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온라인에서 눈길을 끄는 기사를 봤습니다[1]. (대학 간 경쟁을 부추기는 듯한 자극적인 제목은 못내 걸리지만) 본문에서 나름의 의미 있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카이스트(KAIST) 학생과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의 생존율이 타 대학이나 정부 지원 창업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단순 아이디어 기반이 아닌, 특허나 지적재산권에 기반한 ‘기술 창업’이 핵심 경쟁력.’

카이스트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4년 KAIST 기업가정신진흥원을, 이듬해 6월 KAIST 창업원을 출범했습니다. 다음 달 열 돌을 맞는 KAIST 창업원은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시제품 제작과 투자 자문 등 다양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간 카이스트 출신 스타트업들이 꾸준히 성과를 거두는 데 크고 작은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네 번째 창업원장으로 전기 및 전자공학부의 배현민 교수가 임명됐습니다. 그는 미국과 국내에서 5번의 창업을 잇따라 성공시킨 자타공인 ‘창업 고수’입니다. 기술의 대체 속도, 산업 트렌드의 변화가 점점 짧아지는 이 시대, 기술과 창업의 생존 전략을 찾기 위해 배현민 원장을 만났습니다.
[1] 이호준, 매일경제 기사보러가기 👉(클릭!)


Q. 시작하기도 어렵고 살아남기는 더 어렵다는 창업 시장에서 무려 5번이나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첫 창업을 했던 건 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 지도교수님과 초고속 통신칩을 만들었어요. 초고속 통신칩을 만드는 회사를 두 번 했고, 그다음 부도체를 이용해 전깃줄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어요. 카이스트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가지고 창업한 회사인데, 요즘 보면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2]라고 하잖아요. 데이터센터는 통신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데, 거기서 쓸 수 있는 부도체 케이블을 만드는 겁니다. 도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케이블인데, 지금 그 회사는 미국에 있는 기업들로부터 굉장히 많은 투자도 받았고, 지금 굉장히 유망한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두 회사는 제가 의료 영상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우리 몸을 볼 수 있는 회사를 운영하는데요. 저는 항상 연구는 가치 있는 연구를 해야 된다고 말해요. 그래서 무엇이 가치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저는 인간의 목숨이 가장 가치 있는 것 같아요. 제 전공이 전자공학이다 보니까, 약품을 다루는 그런 영역의 창업은 할 수 없잖아요. 제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 우리의 몸을 볼 수 있는 걸 만들어 보자고 해서 의료 영상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우리 몸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빛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초음파를 이용하는 부분이라 저는 빛이나 초음파를 이용해서 우리 몸을 보는 영상 장비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2]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는 대규모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AWS(아마존웹서비스), MS, 구글 등이 해당한다.


Q. 지난해부터 이끌고 계시는 카이스트 창업원은 어떤 곳인가요?
카이스트는 연구 중심 대학이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패러다임이 무엇이냐. 연구는 목적이 될 수 없고, 인간의 삶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거든요. 그러면 수단을 만들었으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궁극적인 행위는 무엇일까? 그것이 창업이거든요. 그래서 카이스트에서 만들어진 ‘딥테크’ 기술을 창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만든 게 창업원이라는 조직입니다.

딥테크라고 하면 어떤 연구가 수반돼서 과연 이런 것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 과정 자체를 직접 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예측하기 어려운 걸 해내는 게 딥테크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교육적인 백그라운드가 굉장히 커야만 할 수 있는 게 딥테크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딥테크라는 건 어떤 기업도 자본과 조직을 모은다고 해서 쉽게 될 수 없는 것들, 기술적 장벽이라고 하죠. 그래서 그 기술적 장벽을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게 딥테크 창업인데요. 이런 딥테크 창업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냥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그런 형태의 창업입니다. 연구의 힘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고급 인력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저희 카이스트가 가장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이 딥테크 창업의 영역이고요.
<카이스트 창업원 로비에서 인터뷰 중인 모습.
칠판에 AI, 핀테크, 모빌리티 등 기술 및 창업 관련 여러 키워드가 적혀 있다.>
Q. 기술적 장벽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창업은 일반 창업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일반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할 때는 굉장히 많은 경쟁자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쉽게 도태될 수 있어요. 하지만 카이스트에서 창업하는 대부분의 경우 딥테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쉽게 경쟁자가 나타나기 굉장히 어렵고요. 딥테크 창업을 하면 초기부터 투자자들은 많은 가치 평가를 하잖아요. 다른 레퍼런스를 줄 수 있는 사람들한테 문의해서 이 기술이 얼마나 성장 가능성이 있을까를 계속 보죠. 그러니까 기술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고, 이게 시장에서 얼마나 임팩트가 있을 것인가 검증을 한 다음에 회사가 시작됩니다. 기술이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이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미 그 베이스에서 출발을 하고, 그런 회사가 진척을 보이게 되면 투자자들도 계속 모을 수 있고 하다 보니까 오랫동안 생존해서 가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Q. 교수나 학생들이 창업을 시작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 많을 것 같아요.
모든 창업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게 자금을 모으는 거예요. 좀 더 디테일하게 말씀드리면 교수님들은 콘퍼런스에 가서 어떤 연구 결과를 발표하시는 건 너무 익숙해요. 너무나 잘하시고요. 거기에서의 청중들은 그 분야의 전공자들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투자를 얻기 위해서 얘기할 때는 비전공자한테 얘기를 해야 되는데, 비전공자한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비전공자한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창업원이 많이 도와드립니다.

