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익숙한 문제의 문제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매일 브리핑한다는 사실, 독자님은 아셨나요? 이 레터를 쓰는 오늘(19일)도 188차 브리핑을 했습니다. 일본 도쿄전력이 방류를 처음 시작한 날이 지난해 8월24일. 우리 정부는 6월15일부터 브리핑했습니다. 공휴일만 빼고 거의 다 한 셈입니다.

이 숫자는 어디까지 갈까요? 888? 아니면 8888? 그 숫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정부는 할 만큼 했다'는 근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때까지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없다면, 저는 '무덤덤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과학 분야를 취재하는 이정호 기자 칼럼을 2분 동안 읽고 대화 이어갈게요.
지난 3월13일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 IAEA 일행이 일본 후쿠시마 인근을 시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1년 전 예상과 달리 총선을 앞두고 '후쿠시마 오염수'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 수십년 동안 낮은 강도 방사능에 노출됐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미래 세대를 위한 주제를 선거에서 제기해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없는 총선
2024. 3. 18. 이정호 기자

조용하다. 한 달도 안 남은 총선에서 온갖 이슈가 터져 나오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처음 바다에 방류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당시에는 이 문제가 올해 총선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일례로 첫 오염수 방류를 한 주 앞둔 시점에 한 일본 언론이 "한국 정부와 여당 내에서 일본 오염수 방류가 불가피하다면 총선에 악영향이 적도록 방류를 빨리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당시 한국 정부 당국자는 "일본 측에 조기 방류를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해당 보도를 적극 부인했다. 지난해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야당과 '과학적인 대응'을 주장하는 여당의 대립 전선은 한국의 삼복더위보다 뜨거웠다.


이랬던 상황이 무색하게도 지금 국내 정치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얘기를 꺼내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다. 이유가 뭘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생기는 한국 정치 풍토 속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총선 국면에서 다룰 '핫이슈'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총선 공약집을 보면 주요 정당 가운데 녹색정의당, 더불어민주연합, 진보당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오염수의 해양 투기 금지를 위한 국제법상 요구를 한다거나 국내 어민을 지원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다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부족하다. 해당 공약의 순위도 전체 공약 가운데 꽤 뒤로 밀려 있다.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도 다행이다. 다른 대부분의 정당에선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관심을 찾기 어렵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교도AP연합뉴스

후쿠시마 오염수는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만성적인 위험 가능성 때문이다. 과학계가 현재 가진 방사능 위험 평가체계의 기준은 '급성 피폭'이다. 급성 피폭은 인체가 강한 방사능을 짧은 시간에 쪼인 상황을 말한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현장에서 수일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낮은 강도의 방사능에 노출됐을 때, 즉 '만성 피폭'에서 인간 신체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정확히 알아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실험은 불가능해서다. 방사능에 노출된 수산물을 장기간 섭취했을 때 무슨 문제가 있을지는 확실히 모른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섞일 태평양이 넓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염수로부터의 안전을 보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오염수 방류가 금세기를 넘길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오염수를 생성하는 근원인 후쿠시마 원전 내 방사성물질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치울 만한 기술이 현재로서는 없어서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향후 30년 방류'조차 너무 낙관적이라는 시각이다. 한국 등 주변국에서 언제까지 만성 피폭을 걱정해야 할지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후쿠시마 오염수의 4번째 방류가 끝났다. 1차 방류부터 지금까지 총 3만1200t의 오염수가 바다로 나갔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미래 세대가 살아갈 한국을 위한 주제를 선거에서 제기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아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정당과 국회의원 후보들의 태도가 아닐까.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후쿠시마 오염수'는 비단 총선에서만 없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관련 뉴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지난해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과 비교하면 보도 열기는 확연히 식었죠. 어느새 일본은 4차 방류를 끝냈습니다.

정부는 188차 브리핑까지 수산물은 모두 먹기에 '적합'하며 해양 방사능은 기준치보다 '낮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거의 매일 비슷한 이야기여서 전하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일본 언론을 거쳐 간혹 후쿠시마 원전의 특이점이나 지진 소식이 들려오지만, 예전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염수에 무뎌졌기 때문에 관련 뉴스가 없는 걸까요, 뉴스가 없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걸까요?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 같은 의문을 곱씹어 봅니다. 익숙함이 참 무서워요.

For Third World, Water Is Still a Deadly Drink.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1997년 1월 9일자 신문에 기고한 칼럼 제목입니다. '제3세계에서 물은 여전히 치명적이다.' 인도 뭄바이와 가까운 어느 슬럼가에서 아이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고 설사병을 앓다가 죽는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실, 이 또한 '익숙한' 일이죠.

크리스토프는 개발도상국의 보건과 복지에 원래 관심이 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취재했는데, 내심 불만(?)도 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의 목숨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의 일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이런 아이러니를 보면서요.

"언론은 주로 당일에 벌어진 일을 다루려고 해요. 기자회견장에 진을 치고 특종을 좇죠. 일상적인 일을 다루지는 않아요. 매일 겪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놓치곤 하고, 일상에서 겪는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이야기도 지나쳐버리죠. 매일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뉴스거리가 아니거든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 중)

하지만 이 기사를 주목한 두 사람이 있었죠. 바로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 멀린다 게이츠(2021년 이혼)였습니다. 게이츠 부부는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해 배변에서 연료와 음용수를 추출하는 '옴니 프로세서'를 발명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이제 그날의 뉴욕타임스 칼럼을 가리켜 "이게 제가 쓴 가장 중요한 기사가 됐죠"라고 말합니다.

익숙해서 지나치는 건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 있는 신문 지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책방 에세이 판매대에서도, OTT 콘텐츠 섬네일에서도 어떤 이야기가 익숙하지 않은지, 즉 새로운 자극을 주는지는 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익숙한 문제는 어쩌면 익숙하다는 바로 그 점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잊고 사는 사이 그 문제가 더 곪아버리고요. 누군가는 크리스토프처럼 익숙한 문제를 계속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그 글의 독자가 꼭 빌 게이츠 같은 명사가 아닐지라도 각성이 하나, 둘 모이다 보면 어떤 힘을 이루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점선면팀은 오늘처럼 익숙한 일을 다시 보게 하는 기사를 꾸준히 전하겠습니다.

허남설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걸을 때 한쪽 팔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보요원 시절 언제든 총기를 빠르게 잡도록 그렇게 훈련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2030년까지 집권하게 된 푸틴의 삶을 간략하게 정리했어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혁신당' 바람이 거셉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무엇이 이 귀환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이대근 칼럼니스트는 "불안감이 밀려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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