스를 열자마자 식물에게 감탄사로 인사를 대신했죠. 


“와~. 너 진짜 멋있다!”


식물이 가만히 있는데도 역동적일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필로덴드론 중에서도 파스타짜넘은 남성적인 잎맥과 진녹색의 광택이 매력적인 식물입니다. 무엇보다 잎이 엄청 커지는 식물이기 때문에 그 오라(aura)에 압도되고 맙니다. 1970년대 에콰도르 파스타짜 주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인데, 이름이 어렵다보니 보통 국내 식물집사 사이에선 '짜넘이'로 통합니다. 


하지만 저를 감동시킨 이 식물은 화분에 옮긴 뒤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자 누렇게 시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식물을 키운 지도 얼마 안 되었고, 당시 국내에 처음 수입된 식물이라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잎이 누렇게 변하고 있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지나가던 식물집사 한 분이 정확하게 솔루션을 줬습니다. 


“이 식물들은 땅을 기는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아마 깊은 화분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뿌리가 썩을 수 있어요.”


화분의 깊이는 고사하고, 식물은 흙에 꽂으면 자라는 줄 알았던 때였죠. 지금이었다면 물꽂이를 먼저 해서 잔뿌리를 더 내렸을 겁니다. 그런 삽수 개체를 깊은 화분에 바로 심어버렸으니 잘 자라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뿌리도 많지 않아 흙의 수분과 영양분도 뿌리에게는 버거웠을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습으로 뿌리도 녹고 잎도 시들 수밖에요. 곧바로 작은 화분으로 옮겼습니다. 몇 주 뒤에 식물은 다행히 안정을 찾고 새 뿌리와 새 잎을 내주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대품이 되어 사무실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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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구한 식물이 시들시들할 땐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식물도 보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화분을 옮기다 실수로 떨어트리거나, 식물을 죽이게 되면 실손보험처럼 보장을 받는 겁니다. 이런 상품이 판매되지 말란 법도 없지만 식물의 금전적 가치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큰 의미는 없겠죠. 식물을 금전적 가치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최근의 일이고요. 오래 키운 식물은 식물집사와 정서적인 교감을 이루며 더 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 식물도 처음 ‘우리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일종의 ‘몸살’을 앓습니다. 농장이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자란 식물이 물맛도 다르고 볕도 다른 환경에 적응하려면 당연히 힘이 듭니다. 식물호르몬 중에는 에틸렌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일종의 스트레스 호르몬이죠. 에틸렌 호르몬은 과일을 숙성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관엽식물에게는 꽃과 잎을 시들고 죽게 합니다. 


에틸렌은 다른 말로 식물 성숙 호르몬 또는 스트레스 호르몬(Stress hormone)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에틸렌은 식물체가 상처를 받거나 병원체의 공격을 받았을 때, 또는 가뭄, 산소부족, 냉해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활발하게 만들어지게 되거든요.

아마도 식물체가 각종 스트레스를 받아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면 빨리 과실을 성숙시켜 종자를 남겨서 후대를 기약하고자하는 진화적 전략의 결과가 아닐까 싶네요. 조금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빨리 후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거겠죠. 어쨌거나 모든 생명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유전자의 존속과 번성이니까요.


-이은희,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 ScienceTimes


새로운 환경으로 온 식물에게 적응이 필요한 이유도 택배박스에 실려 이동하는 동안 에틸렌 호르몬을 내뿜으며 생존의 몸부림을 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 식물을 들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어요. 물론 분갈이를 하지 않고, 반그늘에 일주일 정도를 놓아둡니다. 그리고 저만의 식물 보험을 들어놓습니다. 바로 식물의 ‘처음’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입니다. 식물이 가장 건강한 때를 기억하기 위해서죠. 식물은, 식물집사가 처음 식물을 대했을 때 느낀 감탄과 경이로움을 ‘기억하는 힘’으로 자란다고 믿습니다. 


처음에는 건강하던 식물이 어느 순간 마르거나 누렇게 떠서 죽게 되면, 싱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럴 때 저는 처음 식물이 들어온 날의 사진을 다시 꺼내 봅니다. “아, 이땐 이 잎이 없었구나.” “그땐 반점도 없었네?” 하는 식으로 비교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관리를 하는 것이죠. 결국 ‘식물보험’이란 ‘관심’의 다른 이름인 듯합니다. 관심이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와~. 너 진짜 멋있다!”


바로 처음 식물을 만났을 때의 마음! 초심을 유지한다면 그것이 식물에 대한 관심일 테고 또 그것이 식물집사에게는 유일한 ‘식물보험’일 겁니다. 




* 이 종이 처음 국내에 수입되었을 때는 '파스타짜넘'으로 유통되었습니다. 최근에서야 글로리오섬과 파스타짜넘의 교배종인 '필로덴드론 맥도웰'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편의상 ‘파스타짜넘’으로 합니다.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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