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93 인디토크 특집
1월 17일 오늘의 큐 💡   
Q. ⛄ 겨울날의 GV를 좋아하세요? 
벌써 1월도 절반이 이미 흘러갔네요. 인디즈 큐 구독자분들 모두 건강히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저는 며칠 춥게 잤더니 금세 콜록대기 시작하여.. 🤧 벌써 병원을 몇 번 오고 갔는데요. 괜히 아픈 와중에 누워 있으면서도 영화 생각은 절로 나서, 개봉하는 영화들에 기웃대며 상영 시간표를 뒤적거리고 있어요. (어차피 영화관 안에서 졸 것 같은데..!)
그래도 영화는 집에서도 볼 수 있으니 무척 좋지요! 오늘은 겨우내 인디스페이스를 찾은 손님들의 이야기를 데려왔어요. 바로 영화 이면을 들여다보는 GV 시간, 인디토크의 이야기인데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유지영 감독, 〈빅슬립〉의 김태훈 감독과 함께 한 대화 속에는 영화를 집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는 링크를 넣었어요. 〈괴인〉을 연출한 이정홍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아직 남아있는 인디스페이스 상영 일정을 만날 수 있고요. (아직 상영 중인 극장, 여기 있어요..!)
다음 주부터는 다시 올해의 신작들, 개봉하는 영화들의 소식으로 찾아올게요. 오늘도 인디즈의 글과 함께 따뜻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
오늘 만나 볼 이야기

1. 👐 탈피 이전과 작별 〈나의 피투성이 연인〉
2. 💤 낙원의 가능성 〈빅슬립〉
3. 👾 어그러진 것들로부터의 공간 〈괴인〉
👐 탈피 이전과 작별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인디토크
유지영 감독, 한예리 배우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자라 오르려는 나의 몸보다 나에게 들붙은 것이 어긋날 때가 되면 껍질을 벗어야 한다. 그 과정을 우리는 탈피(脫皮)라고 부르고, 탈피는 한편으로 곧 탄생의 은유이다. 탈피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실패할 경우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위태롭지만 껍질을 벗어내지 않고서는 그의 크기에 맞게 성장할 수 없다. 난산이었지만, 끝끝내 태어나고야 만 그는 절대로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 지난한 진통의 과정을 유지영 감독의 솔직한 고백과 함께했다.

유지영: 시나리오 쓸 때부터 시작해서 개봉까지의 모든 기간 안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임신과 출산은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고, 사건들은 모두 픽션이지만 제가 많이 투영되어 있는 이 부분들을 저는 자꾸만 지나치고 싶고, 또 저만의 방식으로 이 영화로 애도해서 보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 쓰고 나면 더 괜찮아지겠지. 현장 가서 보면 다르겠지.’ 했는데 매 순간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볼 때 울컥한 적이 많았고, 지나고 나서도 이 영화를 보기 힘들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었어요. 다만 GV를 하면서 늘 ‘내가 오늘 했던 말들 - 주인공들이 앞으로 찾아갈 욕망들을 응원하고, 그 욕망에 서로가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내가 지키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예리: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자리에서 못 일어났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페이드아웃이 되고 꽤 오랫동안 타자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를 제가 계속 듣고 있더라고요. 저도 이런 현실적인 부분에서 부딪히는 여성들을 많이 보고, 저 또한 어떤 부분을 감내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도 있고요. 그런 부분에서 와닿는 게 컸어요. 그리고 자신의 성취나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들 같은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관객: 저는 영화를 볼 때 소품에 집중해서 보는 편인데 가장 눈에 띄는 소품이 연필이었거든요. 이 영화의 뾰족함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학원에 연필 자체가 엄청 많더라고요. 연필을 이용한 것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연필이 학원에서 늘 등장하는 소품이잖아요. 그런데 재이와 건우를 떠올렸을 때 뭔가 심상적으로 이어지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이는 연필로 글을 쓰지 않지만 재이 역시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고, 건우도 늘 연필로 어떤 면에서는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것 역시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 둘이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두 사람의 어떤 연결 고리 같은 것을 주고 싶었던 게 그 연필이었어요. 학원에서 아이가 건우한테 “선생님은 평범하잖아요.”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예술가나 소설가라고 하면 누군가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재이도 건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정말 노동처럼 쓰는 일을 하고, 동일하게 건우도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둘은 특별히 다르지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인디즈 진연우