또 다른 부분은, 연구 결과와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의 차이점은 연구를 할 때는 장점만 있으면 결과가 나오지만, 시장에 팔릴 때는 단점이 없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단점을 없애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해야 되는데, 보통 단점이 없다는 건 연구 결과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자꾸 간과하시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도 많이 말씀드리고요.

그다음 연구와 회사의 다른 점은, 연구는 보통 스케줄이 없어요. 연구에도 스케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지 지연될 수 있는 스케줄이에요. ‘이때까지 하자.’라고 했다가 안 되면 6개월 더 하고, 안 되면 6개월 더 하고. 하지만 회사는 시작되는 순간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스케줄은 미룰 수 없는 스케줄이에요. 불확실성이 없는 상태에서, 한정된 자원을 갖고 짤 수 있는 스케줄로 회사가 운영돼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굉장히 주의 깊게 보셔야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출처: 셔터스톡>
Q. 창업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 중심에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효율화를 유지하고 끊임없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진행돼야 해요. 창업할 때 보면 처음에는 엄청난 효율을 갖고, 소수의 인력이 굉장히 큰 시간을 투입하는데, 소수의 인원이 움직이면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쉽거든요, 한 사람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요. 그러니까 효율성을 갖고 이노베이션을 위해서 시간을 쓰는데, 회사가 한번 만들어져서 운영되면 비대해지고 빨리 대응하지 못하게 돼요. 한 가지 일을 여러 명이 하니까, 또 결정을 할 때 위원회를 만들어 진행을 하면서 효율은 계속 떨어지고요. 처음 시작할 때처럼 이노베이션을 하는 것도 좀 약해져 있고. 그러다 보니 계속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효율화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구글이나 애플 같은 조직도 보면 굉장히 비대한 회사지만, 점조직처럼 움직이면서 끊임없는 이노베이션을 하고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구하게끔 만들죠.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큰 회사들은 굉장히 비대해서 정말 빨리 움직이지는 못하는데, 원하는 건 당장 1-2년 안에 돈 벌 수 있는 그런 걸 찾아요. 저렇게 느린 조직이 어떻게 빨리 돈을 벌려고 하지? 뭔가 매칭이 안 되는 거죠. 끊임없는 이노베이션이 이루어지려면, 소수의 똑똑한 인력들이 굉장히 집중하는 모습들이 나타나야 되는데, 그런 부분이 좀 약한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큰 회사들이 성장의 모멘텀, 효율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스타트업을 인수 합병하는 것. 비효율적인 조직이 효율적인 조직을 합병함으로써 전체 조직의 효율성을 어느 정도 향상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을 계속 가지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인수 합병이라는 것 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Q. 요즘 많은 청년들이 취업보다 창업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창업 전망을 어떻게 보세요?
예전에는 창업을 경력 단절이라고 생각하고 ‘망하면 어떡해?’ 이랬는데, 지금은 제도도 많이 보완되고 자기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한국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창업을 하는 상태예요. 카이스트 기준으로 보면, 창업하는 추세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는 한 100개 팀 정도를 저희가 예상하고 있어요. 

다만, 좀 아쉬운 건 우리나라에서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해왔잖아요. 어떻게 보면 국가 발전의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해왔는데, 시장에 업다운이 있다 보니 요즘 보면 힘들게 키워온 벤처 회사들이 자금난에 봉착한 경우들이 굉장히 많아요.

미국 같은 시장은 창업 시장을 완전히 민간 투자 시장에 맡겨놓거든요. 그냥 생태계에 맡겨놓는데, 우리나라는 생태계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LP(Limited Partner, 펀드 출자자)로 참여하는 경우들이 많아요. 국가가 LP로 참여할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시장의 흐름에 업다운이 없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LP로 참여했지만, 막상 자본주의 시장, 벤처캐피털(VC)에 돈을 맡겨놓다 보니까 벤처캐피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또 시장에 따라서 반응을 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안 그래도 되는데 미국처럼 업다운을 겪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 생태계를 만드는 게 목적이잖아요. 미국은 창업한 기업 중에 몇 퍼센트는 생존하고, 기업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통계가 잡힐 수 있을 만큼 성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통계로 잡힐 수 있는 모수가 나오지 않은 상태예요. 여기서 시장의 흐름 때문에 꺾인다고 하면, 건물을 짓다가 중단하는 모습이 될 수 있어서, 결실을 볼 때까지 계속 진행해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생태계가 만들어질 때까지 국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좀 더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한 달 전쯤인 2월 중순 대전 카이스트에서 이뤄졌습니다. 다음 세대에 눈여겨봐야 할 비즈니스 분야를 묻는 미래팀의 질문에 배현민 원장은 헬스케어 산업을 꼽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각종 헬스케어 장비는 또 다른 혁명이라며, 앞으로 이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장 논리는 빠르게 돈을 벌지 못하면 바로 그다음으로 옮겨가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딥테크일 경우, 기술이 쌓여야만 그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결실을 볼 때까지 끊임없이 투자가 이루어지고, 계속 모니터링해서 봐야 합니다.” 기술에 시장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창업 고수의 일침을 마음에 새기며, 이번 주 뉴스테러 마칩니다.
글 : 미래팀 이혜미 기자 (par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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