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뱅이 서술한 독서에 대한 문장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습니다. 다음 장의 희열과 호기심을 멈추지 못해 술술 넘기면 이야기는 끝이 나는데, 결국 끝장을 보고야 마는 루틴에 길든 독자가 바로 저였으니까요. 저는 오롯이 나와 책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한때는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독서를 했을 만큼 몰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지요.

  책 목록을 살펴보면 한해의 관심사를 알 수 있어요. 올해 상반기엔 '마케팅/브랜딩/커리어', 하반기엔 '글쓰기/나다움/문학' 분야에 주로 손이 갔지요. 올곧아 보이는 취향도 매번 다른 결을 지닌 걸 보면, 매번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란 말이 와닿죠. 연말에 완독 리스트를 쭉 뽑아보면, 2번 이상 손이 안 갈 책들도 보여요. 이쯤이면 책들도 '나 좀 살려줍쇼' 하고 아우성이라 서재 복지를 위한 가지치기를 시작하죠. 모로 누운 책들을 바로 꽂고, 침대와 협탁 위에 쌓인 책들도 자리를 찾아주죠. 아쉽게 솎아낸 책들은 한데 모아 새해에 나눔을 해요. 나눔까지 끝내면 그해의 독서 결산은 마무리됩니다!

  사서 마니는 올해 156권을 읽었어요! 그중 '마니브러리'란 이름을 달고 소개한 책은 33권이죠. 한 달 평균 13권의 책을 읽은 셈이네요.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완독 리스트를 전부 공개하고 싶었지만, 스크롤이 길어지는 탓에 그러지 못했어요😭 대신 <리더스> 앱을 다운받아 유저 검색창에 '달마니'를 치면 리스트를 볼 수 있어요. (광고 아닙니다! 평소 독서 기록을 위해 쓰는 무료 어플이에요🙄) 

  연말을 맞아 서점과 신문의 북섹션이 앞다퉈 '2022년 올해의 책'을 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올해의 책은 '그해 출간된 도서'를 기준으로 삼지만 마니브러리는 '그해에 처음 읽은 책'으로 기준을 세웠어요. 올해 4점 이상의 별점을 매긴 책 중, 12월인 지금도 여운이 짙게 남은 책을 골라봤답니다. 그럼 '올해의 BEST 5'를 소개할게요🏃‍♀️

  <궁금한 이야기 Y>에 출연한 '맥도날드 할머니'의 삶을 재해석한 소설입니다. 여성 노숙인 김윤자와 그녀를 취재하는 신중호 PD의 시점을 교차해 노인을 향한 편견도 들여다보게 하지요.

  김윤자는 영양실조와 치매를 앓다 차가운 벤치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허름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입은 그녀의 옆에는 영자 신문, 성경, 열 권가량의 수첩이 두 개의 쇼핑백 안에 들어 있었지요. 그건 매일같이 자신의 일상을 성실히 반복했던 근로자(p. 233)인 그녀가 끝까지 움켜쥔 '품위'였습니다.

  유려한 표현으로 수놓아진 감성을 마주하면 말을 잇지 못합니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는 내내 그랬어요. 벅차서 눈물이 날 것 같았죠.

  공연예술이론가인 목정원은 삶과 예술에서 공통으로 발견한 상실에 대해 적습니다. 공연예술에 대한 사전지식은 크게 필요 없어요. 저처럼 무지한 사람도 심연에 묵혀 둔 슬픔을 꺼낼 만큼 문장의 힘은 강력하니까요.

  아직도 기억 남는 에피소드는 <장 끌로드 아저씨>예요. 그녀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빈자리를 맡아 두고, 파리의 지붕을 내려다보게 해준 아저씨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p. 150)이 무엇인지 알기에 뭉클했거든요. '빚졌다'라는 표현이 이토록 아름다운 단어였단 걸 그제야 알았어요.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이 쓴 그리움의 일기입니다. 사랑하는 연인 '지슬렌'을 떠나보낸 후,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글쓰기'로 사라진 그녀를 소환하죠.

  누군가의 부재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태어나면 독자야 행복하지만, 이걸 쓰던 당사자는 얼마나 아릿하고 보고 싶었을지 여실히 느껴져 온전히 감동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p. 110)는 문장에서 진정한 순애보를 보았습니다. 슬픔에 빠져 슬픔까지 감싸 안은 사랑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이 크네요. 

  몸담은 회사도 직책과 환경도 전혀 다른 세 여성이 에너지그룹 태형의 행사를 맡으며 벌어지는 오피스물입니다.

  불합리한 상황에 내몰려도 이들의 성취 욕구는 멈추지 않아요.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의 희열을 쟁취하기 위해선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여성들을 보고 있으니 심장이 요동쳐요. 

  아쉽게도 이들의공조는 실패로 끝나요. 하지만 상심하지 않고 다음 챕터를 준비하죠. 일을 그르쳤을 때, 나는 어떤 태도와 표정으로 일관했는지 생각해보게 만든 책이에요. 

  누군가의 처음을 마주한다는 건, 두근대는 일입니다. 이 책은 조온윤 시인의 첫 시집이에요. 책 제목과 내용이 딱 들어맞는 책을 발견하기란 어려운데 이 책은 그걸 해냅니다. 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햇빛이란 단어와 매우 잘 어울려요.

  저는 '묵시'의 "식탁 위에는 햇볕이 한 줌 엎질러져 있어 커튼을 쳐서 닦아내려다 두 손을 컵처럼 만들어 햇볕을 담아봅니다"란 구절이 너무 좋았어요. 한 줌 햇볕조차 소중하게 여기는 고운 마음이 전이되는 것 같아서요.

양귀자 『모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