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입니다. <피지컬: 100>은 제 생일이기도 한 1월 24일에 첫 공개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가진 단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체력 게임’을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전부입니다.


처음엔 대체 이런 프로그램 왜 만든 건지, 누가 이런 뻔한 프로그램 재밌어한다고 또 서바이벌, 경쟁경쟁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해 가지 않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모순이 일어난 저의 뇌를 분석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제공하는 원초적인 재미입니다. 쉽게 말해 ‘좋은 구경거리’라는 것입니다. 그 경쟁 자체도 충분한 구경거리인데, 심지어 참가자들의 면면까지 완전 화려합니다. 윤성빈, 양학선, 추성훈 등 각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100명의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평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몸싸움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그 이름만으로 호기심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직 신체 능력으로 한 판 붙는다? 이건 마치 '아이언맨이랑 손오공이 능력 없이 종합격투기 룰로 겨루면 누가 이길까'와 같은 상상이 어느 정도 실현된 쇼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려야 없을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소문난 잔치의 메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어디서 다 봤던 것들이 섞인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뻔한 메뉴에 대한 식상한 찬사보다는, 제가 특별히 느낀 하나의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에 앞서 일단 <피지컬: 100>이 좋았던 점은,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에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참가자들의 슬픈 사연을 소개하는 자료 화면 같은 것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피지컬: 100>은 조금 거칠게 말해 오직 두 가지 메뉴로 이루어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첫째는 100명의 참가자들이 피지컬을 겨루는 장면이고, 둘째는 참가자들의 인터뷰입니다. 그 인터뷰에서 참가자들은 게임 당시와 전후의 심정 및 소회를 밝힙니다. 가뿐했다. 어려웠다. 누구 누구가 멋있었고, 누구 누구가 견제된다. 재밌을 것 같다. 재밌었다. 결과가 이렇게 돼서 아쉽고, 정말 이기고 싶었다. 진짜 xx 이기고 싶었다. 나이가 들고 배가 나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엔 게임 밖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 밖 이야기를 말할 기회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엔 분명 감동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굳이 슬픈 사연을 말로 뱉어내지 않아도. 그러니까 단 두 가지로 이루어진 이 프로그램이 참가자들에게 게임 밖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그들의 피땀 흘린 노력과 애환이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최종화인 9화에서 제작진은 결승전을 펼칠 최종 5인으로 선정된 다섯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호화로운 만찬을 제공합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던 그들은 그제야, 즉 100인에서 5인이 되어서야 서로에게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유를 묻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은 5명의 대답이 거의 비슷합니다. 5명 중 4명의 참가자는 모두 흔히 말하는 ‘비인기 종목’의 운동선수였는데요. 그들이 하나같이 이 프로그램에 나온 이유를 ‘내 종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몰라줄 때가 제일 속상해요.”


흔히 말하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인 거죠. 그런데 저는 이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들의 애환에 크게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건 제가 종사하고 있는 ‘영화 평론’ 종목 역시 비인기 종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평론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몰라줄 때가 제일 속상해요.”가 다름 아닌 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평론: 100>이든, <영화: 100>이든, <쇼미더머니>든 참가하고 싶은 마음. 어디든지 얼굴을 비춰 이런 종목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 여기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그렇다고 물론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 이걸로 어떻게든 끝을 보겠다는 마음만큼은 여전합니다. 그러니까 ‘비인기 종목’에 관한 열정은 여전하니,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슬픈 느낌만이라도 바꿔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ence, ‘비인기 종목의 안설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글의 제목으로 적은 ‘비인기 종목의 안설움’은, 미흡하고 비문이지만 그러한 노력을 반영해 본 표현입니다. ‘비인기 종목’과 ‘설움’이 하나의 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뉴스에 비인기 종목 얘기만 나오면, 헤드라인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설움의 반대말을 찾아 대체해 보려 했지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기쁨? 즐거움? 벅차오름? 그 어떤 단어도 서러움을 정확히 ‘반사’하는 표현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미완성의 상태로 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한편으론 그 표현이 없다는 것이 상징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서러움이란, 어떤 말로도 절대 완벽히 지워질 수 없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완벽하지 않은 표현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피지컬: 100>엔 완벽히 제거되지 않은 채로 남겨진 어떤 형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정확히는 99개의 이것이 등장합니다. 바로 참가자 자신의 몸을 본 떠 만든 토르소입니다. 이 토르소가 ‘안설움’의 모습처럼 보인다면 너무 영화 평론가적인 발상인 것일까요? 이런 이상한 말을 말을 해서, 바로 이래서 제 종목은 인기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은 계속해서 영화 근육을 키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만간 정말로 <영화: 100> 같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근손실 오지 않게 다음 주도 화이팅 할게요.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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