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10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인사 드립니다. 매월 마지막 주의 고독단 북레터는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달의 별색 인터뷰’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10월의 별색 인터뷰 주인공은 등단 50주년을 맞아 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펴낸 정호승 시인입니다👏 (사진 ⓒ 조준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상이 유지되어야 삶이 유지되니까요. 요즘은 신작 시집을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는 쓰지 않고 있어요.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라요. 전에 없던 일이에요. 그래서 시를 쓸 완벽한 시간이 주어지면 또 열심히 시를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생각이 하루속히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마음 큽니다. 그리고 2023년 봄에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 제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옛집 부근에 개관할 제 문학관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시인은 시집이 출간되었을 때 가장 기쁘고 감사하지요. 더구나 이번엔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이라 더욱 감사하고 기쁩니다. 문단에 등단한 지 50년 동안이나 제가 존재할 수 있었고, 또 잘 쓰든 못 쓰든 시를 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절대자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택배가 온다는 것은 이제 누구에게나 일상의 일입니다. 저는 사과나 감, 귤 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청과를 택배로 받을 때가 무척 기쁘답니다. 기쁨이 택배로 온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제게 슬픔이 택배로 왔어요. 그것은 이별이라는 슬픔의 택배였어요. 그것도 죽음을 통한 이별이라는 슬픔의 택배……

시인은 항상 시를 써야 시인이지요. 우리가 항상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듯이 시인은 항상 시를 써야 살 수 있어요. 작고 시인이 아닌 이상 시인은 항상 현재성 속에 존재해요. 예전엔 문학지에 발표한 시를 모아 시집으로 엮었는데 지금은 꼭 그런 방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시집 출간 자체가 신작시를 발표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요. 저는 1987년에 시집 『새벽편지』를 발간할 때부터 시집을 신작시를 발표하는 하나의 장(場)으로 생각하고 줄곧 그렇게 해왔어요.

단 한편만 들라면 표제시가 된 「택배」를 들 수 있겠습니다. 몇편 더 들라면 「낙과(落果)」, 「모과」 등을 들 수 있겠고, 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 「진흙」 등이 제 입장에서는 애착이 갑니다.

진흙이 되어 당신이 찾아오셨다
창밖에 바람은 부는데
내다 엄마다 문 열어라
인터폰을 누르고
찬 바람과 함께 성큼 들어오셨다
당신은 나를 한번 안아주지도 않고
머리에 이고 온 천국의 진흙 한동이
내 아파트 일층 베란다에 붓고
꽃밭을 만드신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머위도 심고 메꽃도 심고 채송화도 심고
어둠이 깃든 창밖을 한참 내다보시다가
다시 진흙이 되어 돌아가신다
가자 이제 엄마하고 같이 가자
나는 신용카드가 든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몇번이나 뒤돌아보다가
아들도 며느리도 출근한 사이에
지갑도 집도 버리고
성큼 당신 뒤를 따른다
이번에는 당신 손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당신 손을 꼭 잡고

제게 있어 시 쓰기란 제 삶의 가치를 찾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제 시가 영혼의 소중한 양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 쓰기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에피소드라기보다 후회되는 일이 더 많아요. 10여 년 전에 대전에서 강연을 마치고 열차 출발에 늦지 않으려고 급히 대전역 가는 택시를 잡고 있는데, 강연을 들은 한 젊은 엄마가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나타나 제 시집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택시를 타느라고 못해드렸어요. 지금도 그 일이 가슴에 큰 잘못으로 남아요. 서울행 기차를 못 타면 다음 기차를 타고 가면 되는데, 제가 왜 아이 둘의 손을 잡고 급히 달려온 독자에게 그렇게 했는지 정말 후회돼요. 참으로 죄송한 일이지요. 그분의 연락처라도 알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사과드리겠지만 연락처를 모르니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사죄드려요.

저는 근년 들어 불교나 가톨릭 등 종교 관련 책 읽기를 좋아해요. 그런 책을 읽다보면 저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봉사의 삶을 살다가 마흔여덟에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전기 『신부 이태석』을 읽고 있어요. 사랑에서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천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저는 무슨 책을 읽든지 읽는 속도가 느려요. 왜냐하면 책을 읽다가 제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는 어떤 시적 발견이나 연상 등을 메모하느라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항상 책상에 똑바로 앉아서 메모하면서 책을 읽어요. 독서에 관련돼 가장 후회되는 일은 지금까지 저만의 ‘독서 노트’를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독서 노트를 썼다면 지금쯤 그 노트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텐데요.

수없이 많지만 우선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20세기의 마지막 영성가로 일컬어지는 헨리 나우웬의 대표적 저서 『탕자의 귀향』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

2022년이라는 시간을 인간인 내가 매듭짓고 마무리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제 문학관 관련 일에 보다 최선을 다하고자 해요. 제가 아직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문학적 평가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 문학관이 개관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자 신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일이에요. 그래서 그 일에 마음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이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신작 시집. 오랜 세월 자신의 시를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꾸린 열네번째 시집입니다. 각박한 이 세상에서 한줄기 위로가 되어 주는 시편들을 만나 보세요.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시인의 대표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수록된 시들을 시인의 낭송으로 만나 보세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시로 알려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포함한 일곱 편의 시를 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