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 <오늘의 나> 그림 기록


032. 2021/10/30 토요

안녕하세요, 00님.

정말정말 오랜만의 레터예요!

봉현읽기를 시작하고 난 뒤 가장 긴 공백이었는데요,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핑계가 아니라...😢
너무 바빠서 글을 단 한 글자도 못 썼답니다.
아니, 노트북을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오늘의 에세이를 읽고,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흑흑
(살아 돌아왔어요.....)

10월이 끝나고 이제 11월이 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늦가을의 틈, 같은 요즘이네요.
11월 중순에는 엔솔로지 출간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기대해주세요 히히)

어제 오늘,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썼는데
하고 싶은 말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너무 많더라구요.
MBTI에 대한 이야기도 할거고,
생일 이야기도, 엄마 이야기도 하려고 해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편지를 기다려주신 00님에게.
응원과 감사함을 전해요.

봉현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프리랜서는 자유롭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 놀고 싶으면 놀고, 평일 약속도 잡을 수 있다. 아무때나 뭔가 할 수 있으며 출근도 퇴근도 내 마음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면 큰일난다. 일하고 싶어도 일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일을 해야할 때가 많다. 일정과 통장 잔고는 언제든 변경될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하며, 출근도 퇴근도 없이 늘 업무모드여야 한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알아서 해야한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다.


프리랜서 8년차.
작가 소개란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라고 적지만 내 수입의 대부분은 그림 일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은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사실 잘 모른다. 가끔 책 표지라던가 내 이름을 걸고 내보이는 작업들도 있긴 하지만.. 70프로 정도는 공개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나 회사 특성상 알릴 수 없거나 내 이름의 흔적도 스치지 않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는 내가 책을 냈는지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가졌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그림이 '언제'까지 '필요'하다, 라는 요구를 할 뿐이다. 나는 그 앞에서 철저히 노동자로써의 업무를 한다.

지난 주 정말 긴 작업을 했다. 수요일 저녁에 시작한 작업은 화요일 아침에서야 끝이 났다. 한번 책상에 앉으면 14시간 정도 앉아있어야 했다. 해가 뜨면 오전에 4-5시간정도 쪽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커피를 물고 책상 앞에 앉았다. 피로 회복제를 두개나 먹은 마지막 날은 28시간동안 깨어 있었고 그 와중에 두달 전에 일한 작업의 추가 수정이 들어왔다. 수정_최종_진짜_정말_제발_최종.jpg 같이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는 작업량. 증식하는 레이어와 계속 커지는 PSD 파일 용량.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면서 이어진 6박 7일의 밤샘 작업. 머리는 떡이 졌고 피부는 푸석하다 못해 갈라졌다. 다크서클이 저만치 내려온 피폐한 내 얼굴. 눈두덩이가 붓고 눈이 시렸다. 급기야 덜덜 떨리는 손의 손가락에는 물집이 생겼고 다리가 퉁퉁 부었다. 주방 싱크대에는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이 나와 있었으며 대용량 커피 컵이 여섯개, 온갖 배달음식의 흔적과 넘쳐 흐르는 쓰레기통. 일주일 전에 널어둔 빨래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집도 나도 엉망진창이었다.

이번에 들어온 일도 일정 대비 말도 안되는 분량이었는데, 클라이언트도 그걸 알기는 하니까 '가능할까요.....?'라고 물어봤다. 이런 질문을 한두번 받은 게 아닌 나의 대답은 정해져있다. '해야죠!' 그렇게 답한 뒤 그 말이 안되는 물리적 시간적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못하겠어요.. 힘들어요.. 무리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이건 일이다. 돈을 받는 일이다. '마감'이 정해져 있다. 반드시 해야한다, 어떻게든. 마감 앞에서는 아무런 핑계도 변명도 필요없다.

물론 당연히, 너무너무너무 힘들다. 밤샘은 하면 할 수록 괴롭다. 비싼 피로회복제를 목구멍에 털어 넣으면 미래의 생명력을 끌어다 쓰는 기분이 든다. 와, 죽겠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그런 투정은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털어놓는다. 그렇게 잠깐 징징거리고 나면 다시 묵묵히 앉아 일할 수 있다. 친구들의 '힘내' '조금만 더' '언젠가 끝날 거야' 같은 뻔한 말이 명대사 마냥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내고 나면, 그 후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입금*을 기다린다.....)

