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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연말이다. 하루도 카톡을 그친 적 없던 절친, 세탁기에서 꺼내기 무섭게 다시 입고 나가던 티셔츠, 테이프였다면 진작에 늘어났을 반복 재생한 노래, 겨우겨우 구했던 한정판 키 링, 꼬박꼬박 뿌리던 향수,  골목 어귀에서 눈이 마주치던 고양이. 영원할 것 같던, 영원히 사랑할 것 같던 것들 모두 예고도 없이, 이유도 없이 사라진다. 내심 삶의 축이라 여겼던 그들 일부는 스스로 떠났고,  또 다른 일부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멀리 어딘가로 보내줘 버렸다.
 
‘변치 않는 것’에 대한 평가는 동서고금 어디서나 거룩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기분상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다이내믹한 사계절을 지내다 보면 1년 내내 독야청청한 소나무가 확실히 눈에 띈다. 꽃봉오리가 움트나 싶으면 장마가 드리우고, 은행잎이 떨어지나 싶으면 코끝이 언다. 그리고 내린 눈을 밟아볼 새 없이 다시 도지는 춘곤증. 정신없는 시간의 파도 속에 휩쓸리다 보면 항상 한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암초 같은 존재가 간절해지겠지. 누구나 뭐라도 붙잡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안타깝게도 이것만은 틀림없겠지 하고 붙들고 있던 바위조차도.
 
애초에 무구한 시간 속에서 깎여왔기에 당신의 눈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각의 뒤틀림이 없었다면, 해일의 쓸림이 없었다면 그도, 당신도 그 자리에 없었다. 감히 말하자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 하나뿐이다. 시간은 원망할 새도 없이 흐른다.

그리고 한편 우리는 그 덕에 산다. 시간이 흘러서. 내 마음이 변해서. 모든 것이 바뀌어서. 사멸하지 않는 세포는 암이 되고, 비우지 않은 마음은 강박이 된다. 모든 것을 끌어안으면 모든 것이 내 품 안에서 곪고 썩었을 테지. 유치원 앨범에 쓰인 내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열다섯 살에는 오직 마름만이 예쁨이라고 여겼다. 스물세 살 때는 철석같이 그와 결혼할 줄 알았고, 서른몇 살 때는 여기 나가면 답이 없다며 울면서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올해는 어땠더라? 무엇을 그렇게 확신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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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선언과 함께 시작했던 노래도 내년이면 10년이다. 그동안 시대의 아이콘도 변하고, 어디서는 국경선도 변했다. 그러니 그다음 가사 “결국에 넌 변했지”라는 말은 비난받기 어렵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아서 안타까운 사람이 훨씬 많다. 모처럼 옛 동창과 만나 껄끄러운 뒷맛이 남을 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너무나 옛날 그대로인데 씁쓸함의 이유가 있었다. 마치 과거의 미성숙한 나와 마주하는 불편함.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변하지 않아 낡고 지루해진 생각들.

심지어 아이돌 가사도 변했다. 하염없이 오빠를 부르며 뭐든지 들어주고 싶다던 여자아이들이 이제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고, 야망을 드러내고, 지저분한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변태는 너’라고 말하더라. 이러니 나 하나 달라지는 것쯤이야. 취향에, 감상에 또는 어떤 결심에 꾸준하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놓지 말아야 할 유일한 것은 계속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리고 고이지 않으려고 스스로 흔들리는 마음. 시간은 분명 우리 등을 떠밀지만, 고집스러운 발걸음을 떼는 건 결국 나다. 편안하고 나른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애를 써야 한다. 멈춰서 촉촉하게 과거를 돌아보는 건 꽤 달콤한 일이지만, 불필요한 것을 내보내고 떠나가는 것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때로는 턱이 아릴 만큼 이를 꽉 물어야 한다. 내게 침전시켜야 할 것과 부상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채처럼 열심히 흔들려야 알아차릴 수 있다.
 
결국 삶은 변화 속에서 계속된다. 화가 말고 다른 직업을 모르던 나는 종종 운동 인플루언서라고 불린다. 체육관과 바를 운영하며 책을 냈고, 이따금 여기저기에 글을 쓴다.
 
근육은 크고 두꺼울수록 좋다는 ‘거거익선’의 아름다움을 여자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결혼은 어찌 됐든 남자와 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지금은 그렇다. 내년엔, 또 그다음엔 어떻게 변할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변수를 놓치지 않고 실험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여러 번 실수하고 후회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정반합의 무한한 과정에 있기를. 당신의 새로운 해에도 놀라운 변화가 가득하기를.




Writer 에리카
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칵테일 바 에리카 운영 중.

