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그 자체로 괴롭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더 괴롭다. 건빵 봉지 속 별사탕처럼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오기가 생겨 자꾸 목이 말라도 건빵을 먹듯이 괴로운 일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로 업을 삼았다면 내가 그림을 계속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사실 가끔은 그림을 가운데 두고 가격 협상을 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는 사람도 나이고, 파는 사람도 나이기 때문에 세련되게 협상을 하면 나 자신이 너무 장사꾼처럼 느껴지고 작업에 비해 돈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억울해져서 잠이 안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만들기 때문에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은 언제나 있다. 


어릴 때 엄마와 장을 보러 가면 엄마 특유의 구매 방식이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다 비슷한 품목을 놓고 파는 가게가 많아도 나름의 기준으로 오래 거래할 가게를 찾고 다른 곳은 여지도 주지 않고 한 곳에서만 구매를 하기 때문이다. 이건, 식품을 사도 그랬고 옷을 살 때도 인테리어 및 세상의 모든 업자들을 만날 때마다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그 규칙은 ‘자존심’이 센 사람을 찾는 거였다. 같은 일을 해도 진짜 욕심내서 하는 사람은 그 얼굴이 다르다. 같은 물건을 파는 10개의 가게가 있어도 자신이 제일 좋은 물건을 판다는 자부심으로 판매를 하는 사람은 기세가 등등하다. 조금만 이야기해 봐도 알 수 있는데, 사람을 대하는데 걸리는 것이 없고 부드러우며 호쾌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중에 겉으로 보기엔 불친절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부분까지만 까칠한 사람이 대부분이라 엄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물건을 사거나, 같이 일을 하면 뒤탈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건 자세의 문제이다. 20대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일에는 귀천이 없다. 사람의 행동에 귀천이 있을 뿐. 보통 경험으로 ‘내가 사실 이런 일할 사람은 아닌데’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꼭 문제를 만들었다. 자신이 과일이나 팔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 과일을 파는 사람은 그 과일이 신선하지 않고 품질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옷을 사도 그렇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은 품질의 옷을 찾아 파는 사람들은 태도에 ‘내가 옷이나 팔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의 태도가 없다. 그러면 구매자의 입장에서도 판매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되어있다.


'그럴 사람'은 자신의 태도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림이나 그릴 사람이 아닌데 그림을 그려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태도라면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시작부터 기분이 나쁠 것이다. 분명 그 태도로는 내가 거드름을 피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나오는 일을 끝까지 잘 책임지려는 마음은 세상 어떤 일을 해도 다 적용된다. 


 프리랜서 13년차, 엄마가 물건을 사던 가게들의 사장님들의 얼굴이 되어가는지 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