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도 제철이 있답니다

제철 과일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저는 겨울 한나절 30개의 귤을 먹을 수 있는 귤 귀신이고, 제 동거인은 자두에 사족을 못 씁니다.
어제 저녁 식탁에 앉아 자두를 미리 많이 먹어둬야겠다고 웃다가 계절에 대한 글을 써보고싶어졌어요.
첫 번째 문장
1년이 사계절로 이뤄진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일까. 너무 쉽게 지나가는 시간들. 다음에, 나중에, 하는 사이 바뀌어있는 계절들. 그러니까 봄은 봄인 줄 알고, 여름은 여름인줄 알고, 좋은 시간을 보내두라고. 왜냐면 그 계절은 지금도 쉼 없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는 [행복의 ㅎ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 책을 보고 2020년의 목표 중 두 가지를 잡았습니다. 바로 1)계절을 느끼며 살아야겠다 2)고궁이 보인다는 수제맥주집 서울집시에 가봐야겠다, 입니다.
김신지 작가님은 계절마다 회사 옥상에서 보이는 고궁의 사진을 찍습니다. 위 문장이 있는 9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네 계절동안 고궁을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미처 못 찍고 지나간 적도 있어 2년이 걸렸다고 해요. 책 곳곳에는 충분히 느껴야 할 좋은 순간들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천천히 읽다보면, 순간을 모으는 것의 소중함이 느껴집니다.
오늘 뉴스레터를 쓰면서 책읽아웃 팟캐스트에 김신지 작가님이 나온 이야기도 함께 들었습니다. 책과 함께 수다떠는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이 회차도 함께 들어보세요.
두 번째 문장
완두콩을 손질하는 시간은 늘 아름답게 기억된다. 날씨도 한몫하는 게 아닐까. 땀이 송글하게 맺히는 조금은 더운 듯한 5, 6월의 오후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요리하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계절이 주는 작은 축제를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손이 야무진 편은 아니라, 손으로 하는 일이 서투릅니다. 그래서 재료를 다듬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비트를 다듬다가 즙이 다 튀어 부엌을 피바다로 만들고, 낢이사는 이야기 말마따나 냉이는 다듬는게 너무 귀찮아서 '냉이새끼'라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해당 회차에 따르면 제 재료손질 능력은 '쪼렙'입니다.). 하지만, 제철 재료를 손으로 다듬는 시간이 주는 매력이 있다는 데도 동의합니다.
위의 글은 리디셀렉트에 연재되는 채소 요리 칼럼입니다. 완두콩은 좋아하지 않지만 저 문장에서 초여름 오후를 느낄 수 있었어요. 겨울 방어와 봄도다리, 초봄의 딸기와 여름 복숭아를 기억하는 것처럼, 계절별 채소를 외워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세 번째 문장
항상 계절의 끝은 아쉽고, 시작은 설렌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삶에서 결코 뺄 수 없는 것들을 반복해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계절은 순환하고, 나는 지금을 살고 있다.
위 구절은 신미경 작가님의 두 번째 책 에필로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에필로그의 초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적혀있어요. 그 일들 중 저는 [여름엔 덥다고 불평하며 웃기]라는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계절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 없더라도 계절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첫 번째 문장을 작성한 김신지 작가님은 겨울이 네 번째로 좋은 구절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겨울이란 계절이 싫다는 것보다, 네 번재로 좋아한다는 말에서 모든 계절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았던 계절을 느끼고 싶다면
저는 '월간 리뷰'라는 내용을 작성하면서, 좋았던 순간에 대한 사진도 짤막하게 첨부합니다. 상반기 회고를 작성하며 보니, 올 상반기에 작성했던 월간 리뷰에는 주변에서 보았던 풍경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4월 초 벚꽃과 6월의 장미를 잊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7월의 첫째주 일요일을 마무리한 지금은 참 산책하기 좋은 새벽입니다. 독자님은 지금 이 계절, 무엇을 느끼고 기억하고 싶으신가요?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문장줍기는 어떠셨나요?
SENTENCE P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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