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호*] 그저 즐겨주세요

🌱죽순입니다. 오늘 제가 각주*의 솔리스트로 데뷔합니다.(자축!)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재밌게 생긴 책들을 들고 왔어요.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을 편집하면서 별별 아티스트 북에 빠졌다가, 이번에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그 매력에 빠졌거든요. 이것은 왜 ‘책’이라고 불릴까? 아트 워크, 그러니까 예술품으로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한 건 아닐까? 의문을 품다가도, 무엇이 책인지 정의하려던 대부분의 순간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즐기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저 즐겨주세요.

은지민, 『Floating Circle』, 2022

미술가 은지민이 만든 Floating Circle은 처음엔 지름 150cm의 꽤 큰 환상형이었다고 해요. 지금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Floating Circle은 크기도 작고 표지도 도자기(!)에서 에어백으로 바뀐 일종의 보급판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에어브러시로 작업한 그림책이지만, 날아갈 듯 윤곽이 흐릿하게 표현된 고양이와 채우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내버려둔 여백, 무엇보다 어떤 흐름, 어떤 순환을 상징하는 환상형 자체가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티스트북은 제작 부수와 해당 본이 몇 번째 것인지 판권면에 쓰여 있는 편인데요, 제가 가진 것은 300부 중 25번째 책입니다.

▶︎ 은지민 작가 인터뷰: 아트인사이드, 2022.07.08.

브루노 무나리, 『읽을 수 없는』(Libro illeggibile MN 1 ), 2021

이탈리아 예술가 브루노 무나리는 어린이를 위한 책과 장난감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물론 평범하지는 않았죠. “읽을 수 없는”으로 번역되는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루노 무나리는 1949년부터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들었다고 해요. 책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텍스트가 없는 책이죠. 그저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을 통해서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읽히는 무언가이지만, 이것은 엄연히 책으로 인식되어 출판사에서 발행하고 서점에서 유통됩니다. 무나리가 만든 다양한 “읽을 수 없는” 책 가운데 Libro illeggibile MN 1 는 마우리치오 코라이니 출판사에서 발행하며, 제가 가진 것은 제11판입니다. 서지 정보의 ‘언어’(Lingua)란에 ‘텍스트 없음’(senza testo)이라고 쓰여 있네요.😝

덧: 책을 담고 있는 봉투 겉면에 무나리의 “읽을 수 없는” 책에 대한 설명이 간략이 적혀 있답니다.

캉탱 프리우, 『시내』(Une Rivière), 자체 제작, 2021

캐나다 음악가 머레이 셰이퍼가 정립한 개념인 ‘소리 풍경’에 영감을 받아, 프랑스 예술가 캉탱 프리우(Qientin Prèaud)가 직접 레터 프레스 방식으로 제작한 아티스트 북입니다. 프랑스어를 몰라 제목을 이해하지 못해도, 기다란 종이 위에 찍힌 푸른 계열의 타이포와 도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느껴지네요. 졸졸졸 흐르는 것 같죠?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100부 중 89번째 책입니다.

저자 미상, 제목 미상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제주도 애월 쪽에 놀러 가서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발견했던 천으로 된 책이에요. 자수 부분이 올록볼록, 푸슬푸슬해서 손에서 놓지를 못했어요. 제가 한참 주물럭거리는 것을 유심히 쳐다보던 친구가 선물로 사주었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페이지는 5쪽의 ‘사자’입니다. 맹꽁이처럼 생겨서 좋음.🦁

0.1 & the object, 『Gonggi』, ADD TO CART, 2020

손원평 소설가의 아몬드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한 스튜디오 0.1의 작업입니다. 처음과 끝을 붙인 아코디언북으로 공기 놀이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책의 형태로 구현해냈어요. ▶︎ 본문 구경하기

공기에 사용한 박 필름이 색이 오묘하네요. 연녹도 아니고 녹도 아닌. 마티가 가지고 있는 박 샘플에서 볼 수 없는 색이에요. 미세하게 박이 뜯긴 부분조차 공깃돌이 닳은 모양인 양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 스튜디오 0.1 인터뷰: 헤이팝, 2021.10.19.

예술이기도 책이기도 한 것을 소개하는 서점

비플랫폼(B-Platform)

합정에 있는 서점 비플랫폼은 다양한 아티스트북을 소개합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해외 그림책과 제작 방식이 독특한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직접 만들어보는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어요. 네모잡이 코덱스 단행본에서 눈을 돌려 참신한 형태의 책을 만나고 싶다면 비플랫폼으로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