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계정을 포트폴리오로 쓰면서 일 문의를 디엠으로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디엠으로 오는 일 문의를 별로 반가워하지는 않는데, 디엠으로 오는 일은 나중에 일 관련 사항을 찾기에 어렵고 공적인 대화를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느낌이라 일의 중한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없기때문이다. 디엠도 그렇지만 이메일로 받는 일도 부족한 설명이 많고 여러 번 되물어보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일 자체가 힘들어지는 경험을 하니 이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을 해보니 일을 주는 업체 쪽에서 체계가 없는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받는 사람의 수동적인 태도도 문제라고 느껴 2021년 여름에 의뢰서를 만들었다. 구글폼으로 간단한 양식을 만들어 의뢰를 하고자하는 사람이 의뢰서의 항목을 작성하면 답신을 보내는 구조였다. 의뢰서를 만들고 나서는 바로 일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의뢰서라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의뢰서에는 공지사항과 진행 과정,응답에 걸리는 평균 시간 등을 썼고 그동안 했던 일을 목차로 만들어 나열했다. 21년 이후 수정과 추가를 반복했지만 기본적인 항목은 변함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1. 의뢰인 성함
  2. 전화번호
  3. 이메일주소
  4. 사업장이름과 전화번호
  5. 작업이 필요한 분야
  6. 작업이 필요한 세부분야
  7. 작업 필요 요소
  8. 사용권 독점과 비독점
  9. 계약서 준비 여부
  10. 이미지 사용 기간
  11. 필요한 파일 형태
  12. 프로젝트 예산 
  13. 이미지 수량 및 사이즈
  14. 작업 주제
  15. 작업 콘셉트 방향
  16. 작업 납품 기한
  17. 작업 공개 예정일
  18. 미팅 여부
  19. 기타 사항


위와 같은 항목을 만들고 채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을 해보니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항목이기도 했고 매번 오는 메일에 항목을 적어 답신을 보내는 것보다 바로 의뢰서로 받는 게 더 수월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저 항목 중에 정해진 것이 없으면 일을 의뢰할 수 없기 때문에 확정되지 않은 일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자세한 형식은 링크를 통해 확인 할 수있다.

의뢰서 주소: https://forms.gle/ALVdkSCpiFcZmtFa7


의뢰서를 사용한지 2년정도가 지난 후에 이 의뢰서의 장점을 홍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용을 권했는데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버둥님께서 사용을 하겠다며 먼저 메일을 주셔서 의뢰서를 통해 일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 항목에서 조금씩 더하고 빼면 각 분야 프리랜서들이 사용하기에 좋은 의뢰서를 만들 수 있다. 방송 활동을 하는 타일러씨도 의뢰서를 통해 일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의뢰서는 좀 다른 형태의 의뢰서이다. 스타트업 등에서 종종 쓰던 이벤트 참여 폼 혹은 설문조사 폼인데, 하나의 항목만 화면에 보이고 항목을 넘기면 다른 항목이 나오는 형태이다. 첫 페이지에는 그가 직접 나와서 의뢰에 관련한 사항을 설명하는 동영상이 나온다. 그의 의뢰서도 꽤 좋은 방식이라고 느꼈다. 그가 기획사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어느 기자가 쓴 기사에는 그와 인터뷰하기 위해 의뢰서를 사용했는데 생경했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방송 업계에서 의뢰서를 따로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다.


경험으로 보아 프리랜서가 활동하기에, 한국은 수월한 곳이 아니다.  '빨리 빨리'의 민족답게 일정이 급박한 경우가 많고, 체계가 없고 위계로 사람을 압박하는 곳도 많은 편이라 내부 분위기가 정규직원도 일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기에 때에 따라 외주작가(외부용역)는 그야말로 경우에 따라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내가 챙길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먼저 찾아야지만 그나마 본전을 챙길 수 있다. 은은하게 깔려있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의뢰서를 만들어 사전 정보를 받는 것이고, 계약서를 신경 써서 작성하여 미래에 일어날 불상사를 막는 것 밖에는 장치가 없다. 진행하려는 일의 법적인 검토와 비용의 부분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프리랜서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되도록 일 시작 전에 만들어 놓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 의뢰서가 있으면 신뢰를 줄 수 있고 프로답다는 이미지도 줄 수 있다. 


실제로 의뢰서를 통해 의뢰를 준, 편집자와의 인터뷰를 다음 레터에서 소개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