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사서이자 신랄한 도서관 비평가(트위터 @kpark_librarian) ‘도서관여행자’ 님이 각주*를 찾아주셨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사시는데 코로나가 잠시 수그러들었던 작년 10월 도서관 여행 차 한국에 들르셨고, 그때 마티 사무실에도 놀러 오셔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고 가셨답니다. 조금 늦었지만 여러분과 공유해요.
미술관, 박물관 말고 도서관 여행!
🔮 도서관여행자
누군가의 동네 도서관은 누군가의 여행 목적지가 됩니다. 코로나19가 잠시 수그러들었던 작년 10월, 저는 먼 곳에 있는 ‘누군가의 동네 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13시간 걸려 도착한 그곳은 바로… 한국! 사진으로만 봤던 한국의 멋진 도서관들을 직접 눈에 담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도서관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고 싶기도 했고요. 짧은 일정과 코로나 시국을 감안해 머물고 있는 서울과 근교에 있는 도서관을 위주로 탐방했어요.
몇 년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김정한 건축가(에이탑 건축사무소)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한국에 가면 꼭 방문하고 싶은 도서관이 있었어요. 성북구의 첫 번째 청소년 특화도서관이자 10번째 성북구립도서관인 ‘월곡꿈그림도서관’입니다. 바퀴 달린 이동형 서가, 다목적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열람실, 무대용 조명, 폴딩 도어 등등 이용자 수와 그때그때 목적에 맞게 공간을 변형할 수 있게 설계된 100평 규모의 이 작은 도서관은 제 상상속 도서관과 닮아 있었어요.
무엇보다 이곳의 서가 사인에 별 5개를 주고 싶어요. 도서관 서가 대부분이 딱딱하고 계몽적인 십진분류법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000은 총류, 100은 철학, 200은 종교, 300은 사회과학… 월곡꿈그림도서관의 서가 사인은 개성 넘치고 재기 발랄합니다. 000은 ‘만물상’, 100은 ‘너 자신을 알라’가 병기돼 있죠. 두 아이의 엄마로서 무척 공감이 가는 사인도 있었어요. ’좋은 부모(애 키우다 애가 탄다)’!
공공도서관 디자인에서 간판과 안내 사인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국 도서관을 방문하며 놀랐던 점 중 하나가 간판이나 안내 사인에 영어를 공공연하게 사용한다는 것이었어요. 강남 지역 도서관이 특히 더 그랬습니다. 서울이 글로벌 도시라 외국인 이용자가 많아서 그런 걸까요? 영어를 병기를 하더라도 한글을 더 크게 쓰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제 노안 때문에 작은 글씨는 읽기가 영 불편합니다. 전자책 활자는 점점 키워서 보게 되고요. 미국 도서관에서 일할 때 노인 이용자들이 오디오북이나 전자책을 선호했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금천구립독산도서관에서 큰글자책, 잡지, 신문, 치매 관련 책자 등 고령 이용자가 주로 찾는 자료를 한데 모은 공간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쁘게 놀랐던 점도 있습니다. 장애 친화적 환경을 갖춘 공공도서관이 꽤 많았다는 거예요. 서가 사이의 복도 공간은 휠체어 이용자가 다니기에는 비좁았지만, 이건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공공도서관에서 개선해야 할 문제입니다.장서가 많은 도서관보다 ‘포용의 도서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 문헌정보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란캐스입니다. “나쁜 도서관은 장서를 쌓고, 좋은 도서관은 서비스를 구축하고,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형성한다.”
월곡꿈그림도서관 외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도서관입니다.”
지팡이를 짚는 노인과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와 노숙인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포용의 도서관. 제가 학교와 현장에서 배웠던 도서관 철학이기도 합니다.
⭐️ 도서관여행자가 추천하는 한국 도서관 여행지 5곳
한국 여행에서 제가 방문했던 도서관은 총 15곳이에요. 저처럼 ‘누군가의 동네 도서관’을 여행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5곳을 꼽아보았습니다.
•배봉산 숲속도서관
배봉산 둘레길과 이어져 산책까지 책임져주는 도서관입니다. 가볍게 걷다 보면 배봉산 정상 전망대에서 서울 풍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어요.
•의정부 음악도서관
재즈음악이 흐르는 도서관이라니! 이곳에서 저는 도서관을 낙원에 비유한 보르헤스를 떠올렸습니다. 몇 번이고 방문을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CD, LP, DVD 등 약 1만 점의 음반과 재즈, 블루스 등 블랙 뮤직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으며, 음악 감상 공간, 피아노 연습실, 작곡& 편집실 시설을 갖췄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1층 오픈 스테이지와 3층 뮤직홀에서 공연을 열기도 한다니 방문 전 도서관 사이트에서 이벤트 정보를 확인해보세요. 참, 의정부 가시는 길에 미술도서관에도 꼭 들러보세요. 두 도서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클릭!
•은평구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
윤동주 시인의 시 <새로운 길> 속 구절을 딴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은 은평구의 문학특화도서관이에요. 시인 윤동주의 생애와 작품을 둘러볼 수 있는 상설전시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건축가가 가구, 안내판, 색채(특히 외피) 등 모든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디자인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광진정보도서관
3회 연속 대통령상을 수상한 전국 최초의 도서관. 리모델링을 마치고 작년 8월에 재개관했습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가에 앉아 독서를 즐기시고 싶은 분들께 추천. 다음에 꼭 다시 찾고 싶은 도서관입니다.
•전주 도서관 여행 가이드
전주 여행은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한옥마을에서 끝나곤 하죠? 인구 대비 도서관이 가장 많은 도시 전주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에요! 책기둥도서관, 팔볼예술공장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 첫마중길 여행자도서관으로 이어지는데요, 자세한 정보와 신청은 여기서!
* 사진은 금천구립도서관의 큰글자 책 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