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이 오는 것이 느껴지는 2월이다.


예전의 나는 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봄은 오지도 않았는데 매년 부지런하게 태동하는 자연의 기운이 좀 부담되었다. 그 기운이 너무 강하게 다가왔는데, 죽은 줄 알았던 마른 가지에 물이 차고 어느새 무엇보다 아름다운 존재로 바뀌는 모습이 경이롭고 좋으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저것들도 생명이 있다고 매년 부지런히 기다렸다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내 인생은 뭐가 문제가 있어서 꽃을 피우지 않는지 불만이었다. 그래서 어느 해에는 무당들이 나와서 신년운세를 말해주는 유튜브를 매일 들어가서 본적도 많았다. 사주를 보아도 돌아오는 답이 비슷해, 도대체 언제 잘 될지 궁금하고 답답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잘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질투했다. 특히 또래의 연예인들이 좋은 차,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보여줄 때마다 스스로가 초라해져서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뜻하지 않은 시련이 오면 더 괴로웠다. 가정의 불화, 구설수, 싸움 등이 잦아지면서 화풀이 대상을 찾았던 때도 있었다. 친구와 절교하고 극단적으로 생활환경을 바꿨다. 내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마치 환경 탓인듯 행동했다. 갑자기 집을 나와 독립을 했고 혼자 몇 달을 좁은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날 깨달았다. 내가바뀌면 세상이 바뀌겠구나.

그 깨달음의 결과가 궁금해서 불만이나 시기 질투가 올라와도 없는 척 우호적인 태도로 가식적으로 행동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니 입안에 가시가 돋는 느낌이었지만 곧 그 마음이 진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친절하지 않지만 친절한 척, 부지런하지 않아도 부지런한 척 집안을 청소하고 공부에 흥미가 없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 책을 읽었다. 신기하게도 마음에 없어도 일단 행동을 하면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몸과 마음에 좋은 습관을 만들었다.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니 우울한 감정과 시기질투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물론 지금도 종종 좋지 않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지만 예전에 비하면 정말 가끔 희미하게 올라왔다 가라앉는 그런 마음일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올라올 때 자각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떻구나'를 인지하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외주라는 것은 정해진 규칙 없다. 한번에 몰려 들어오기도 하고 한동안 아예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가질 수 없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이정도는 감내해야겠지만 일이 많이 들어올때는 감당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우울이 깊어져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최대한 규칙적인 업무를 일상에 넣고, 1년단위로 크게보면 불규칙해 보이는 일정 사이에서 하루단위의 일상은 규칙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1일주일에 2번은 오전에 꼭 운동을 간다. 창의적인 일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운동은 정말 명약이다. 잡생각을 날리고 몸을 가볍고 튼튼하게 하는 것은 운동밖에 없다. 운동 후 집에 오면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집안 청소를 한다. 가장 중요한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를 끝내고 옷을 차려 입고 마을버스로 몇정거장 안되는 작업실로 향한다.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출퇴근이 없으니 나름대로 느슨하지만 단단한 규칙을 만드니 불안한 마음이 줄어든다. 


이 일상 사이에 마감이 있는 외주를 하면 된다. 정해진 일정을 확인하고 남은 날을 계산해서 부지런하게 작업을 하고 완료된 일들은 담당자가 다음날 바로 확인 할 수 있도록 아침에 예약 메일을 걸어둔다.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작은 수첩을 마련해서 미팅 때나 일정 관리할 때 쓰려고 습관을 들였더니 꽤 유용한 습관이 되었다.


일이 들어오지 않는 시기에는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시기에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만 그릴 수 있기때문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을 해보고 분기별로 새로운 재료를 의무적으로 사서 도전을 해본다. 보통 이 시기에 굿즈를 만들어 예약을 받아 판매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잊어버린다. 주로 패브릭 굿즈를 만드는데, 원단에 들어갈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원단에 얹어 배송을 받으면 하나하나 손으로 잘라야하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노동이 필요하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쓸데 없는 잡생각이 많이 사라진다. 공장을 여러번 가야하기에 강제로 몸을 움직여 활기를 얻기도한다. 


이렇게 수입이 어두운 시기를 견디다보면 어느새 작업 의뢰서에 의뢰서가 들어와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를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심정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