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옷을 사면서 마음이 불편한 이유
나나     "올해 트렌치코트 1주일은 입을 수 있으려나"

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매월 초 레터로 인사를 드리고 있네요! 저는 한 달의 첫 주를 정말 좋아합니다. 카드 실적이 갱신되는 시점이라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쇼핑을 할 수 있거든요.(그저 아이쇼핑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의 무게감이 달라요)


특히 요즘은 2024 F/W 시즌 패션위크 시기에요. 관심 있는 브랜드들의 새로운 컬렉션 소식과 셀럽들의 재미있는 아웃핏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어 눈이 즐거운 시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레터는 패션 분야에서의 ‘마이크로트렌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1. 온 세상이 카드뉴스다
2. 트렌드가 되는 것이 트렌드
3. 유행은 남일이 될 수 있을까?

📱 온 세상이 카드뉴스다

© Unsplash

제가 가장 많은 스크린타임을 쓰는 앱은 다름 아닌 인스타그램입니다. 유튜브도, 카카오톡도 아니죠. 앞서 말한 제 관심사에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사실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메조미디어에서 매년 발간하는 타겟 리포트에 따르면 20~3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는 단연 인스타그램이거든요.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보면 알고리즘에 따라 재밌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오긴 합니다. 평소에 저장해놓거나 관심을 보였던 콘텐츠 기반으로 제가 흥미를 느만한 것들만 귀신같이 보여주죠. 저의 경우 주로 브랜드 화보나, 취향이 비슷한 인플루언서들의 OOTD 포스팅이 나오는 편입니다.


인스타그램을 처음 쓴 것이 2014년 무렵이었으니, 벌써 저도 10년 차 인스타그램 유저인데요. 최근에 느낀 변화가 있습니다. 부쩍 트렌드를 설명하는 계정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그 트렌드는 패션이기도 하고, 브랜딩이나 마케팅, 문화 예술 등등 분야가 다양합니다. 핫플레이스나 전시 소식을 전하는 홍보&정보성 콘텐츠가 한동안 유행이었다면, 요즘 들어서는 트렌드에 엮어 개인의 생각을 담은 매거진스러운 콘텐츠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예전에는 매거진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글의 비중이 높고, 화보는 그 컨텍스트를 담는 장치이자 디자인적 요소로 기능해왔어요. 그 유명한 ‘보그체’ 또한 텍스트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널리 알려졌죠. 그래서인지 최근의 변화가 더욱 신경 쓰입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카드뉴스와 인스타툰을 통해, 인스타그램은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온갖 분야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비주얼 기반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매거진이 인스타그램 피드화 되는 것도 당연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야는 무엇보다도 패션 트렌드에요.

따로 검색하지 않고, 그저 탐색 탭에서 스크롤을 내리기만 해도 이런 계정의 포스팅들이 추천되더라고요. © Instagram
약 10년 전만 해도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앞서 말한 매거진을 읽거나 블로그 검색 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채널이 너무나 다양해졌어요. 패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소비자 여정을 떠올려볼까요.

어떤 사람이 틱톡을 통해 특정 컨셉의 분위기(예를 들어, 발레코어)와 친숙해진다고 칩시다. 이 사람이 발레코어에 관심을 갖게 되면 유튜브로 발레코어 패션 하울을 올리는 크리에이터의 겟레디윗미(GRWM) 영상을 시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스타그램의 관심사 타겟팅까지 적용된다면 추천 탭에서 발레코어와 관련된 아이템들이 계속 노출되겠죠. 좀 더 적극적으로 발레코어를 소비하고 싶어지면, 핀터레스트를 통해 발레코어를 검색해 직접 무드보드를 만들고,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상품을 구매하게 될 겁니다.
‘balletcore outfits’ 검색 결과 © Pinterest

제가 상상한 이 ‘소비자 여정’이 너무 모범적이거나, 과장된 사례라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이 모든 건 하루 만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소비자가 이 모든 채널을 활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마케터이기 전에 한명의 소비자로서 이런 여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쇼핑한다고 단언할 수 없어요.


때로는 마음에 드는 상품이나, 관심은 있지만 아직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제품이 아니면 저장해놓고 더 좋은 물건이 알고리즘에 뜨기를 기다릴 때도 있거든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 보기 전에는 자연스레 유튜버와 같은 인플루언서들 콘텐츠를 찾아보게 되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케터가… 많이 보고 다니는 만큼 돈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패션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채널들이 다양해지고, 또 광고매체로서의 영향력도 커지다 보니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로 패션에 역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패션 트렌드는 예전처럼 패션 하우스들의 영향력만으로 생성되지 않아요.


지금의 트렌드는 틱톡과 브이로그 등을 통해 스타일링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핀터레스트를 통해 개인이 원하는 룩과 무드를 가진 사람들의 이미지를 수집하며 더욱 구체적으로 욕망하게 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확산되다 보면 OO코어로 명명되겠죠. 흔히 쓰이는 ‘추구미’라는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적으로 추구하는 대상 그 자체와 동일해지지는 않아도, 비슷한 무드를 복제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요. 

🛍️ 트렌드가 되는 것이 트렌드

흔히 트렌드가 정점을 찍으면 그 반대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니백 유행이 빅백으로 바뀌고, 하이라이즈 바지 대신 로우라이즈가 유행하게 된다고들 하죠.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이런 트렌드의 흐름이 어쩌다 한번 옷을 사면 되는 정도로 바뀌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하나의 트렌드가 빠른 것에 그치지 않고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기까지 합니다.