〈나의 피투성이 연인〉 

감독 유지영|출연 한해인, 이한주

155|극영화|12세이상관람가


주목받는 신인 작가 ‘재이’와 성실한 영어 강사 ‘건우’는 비혼, 비출산 커플이다. 그들에게 찾아온 뜻밖의 임신. 자신의 삶을 원하는 ‘재이’와 우리의 삶을 원하는 ‘건우’ 함께라는 미명 아래 다른 꿈을 꾸는 두 사람은 조금씩 무너져간다. 우리 안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까?

💤 낙원의 가능성

〈빅슬립〉 인디토크

김태훈 감독

정성일 평론가


골똘한 관찰과 깊게 헤아리는 눈길에서 비롯한 영화 〈빅슬립〉은 고이 담은 감정으로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서로의 잠을 바라보고 이내 깊은 잠에 들곤 한다. ‘밤’과 ‘잠’이 어려운 인물들이 연결되어가는 과정은 가끔은 충돌하고 깨어지지만, 어느새 따뜻한 햇볕이 이들을 내리 쬐기도 한다. 밤과 잠을 담아내며 빛이 공존하는 영화 〈빅슬립〉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다. 

정성일: 어떤 계기로 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왜 수강생들에 관한 영화가 찍고 싶어지셨는지 그리고 만나는 과정 중에 길호의 사례와 비슷한 친구가 있었는지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김태훈: 제가 고향에서 어린 시절에 다녔던 극장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큰 돈을 들여서 한 건 아니지만 의자를 직접 드릴로 박아가면서 친구와 함께 단관 극장 운영을 했는데, '저 스스로 완벽한 감옥을 지었구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필름을 직접 영사까지 했었는데, 매시간마다 그 시간을 체크하는 삶을 살다 보니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일을 알아보다가 극장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빅슬립〉의 제작사인 ‘시네버스’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도를 기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학교 청소년들도 가르쳤지만 학교 밖 청소년들도 있었고, 가정 밖 청소년들, 소년원을 나왔던 친구들까지 여러 친구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제 수업 때 구석에서 잠만 자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를 불러 '왜 수업시간에 잠만 자냐, 내 수업이 그렇게 재미없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어제 밤에 술에 취한 아버지가 무서워서 밤길을 서성이다 잠을 자지 못했고 여기 와서 자느라 선생님께 미안하다'고 하며 제게 사과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 이상 그 친구를 깨울 수가 없었어요.

제 어설픈 수업보다는 그 친구가 이 시간에 잠이라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이후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친구의 자는 모습이 잊히지가 않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빌려서 그 친구에게 작은 위로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빅슬립〉을 찍게 되었습니다. 

 

정성일: 한편으로는 김태훈 감독이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기영과 새엄마의 사이에도 드라마가 있는데 구태여 안 만들고, 초은과 드라마가 생길 수도 있는데 안 만들고, 오현 무리와도 드라마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안 만듭니다. 드라마에 대해 갖고 있는 감독의 거부감은 어떤 것인가요?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취향이자, 애티튜드이자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세계관인데, 그걸 알면 김태훈 감독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년간 영화학교에서 학생들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정말 많은 학생들이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절대 안 놓칩니다. 다만 차이는 얼마나 물고 안 놓느냐죠. 또 어떤 학생들은 드라마가 생기는 순간들이 오면 너무 괴로워합니다. 필사적으로 안 만들려고 하죠. 저는 김태훈 감독이 그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이 영화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김태훈: 정확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웃음) 드라마를 보면 공감하면서 보기는 하는데, 이상하게 영화를 찍는 순간만큼은 그 영화 속에 있는 인물들이 진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가지고 오면 이상하게도 가짜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그래서 오히려 배우들도 오히려 연기를 못하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든지, 다큐적인 부분을 가져온다든지, 아니면 원씬원컷으로 찍는 제작방식으로 만든다든지 같은 강박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인디즈 김지윤

〈빅슬립〉

감독 김태훈|출연 김영성, 최준우

114|드라마|15세이상관람가


오늘도 거리를 헤매던 길호는 우연히 만난 기영의 호의로 하룻밤을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단지 하룻밤이지만 길호는 기영의 거친 태도 속에 다정함을, 기영은 길호의 믿지 못할 행실 속에 연약한 결심을 눈치챈다. 하지만 각자 지리멸렬한 낮을 지나, 뜬 눈으로 밤을 지켜낸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데...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나누고 싶은 마음 한 칸을 지켜낼 수 있을까?

