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1ㅣ  구독  지난레터
일곱번째 매생이
글_곤잘레스

작년 말로 기억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이라 그의 영화는 챙겨보는 편인데요. 그의 신작 ‘괴물’이 나와서 당연히 봤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감동했죠. 하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달랐습니다. 스토리의 여운뿐만 아니라 음악의 여운도 함께 남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음악가가 ‘류이치 사카모토’였습니다. 일본인의 이름은 항상 헷갈려서, 사실 제게 사카모토는 히사이시 조, 유키 구라모토 같은 일본 음악가와 혼재되어 있었는데요. 영화 ‘괴물’을 통해서 그는 제게 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죠.


마침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시기에 글을 쓰게 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그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다른 분들에게 전해주면 뜻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참고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인생은 다른 블로그나 유튜브에도 충분히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출판 편집장 아버지와 모자 디자이너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과 같은 그의 인생 이력을 쓰진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영화나 책, 음악 등 제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얻은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정보를 저만의 감상으로 써보고자 합니다.

1. OST

‘류이치 사카모토’하면 떠오르는 음악들은 대게 OST일 겁니다. 그래서 짧게 유명한 것 위주로 소개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여기 소개되는 음악들은 ‘이게 사카모토의 음악이었어?!’ 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처음 소개할 음악은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 ‘Merry Christmas, Mr. Lawrence’입니다. 무슨 영환지, 또 무슨 노랜지 모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보면 “아! 이 노래!”할 겁니다. 심지어 그는 영화에 출연도 했습니다. 더 심지어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말이죠! 잔잔한 피아노 곡입니다. 추천해요!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한 장면 <ⓒ전장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 하면 빼먹을 수 없는 영화가 있죠. ‘마지막 황제’입니다. 여기서도 그는 배우로 출연했습니다. 또 이 영화의 유명한 OST, ‘Rain’도 만듭니다. 이것도 혹시 모르신다면, 들어보세요. ‘엇! 이 노래!’ 할 겁니다. 그는 무려 이 영화의 OST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게 됩니다.

(참고로 수상 당시 “I wanna thank ..”라는 쟁글리쉬 수상소감이 얼마나 마음에 쓰였던지 자서전에서도 자진납세하듯 이야기합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  출연 당시 사카모토 <ⓒ마지막 황제>   

마지막으로 언급할 OST는 앞서 이야기한 ‘괴물’의 삽입곡, ‘Aqua’입니다.


사실 ‘괴물’이란 영화는 진짜 괴물 같은 영화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2023년 올해의 영화로 뽑을 정도로 재밌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만을 뽑으라면 ‘Aqua’가 흐르는 마지막 엔딩씬을 뽑을 겁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음악이 정말 조화롭다고 느꼈습니다. 제 표현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인데요. 꼭 영화를 보시고 ‘Aqua’를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와이프에게 노래만 들려줬더니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리액션을 보이더라고요.

영화 '괴물'의 엔딩씬 <ⓒ괴물>   
2. Yellow Magic Orchestra(YMO)

엘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즉 YMO는 현재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있게 만든 밴드입니다. 다카하시 유키히로, 호소노 하루오미라는 두 뮤지션과 함께 결성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YMO의 노래를 들어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생각해 보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소리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듣던 게임 사운드(칩튠 사운드; 8비트 게임 소리)가 노래의 전부였습니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고 했던가요? 사실 제 귀에 착 달라붙는 음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듣다 보니 ‘이게 거장의 음악인가’란 생각 때문인지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출퇴근 시간마다 듣는 노래가 됐습니다.


그 당시 일본의 대중들도 저와 비슷했던 거 같습니다. 1978년 첫 음반이 나왔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작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음악이 월드뮤직에서 먹힐 거라 판단하고 해외 마케팅에 중점을 뒀는데, 진짜 먹힙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금의환향하게 된 거죠.


철저하게 외면받은 1집 때와는 다르게 해외에서의 성공으로 그들의 음악은 재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 『Technodelic』가 발표됐습니다. 그들은 이 앨범을 120점짜리, 최고의 결정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끝내도 되겠다’라는 느낌도 뒤이어 들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해체하게 됩니다. 불과 5년이란 짧지만 강렬한 활동이었죠. (이후 2007년 재결성, 간간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3.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그의 책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 사카모토는 아버지와 데면데면했다고 고백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말을 한 적이 없다고도 했죠. 하지만 아버지가 준 영향은 커 보입니다. 바로 책 때문인데요. 그의 아버지는 출판 편집자였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책이 많이 있었죠. 그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책을 읽게 됐을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들고 다니면서 “사물의 실제란 무엇인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방법서설』의 앞 몇 페이지만 읽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하죠.)


어린 시절부터 노출된 이런 다양한 지적 토양은 사카모토의 삶을 관통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준 듯합니다. 그는 무언가 하나에 국한되길 거부했어요. 예술 전반에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노동 시장을 체험하고자 막일로 첫 알바를 시작하기도 하죠.

어린시절의 류이치 사카모토 <사진=나무위키>   

음악에 대한 태도도 그랬습니다. 토속음악부터 일렉트로닉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관심은 방대했습니다. 사카모토는 ‘한 다리만 걸친 태도’라며 자신의 행동을 겸손하게 표현했지만요.


저는 그의 국한되지 않은 모습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 바로 자서전의 제목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카모토의 코어는 음악이죠. 이건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음악 활동에 확신을 갖게 된 건 생각보다 늦은 20대 중후반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석사까지 따면서도 그는 자기 인생을 음악으로 규정하길 거부했어요.


하지만 음악이라는 끌림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음악으로 수렴된 사카모토의 인생이었지만 음악을 통해 그는 세상을 보게 되면서 도리어 음악으로 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매진했던 그는, 영면에 들기 전까지 다양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습니다.

사카모토의 사회운동 <사진=나무위키>   

또 어머니나 스승, 친구들의 이야기도 쓰고 싶었어요. 그들이 없었다면 사카모토 류이치는 없었을 겁니다. 그만큼 큰 영향을 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쓰려니 너무 졸리고 힘들고 그래서 이만 글을 줄일까 합니다. 이게 제 마지막 글이 되겠네요. 하지만 이런 미천한 글을 통해 그를 히사이시 조나 유키 구라모토와 혼동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동안 그가 만든 훌륭한 음악은 이미 충분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출퇴근 시간에 들으려고 합니다.


아리가또오 고자이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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