패션 트렌드, 특히 OO코어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던 구운김 에디터의 지난 레터를 기억하시나요?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2023년에도 슬슬 뇌절이 아닌가 싶었던 발레코어(ballet core)는 ‘걸코어(girl core)’로 진화해 그 흐름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고, 동시에 긱시크(geek chic), 그랜파코어(grandpa core), 90년대 미니멀리즘, 빈티지&워크웨어 유행까지 온갖 코어(core)들이 작년에 이어 패션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코어'가 총정리된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런던 V&A 뮤지엄의 페이지를 참고해보세요)


여기에 팬츠리스나 피치퍼즈같은 아웃핏 관련 키워드까지 더하면 정말이지 마이크로 트렌드의 시대가 아니라고 할 수 없어요. 하나하나 영향력이 있는 트렌드지만, 또 모두가 인지하고 따르려고 할 정도로 거대한 트렌드는 아니라는 점에서요. 그래서인지 예전에 비하면 팬톤 컬러의 영향력도 작아진 것 같고요.

브랜드 별로 비슷한 듯, 각자의 세계관이 뚜렷합니다. ©  British VOGUE

요즘 같은 상황을 빗대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고 표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트렌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트렌드가 워낙 개인화되어서, 어찌 보면 트렌드가 없어 보이는 게 맞을지도 모르는데요. 어떤 ‘페르소나’를 연출하는 것 자체가 현재의 트렌드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마치 배우가 맡은 캐릭터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죠. 그 페르소나를 누군가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컨셉’으로 확산한다는 점에서 각자의 영역에 트렌드는 반드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렌드를 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마이크로 트렌드’에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냥 유행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한 시즌에 너무나도 다양한 갈래의 스타일들이 존재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요


그래서인지 패션 관련 크리에이터들이 연말연시에 내놓는 콘텐츠들은 반응이 좋습니다. 특히 내가 따르는 트렌드가 아직 유효한지, 아닌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을 위해 정리해 주는 콘텐츠들이 자주 보이더라고요. 자신이 작년에 구매한 아이템들이 올해 ‘유효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안도하는 댓글들에 공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유행 아이템들을 정리해주곤 합니다. © 옆집언니 최실장

🙄 유행은 남일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마이크로트렌드의 본질은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에 있다고 봐요. 하나하나 다 따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요. 분명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게 말처럼 쉽던가요? 까다롭게 취향을 만들어온 사람은 이런 상황을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더라도, 세상은 소비자를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보여주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온라인 채널에서 그런 유혹을 기적같이 피하더라도 오프라인 매장에 옷을 사러 나갔을 때 ‘유행템’만 팔고 있다면 어떨까요. 딱히 입고 싶지 않은 크롭티나 로우라이즈 스키니진뿐이라면요. 이런 상황에서는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만 지키면서 사는 게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패션 빅팀(fashion victim - 유행을 좇다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는 사람) 이라는 표현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나오는 ‘코어’의 홍수 속에서는 누구나 실수하게 될 테니까요.
‘패션 빅팀’이라는 표현을 만든 사람은 디자이너 오스카 드 라 렌타라고 알려져 있어요. © 사진 출처

지난 해 SPA 브랜드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성장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탑텐, 유니클로, 스파오 등 SPA 브랜드들이 경기 불황의 여파로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저는 이런 매출의 결과가 단순히 ‘저가 상품을 찾는 소비자 성향’ 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마이크로트렌드가 지배하고 있는 패션계는 SPA 브랜드에게 대목과도 같아요.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좇으려면 SPA 브랜드 구매가 소비자 입장에서 쉽고 빠르니까요.


결국 지금의 트렌드는 의류업계의 문제를 고스란히 재생산하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 빈티지, 구제 의류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결국 선택받는 옷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의류 재고들은 빈곤 지역에 (거의 억지로) 기부되어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는 패션 산업으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하고요. 특히 최근 SPA 브랜드들의 부상으로 헌 옷의 품질이 많이 낮아져 재활용도 어렵습니다.


패션 트렌드를 즐기고 좋아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계속 불편함이 생기는 이유는 결국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모른체 해왔기 때문이겠죠.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즐길 것도 많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또 버려질 것을 생각하면 미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최근에는 이런 것들을 인지한 소비자들이 중고 의류 거래를 하면서, 중고&빈티지 시장 수요가 늘어나고 있죠. 공급자적 시선에서는 각종 소재를 재활용한 디자인들을 내놓는 방법을 주로 활용하고 있고요.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인 미우미우(MIU MIU), 세실리에반센(Cecilie Bahnsen)은 지속 가능한 소재를 활용한 컬렉션을 내놓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지구상에서는 옷들이 포화 상태라, 이렇게 많은 옷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지는 않아요.

코펜하겐 베이스 브랜드 가니(GANNI)의 상품소개 페이지 일부. 가니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어요. © GANNI

2024년은 이제 고작 3월이 되었는데,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트렌드’들이 생겨날까요. 한 명의 패션 애호가로서, 그리고 소비자로서 마냥 즐기기는 어려워요. 살짝, 아니 좀 많이 나중이 걱정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은 경각심들이 모여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며, 남은 패션위크 영상들을 둘러보러 갈게요.

Iris Apfel x H&M

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지난 3월 1일, 패션계의 대모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이 향년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개성 넘치는 아이템과 컬러들로 맥시멀리스트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람인데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H&M과 진행했던 협업 필름을 다시 보니, 언제나 ‘자신의 스타일을 추구하라’던 그녀의 메시지가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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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후니 • 찬비 •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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