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강혁진입니다. 

요즘 ‘신박한 정리’를 즐겨봅니다. 짐이 가득한 의뢰인의 집을 방문해 쓰지 않은 짐들을 비우고 가구들을 새롭게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짐에 갇히고 묻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집이 새롭게 탄생하곤 합니다. 

오래된 짐을 버리고 가구의 쓰임새를 최적화하는 과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성취감과 쾌감을 느끼게 해주곤 합니다. (신박한 정리에서 정리를 담당하는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 대표님을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났는데 에너지가 대단하시더라고요.)

작년 가을,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사한 부모님 집을 정리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모님은 큰 집에 사시다가 ⅔ 크기의 집으로 옮기시게 되었습니다. 집 안 구석구석 쓰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하였습니다. 

물건들을 분류하고 비우던 중 오래된 비디오 테이프들을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찍어두신 것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 흔치 않았던 비디오 카메라로 종종 일상을 촬영하셨습니다. 테이프에는 ‘91년 수련회, ‘90년 어머니 회갑’ 등의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재생한 지 2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테이프들을 챙겨왔습니다.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디지털로 변환하고 테이프는 버리기로 했습니다. 마침 찾아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변환업체가 있어 직접 찾아갔습니다 .

8개의 테이프를 변환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원. 거기에 32기가 USB가 만원, 한 테이프는 끊어져 있어 3만원의 수리비를 추가로 내야 복원이 가능했습니다. 24만원을 들여 8개 비디오 테이프의 복원을 부탁했습니다. 

2주의 시간이 지나고 업체에서 택배를 보내왔습니다. 택배를 열어보니 맡겼던 8개의 테이프와 함께 카드형 USB가 배달됐습니다. 부피로 치자면 수십 배는 차이가 날 만한 크기의 작은 메모리에 8개 비디오 테이프의 영상들이 모두 담겨왔습니다. 

USB를 노트북에 연결해 내용물을 확인해봤습니다. 몇 개 테이프에는 ‘천사들의 합창’이나 ‘스머프’같은 옛날 TV 프로그램 들이 녹화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테이프들에는 30년 전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15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던 시절, 일가친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랐던 10살의 저와 제 동생은 무반주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지금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키우고 있는 제 여동생의 그때 모습은 제 조카와 여지없이 닮아 있었습니다. 

외가 식구들과 함께 찾은 바닷가에서 지금의 저보다 나이가 어린 그 당시의 제 부모님은 팔짱을 끼고 웃으며 걷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양가 할머니도 웃으며 건강하게 걷고 계셨죠. 영상들을 확인하다가 저희 아버지가 생각보다 노래하는 걸 좋아하셨고,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아버지의 애창곡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영상들을 보며 한가지 다짐한 게 있습니다. 바로 더 많이 찍는 것입니다. 영상이든 사진이든 더 많이 찍고 남기기로 했습니다. 특히 가족과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들을 더 많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가족 카톡방에 올려주시는 동생 가족들의 사진과 부모님의 사진을 사진첩에 일일이 저장해두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에도 사진과 영상은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찍고 남기는 한 주 되시기 바랄게요. 

다음 주에 뵐게요.

감사합니다. 

인간 강혁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