마감을 한 아침, 만세하듯 길게 기지개를 피며 소리를 질렀다. '해냈다, 다했다!' 그러고 10분 뒤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저녁엔 산책을 하고 영화도 봤다. 열흘 만에 필라테스를 하러 갔는데, 뭉친 전완근을 풀고 척추를 재조립하다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반찬과 국을 꺼내 천천히 밥을 먹고 게으르게 누워 쉬었다. 청소를 하고 낮잠도 잤다. 동네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익숙하고 당연하던, 일상이 새삼 감격스럽다.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늘 일정을 계획하고 루틴을 지키되,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것 같다.

의뢰가 없을 땐 불안하고 초조하다. 매달 나가는 고정 지출은 있는데 돈 들어올 곳은 없고, 내가 능력이 없어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그럴 때 일상의 루틴을 스스로 짜내야 한다. 다양한 그림을 그려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저 이런 것도 잘 그립니다' 라고 증명해내야 한다. 매일 조금이라도 글을 써서 원고를 모으며 나중을 대비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정해 바이오 리듬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책과 공허가 가득한 새벽이 찾아온다. 계획적으로 살아야 한다. 자유라는 이름의 게으름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그러다가 일이 들어오면 지난 주처럼 산다. 루틴이고 뭐고 없다. 아침이고 밤이고, 하루의 리듬 따위? 없다. 24시간이라는 단위조차 없어진다. 생각할 겨를도 외로울 틈도 없이 잠시라도 눈 붙일 수 있다면 감사하다. 침대와 책상만을 왔다 갔다 하느라 집을 정돈하거나 살림을 챙길 수가 없어 생활 환경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빠르게 먹고, 길게 그리고, 잠시 자고, 계속 그리는. 단순하고 힘겨운 반복. 그렇게 멍하니 달릴 뿐이다.

아니, 대체 왜 일은 몰리는 것일까? 한달에 두개 정도 적당히 나눠서 들어오면,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얽매이며 매달 안정적 수입을 계산하고 일정을 계획할 텐데... 일은 없으면 한없이 없고, 있으면 숨막히도록 몰린다. 이 현실이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다. 포기했다. 상황에 맞춰, 여건이 되는데로, 나를 끼워맞춰야 한다. 그래, 돈 버는 일이 쉬울리가 없다.


프리랜서는 P와 J가 동시에 요구된다. 엄격하게 규칙적으로 살아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순발력도 필요하다.

계획적이지만 변화무쌍한 프리랜서..
아니, 이 무슨 현대적이지만 클래식하고, 화려하지만 심플한 소리인가.


내 MBTI는 ENFP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20대까지의 나는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성실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본성으로는 즉흥적이고 유연한 P로 타고 났지만, J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성향을 열심히 습득해온 것 같다. 그래서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MBTI는 INFJ다. (MBTI에 대한 이야기는 할 말이 매우 많기에 다음에 긴 글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에, 나 스스로 규정한 약속들.

매일 조금이라도 글을 쓰기.
일주일에 2번 운동 다녀오기.
다이어리에 일정 기록 꼼꼼히 하기.
자고 일어나는 수면시간 지키기.
마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기.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기.
해낼 수 있다고 믿기.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성실함에 대해 생각한다. 자율적인 삶을, 엄격한 기준을, 명확한 목표를, 최선의 노력을.

일을 하는 것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내 삶에 무언가를 남기는 어떤 결과들을 곱씹는다. 쉼을 가질 때 마냥 게으른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돌보는 것임을 기억한다.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밤샘 작업하는 인간의 변화 과정> 

100일간 매일 '오늘의 나' 그리기를 
그 바쁜 와중에도
빠지지 않고 그렸는데요...

장소와 상황은 그대로인데 
식량의 흔적과 커피잔만 늘어가고 
저는 점점 늙어가다가 나중엔 
사람 몰골이 아니게 되는....ㅠㅠㅠㅋㅋ
웃픈 그림이 모였네요..😂

지금은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후후. 다시 일하는 날을 대비해
다시 건강 챙기고 있습니다.

👩‍💻
프리랜서, 직장인, 일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누구든.
우리 모두 화이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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