👾 어그러진 것들로부터의 공간

〈괴인〉 인디토크

이정홍 감독

이동진 평론가

 

해가 진작 떨어지고도 남았던 시간, 〈괴인〉을 마주하기 위한 관객들로 극장은 가득 차 있었다. 포스터 속 기홍의 알기 어려운 두 눈과 관객들의 호기심 어린 두 눈은 괴이하게도 닮아 있었고, 적막 가득한 백색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이후 수많은 눈들은 곧 마주하게 되었다. 극장만큼이나 가득 차 있었던 질문들과 대답들은 ‘심리적 공간감’을 이 안에서 실현하고 있었다. 〈괴인〉 속 인물과 상황, 관계는 어그러져 있고 사건의 발단과 결말에는 어떤 유난도 없다. 그러나 친구가 되기 위해 그랬고, 드러낼 수 없어 그랬고, 잠 잘 집이 없어 그랬다. 중심과 결말을 뒤로하고 과정에 귀 기울였던 시간을 되새겨 본다.

이동진: 제목에 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너무 잘 지은 제목이다 보니 영화에 관한 방향을 확 정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잘 지어서 아쉬운 부분 같은 것이 저한테 들기도 했고요. 또 한 가지는 영화의 영제를 〈a Wild Roomer〉라고 지어 주셨는데요. 이렇게 영어 제목을 붙이신 이유들이 궁금합니다.

 

이정홍: 저도 정확히 같은 맥락에서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해외에서 상영을 하며 해외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질문이 한 절반은 비슷하고 절반은 관점이 달랐어요. 근데 그게 제목이 괴인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아주 심각하지 않은 정도로 사람들이 누가 괴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런 데서 재미를 느끼겠구나, 정도로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잘 지은 제목이면서도 영화를 가두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제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 두 사람에게서 어떤 공통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까, 했을 때 wild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 같네요.


관객: 영화를 보면서 계속 가치중립성이라는 게 떠올랐는데요, 왜냐하면 처음에 기홍이라는 주인공이 나왔을 때 삶에 대해 되게 뭔가 무기력하고, 힘들어하고 그런 느낌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중에 따뜻함을 보여 주기도 하는 입체적인 면들이 보여지더라고요. 어떤 가치 평가를 인물에 대해서든 혹은 여기에 나타나는 구조에 대해서든 평가를 하려고 하면 그게 묘하게 이 영화의 제목처럼 괴이하게 계속 뒤틀리더라고요.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인지 궁금합니다.

 

이정홍: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여러 요소들을 보고 가치 평가를 하신 여러 기준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마도 그 기준을 작동시키는 작법과 조금 다른 작법을 취한 것에 대한 결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분명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 느끼는 감각을 따라왔던 거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꼬아 놓고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치 중립에 대해서는 어떤 사회 문제나 사람을 볼 때 그런 태도는 제가 갖고 있는 것 같고, 그게 누군가에게는 '문제적인 부분이 아니냐'하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사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디즈 박이빈

〈괴인〉 

감독 이정홍|출연 박기홍, 안주민, 전길

136|드라마|15세이상관람가

운전을 하던 목수 ‘기홍’은 자신의 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우연히 발견한다 공사 중인 학원 앞에 세워 둔 차 위로 누군가 뛰어내린 사실을 알게 된 ‘기홍’은 범인을 찾자는 집주인 ‘정환’의 부추김에 늦은 밤 학원으로 향하고, 신원 미상의 인물이 창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목격하는데… 

 [예고] 다음 주의 독립영화 
📽️ 1월 24일, 인디즈 큐가 만나볼 독립영화는? 
 힌트: '우리는 움직이는 땅을 자리만 바꿔 가며 디디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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