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높은 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해 보면서 튀어나오는 현실적 제약에 발목을 계속 잡히면서 일해야 할 수도 있고, 결정권자가 클라이언트가 아닌 제 3의 인물일 때도 있고, 클라이언트의 이상이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경우도 있고 아주 다양하죠! 그래서 오늘은 맡기 까다로운 일, 그 중에서도 결과를 내기 어려워 보이는 답 없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일하는 게 좋을지를 다뤄보았습니다.

 

*이 글은 제가 지금 전혀 노답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쓸 수 있었습니다. 사…사랑합니다, 제게 일을 주시는 모든 분들😚

내일: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일도 종종 맡게 되잖아요. 가령 마케터라면, 나는 그 상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을 거 같은데 팔아내야만 하는 경우요. 그럴 때 레디는 어떻게 해요?

 

레디: 좀 막막하지만 그럴 땐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포인트를 잡아야해. 예를들어 비타민이라고 쳐 봐. 비타민이 얼마나 다르겠어. 그럼에도 사고 싶게 만드는 포인트를 만드는 게 마케터의 역량이야. 물론 욕이 나오겠지. 어쩔 수 없어. 그게 일이야. 팔아야해.

 

한 업체 사례를 살펴보면, 업계 1위 제품이 아니었는데 타사 대비 경쟁력이 있는 부분을 어떻게든 잡아야 했어. 그런데 그게 뚜렷하지 않아서 프로모션 밖에는 답이 없었어. 그렇다고 늘 프로모션을 할 순 없으니 다른 곳에서 프로모션을 하면 또 밀리고, 다시 프로모션을 하면 또 올라오고 이런 사이클이 돌아가겠지? 그래서 방법을 찾다가 제품 자체의 매력을 만들어 내려고 캐릭터 콜라보를 자주 진행하게 됐다고 해.

 

그런 게 마케터가 찾아야 할 방법이야. 핵심 기술, 핵심 기능 자체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디자인을 타겟에 맞추거나, 가격전략을 다시 짜거나, 스토리텔링으로 공감 포인트를 잡거나, 그 어떤 방법을 써서든 메리트를 만들어 내는 것.

그럼 디자이너나 에디터도 비슷하겠네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직군 대다수가 사실 핵심 제품을 만들기 보다 어떤 아이디어, 제품 들을 잘 다듬어 주는 역할을 많이 하지. 그럴 땐 하나라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컨셉을 잘 잡는 게 경쟁력이자 능력인 것 같아.

 

차별점을 잡고 일부만 보여주는 걸 잘 해야지. 우리가 언론플레이라는 말을 되게 부정적으로 쓰는데 언론플레이는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야.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보여주고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는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 거지. 우리가 제품을 보여줄 때에도 같은 개념을 적용하면 돼.

 

‘잘 안 나올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멈추면 안 되겠네요. 그것보다 더 빛나는 포인트를 만들어서 앞에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맞아. 하지만 제품의 퀄리티 측면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이 납득이 안 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럴땐 상황을 따져봐야 할 거 같아.

 

아, 요구대로 하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거 같을 때를 얘기하시는 거죠?

 

응. 이럴 때는 두가지 방법이 있어. 첫번째로 내가 이 사람을 설득해서라도 좋은 아웃풋을 내겠다는 각오, 장인정신, 내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때는 그냥 관철 시키는 거야. 경력이 많으면 비교적 잘 할 수 있지. 이 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

 

음, 클라이언트 보다도 유사한 시장을 대응한 경력이 많거나 전에 비슷한 일을 맡았다면 쉽겠네요.

 

거기에 이 사람도 내 실력을 인정 해 주면 쉽지. 내 일이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수록 어떻게든 뜻을 관철시키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랬고. 그래서 한 번 해 보는 걸 말리진 않는데, 많은 경험을 하다보면 어느새 지쳐서 두번째 방법을 택하게 될 거야.

 

두번째 방법은 뭔가요?

 

상대방이 요구한 수준과 퀄리티만큼만 해주는 거야. 하다 보면, 고집을 부려서 정말 ‘내 일’, ‘내 레퍼런스’ 처럼 생각해서 할 일인지, 아니면 그냥 기대한 만큼만 할 일인지 알게 돼. 아무리 우겨도 통과되지 않을 일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거든. 근데 이건 나도 오래 일하면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주게 된 거라서 처음부터 그러긴 어려운 거 같더라.