- <엘르> 2022년, 12월호 발췌




프로는 짜릿해, 지_요주의여성 #75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를 보며 ‘일하는 언니들’을 생각하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어느 분야이든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 보여지는 것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요란하고 화려해 보이는 업종일수록 더욱 그렇죠. tvN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굴지의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메쏘드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연예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있었기에, ‘색다름’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더라고요. ‘프랑스 드라마가 원작’이란 사실을 잊을 만큼 대한민국 연예계를 배경으로 각색된 드라마.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의 앙상블, 회마다 실제 스타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연기를 펼치는 것이 감상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예상외로 제 눈에 들어온 건, 그 속에서 묘사되는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입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역시 메인 캐릭터인 ‘천제인’입니다.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남자친구〉 〈슬기로운 의사생활〉 〈구경이〉 등 출연작마다 깊은 인상을 남겼던 곽선영 배우가 자신의 매력과 역량을 백분 발휘하고 있지요. 극 속에서 천제인 팀장은 명석함과 승부욕을 지닌 경력 14년 차 매니저. ‘잠수 타는’ 배우를 찾으려 절까지 쫓아가거나 스타의 집 담벼락을 뛰어넘는 일은 그에게 예사입니다. 이희준&진선규 배우가 한 작품을 두고 서로 출연하겠다고 신경전을 펼치자 감독과 제작사에 ‘남남 멜로’를 제안하는 절묘한 ‘한 수’를 발휘하기까지! 언제든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워커홀릭’인 그는 연애에 있어서도 저돌적입니다. 맘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직장 옥상에서 ‘딥키스’도 마다치 않는 정열적인 여자.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는 ‘프로 일잘러’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도는 듯합니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천제인 팀장 외에도 메쏘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제각각 다양하고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명예이사인 장명애(심소영)는 평소엔 심드렁해 보이지만 간간이 던지는 ‘촌철살인’ 발언에서 남다른 혜안과 내공이 엿보이는 인물. “식물들 거둘 공간이랑 노후만 보장되면 된다”라고 말하는 50대 미혼 여성을 드라마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지요. 데스크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배우의 꿈을 놓지 않고 호시탐탐 자신을 어필하는 강희선(황세온), 서툴고 미숙하지만 은근히 강단 있는 새내기 직원 소현주(‘동그라미’ 주현영의 연기에 놀람!)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이름난 배우들이 특별 출연한 각각의 에피소드는 ‘배우’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다시 보게 하기도 합니다. 1화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 캐스팅됐다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은 배우 조여정의 이야기가 펼쳐졌고, 4화에서는 수현 배우가 등장해 출산 후 연예계 복귀와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배우의 상황을 그려냈죠. 화려해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직업인으로 겪는 그들의 고민과 애환을 엿보게 합니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에디터로 일하며 배우를 비롯해 연예계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흔히 ‘센 언니’라 불리는 베테랑 배우나 가수들이 얼마나 성실한 직업인들인지 잘 알고 있지요. 마주 보고 앉은 그들이 털어놓는 연약한 속내와 인간적인 고민에 공감한 순간들도 많았어요. 소속사 매니저들은 남자가 많은 편이지만, 간혹 ‘말 잘 통하는’ 여성 매니저를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운 마음이 들던지. 영화 제작사나 홍보사는 여성 직원들이 많기에 ‘프로페셔널’한 언니들의 일 처리를 보면서 배운 점도 많습니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를 보면서 그간 함께 하거나 스쳐 지나갔던 많은 얼굴이 떠올랐어요. 
 
어느 분야이든 여성이 맘껏 일하며 인정받고 일과 삶의 균형까지 맞추며 살기란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지요. ‘일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면모와 고민을 다룬 콘텐츠가 더 많아지길.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필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여성들, 이 땅의 모든 ‘일하는 언니’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Writer 김아름
전 <엘르> 피처&라이프스타일 디렉터 김아름.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으며 책과 영화, 각종 컬처 콘텐츠를 탐닉합니다.
 - <엘르> 2022년, 11월 웹기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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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님과 함께 만든 엘르보이스 편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더 크게 이야기하고 싶은 인생 가사로
만든 엘르보이스 편지를 전달합니다. ✉

<우연을 믿어요> 적재, <도망가자> 선우정아, <이 지금> 아이유
<같이가요> 세븐틴, <에필로그> 아이유, <My Dear> 레드벨벳
<우린> DAY6(Even of Day), <세레머니> 옥상달빛, <balance!> 페퍼톤스

💚아래 아리님들에게 호박아름차를 보내드릴게요💚

  문*리 1994, 정*림 9949, 이*정 2829, 안*영 0187, 최*슬 8817, 양*수 4182, 이*일 2055, 김*영 2442, 문*림 3343, 오*아 4509, 노*향 2535, 이*림 1950, 최*정 8813, 김*영 2927, 강*현 7794, 김*은 1678, 이신 4094, 고*솔 8375, 설*진 4882, 김*경 0382, 홍*수 9182, 강*혜 6755, 허*경 8516, 최*현 7449, 김*주 1477, 김*영 8833, 허*리 1294, 김*영 3449, 유* 5812, 이**연 0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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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반갑게 읽고 있답니다. 한 번 더 발행한다는 것이 받는 입장에서는 쉽지만 제작자 분들은 어려우실 텐데 한 번 더 감사드리고 감사드려요!

*주제가 좋았어요. 특히 와칸다 포에버도 좋고. 우따따 북클럽도 좋았어요. 숨겨진 스토리들을 엘르보이스가 발굴해서 수면 위로 올려주는 게 좋네요~

*인생 가사편이 좋았어요. 잠시 현생에 지쳐서 힘을 줬던 노래도 잊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찾아서 가사를 보니 다시 힘을 얻었네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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