 

이 얘기를 하면 좀 더 이해가 될 거 같아. 한 디자이너 어머니가 동네 모임에서 장이 되신 모양이야. 현수막을 제작해 달라고 해서 열심히 만들어 드렸대. 그런데 결국엔 궁서체로 글씨를 바꿔달라고 하셨다는 거야. 그렇게 바꿔간 그 현수막을 모임에 있는 분들이 모두 좋아하셨고. 자기 눈엔 너무 이상했지만 의뢰자들의 시선에는 좋은 거지. 의뢰를 맡긴 아버지는 타겟에 속해있는 사람이니까, 몇년차의 디자인 경력보다도 클라이언트의 취향이 더 중요할 수 있는거지.

 

그러니까 우리는 자만할 필요가 없어. ‘그 시장에서 안 먹힐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클라이언트야말로 그 시장의 공감 포인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 수 있어. 클라이언트가 강력하게 원할 때는 또 그 나름이 이유가 있는 거고.

 

레디도 예전에 싸워가면서 일을 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맞아. (웃음) 내 인생 처음으로 브로셔를 맡았을 때 그랬어. 클라이언트분은 업계에서 마케팅만 30년을 하신 분이었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예전 방식인 거 같아 보였어. 카피도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하나 하나 문맥이 안 맞는 문장도 많았지. 안에 있는 내용을 도저히 뜯지 않을 수 없어서 정말 싸워가면서 했어.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어요? 그 분이 고집을 꺾으셨나요?

 

그 분이 자기가 마케팅을 30년을 했는데, 나한테 왜 이렇게 고집부리냐고 하셨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러니까 시키신 대로만 하면 저도 편한데 왜 이러고 있겠느냐고. 제가 말씀 드리는 방향이 더 나으니까 그런 게 아니냐고. 그래서 결국엔 설득이 됐어.

그게 한 5년 전 일인데 지금이라면 그렇게 대대적으로 고치지는 않았을 거 같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없는 수준이었어. 그런데 나는 그 사소한 것도 용납을 못했던 거야. 내 인생 첫 브로셔라는 것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 분은 또 내심 잘 맡겼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긴 하겠네요. 좀 신경쓰게 만든다고 생각하셨을 순 있겠지만.

 

그랬을 수도 있지. 맡기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작은 일일 수도 있어. 내부에서 해도 되지만 여유가 없어서 그냥 기한 안에 받기만 하려고 맡긴 작은 외주일 수 있잖아. 그럴 때도 고집을 부리면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려울 거야.

 

처음엔 고집 부릴 것과 아닌 것의 분간이 잘 안 되지만 경험을 하다보면 알아. 그리고 점점 더 노련해 질 수 있고.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모험을 할까 하다가 업계 관행도 있고 이 분야에 대한 경험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내가 너무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게 좋겠더라고. 최대한 수용하고, 안전한 포맷 안에서 카피와 컨셉에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던 기억이 있어.

 

아, 그리고 점점 욕심을 내려놓게 되는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일을 기획하고 만들고 집행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잖아요. 나는 굉장히 큰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일의 결과를 내는데는 좀 더 조직적인 프로세스를 원활하게 돌리는게 더 중요하고요.

 

맞아. 그래서 의외로 큰 결과 차이는 없어. 사실 마감 잘 지키고 원하는 정도의 퀄리티를 내는 것 만으로 충분해. 물론 나의 모든 능력을 인정해줘서 같이 걸작을 만들어보자고 하면 그렇게 하는 거고.

 

하지만 대체로 너가 말한 것처럼 한 단위의 일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 일의 결과에 까지 큰 영향을 주기 힘들어. 뭔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만들고 싶다면 회사나 팀에 들어가는 것도 추천해.

 

어느 정도까지 해야 만족을 느낄지가 중요하겠네요. 레디는 왜 안 들어갔어요?

 

컨설팅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걸 보는 즐거움이 컸거든. 내 얘기를 듣고 방법을 찾아서 자리를 잡고 그들이 만족스러워 하고 고마워하는거, 그게 가장 좋은 일의 동력이 되는 듯 해.

 

아마 나처럼 무언가를 하면서 ‘음, 이건 안 될 거 같아.’ 라든가 ‘이건 하기 싫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의 기준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할 거야. 뭔가가 있다는 거거든. 자기가 생각했을 때 될 것 같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말이야.

 

어차피 받은 일이고 물릴 수 없기 때문에 고민하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일단 하고 자기가 생각했을 때 만족스러운 일이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려서 함께 병행해 보는 것도 방법이야. 참고 노력해서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멋지게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지겠지. 단순히 남의 일을 받는 게 아니라, 내 일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럼에도 감당할 수 있으면 질러보면서 한 번 이끌어 보기도 해 봐. 그렇게 해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또 다른 방식을 시도 해보고. 회사에 들어가거나 같이 할 수 있는 팀을 찾아볼 수도 있지. 그러다보면 차츰 나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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