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의 관찰일기
구현모     "로또 드루와 드루와"
안녕하세요, 어거스트 구현모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투니버스와 유니텔 그리고 VHS를 끼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서브컬쳐가 어떻게 한국에서 각광받는 산업이 되었는지 풀어보겠습니다. 애니메이션부터 게임 그리고 피규어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는 서브컬쳐의 특성상 정량적인 통계 데이터가 미흡할 수 있습니다.
1. 오덕 문화, 라떼 한 잔 먼저 하시죠
2. 알겠는데, 대체 왜 지금 와서 그래?
3.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드러나는 걸까?
4.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 오덕 문화, 라떼 한 잔 먼저 하시죠

© Bing 제작
몇 년 전부터 애널리스트를 비롯해 언론사들이 팬덤 및 IP 산업 그리고 서브컬쳐에 관심을 갖고 보고서와 기사를 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 흐름은 근 몇 년 만의 것은 아닙니다. 한국 서브컬쳐는 사실상 8090,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됐습니다. 90년대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일본산이고, 그 이전 시대 한국 애니메이션, 음악, 만화 등은 일본 카피캣이 많습니다. 
© fandomwiki
덕질 혹은 서브 컬쳐가 돈이 됐다는 증명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로봇만화'로 가능합니다. 다간, 가오가이가, 케이캅스 등 로봇만화는 일본에서 '용자물'로 일컬어지는데요, 이 용자물은 방영과 동시에 장난감을 판매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옥스포드, 레고, 그리고 이 용자물에서 파생된 장난감과 신발 등을 사주시곤 했죠. 
© TGL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지와 같은 시뮬레이션부터 파이널 판타지와 파랜드택틱스 같은 RPG 그리고 성인용 게임까지 일본에서 흥행하여 한국까지 넘어온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당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불법 CD 복제본, 시디스페이스 및 데몬을 이용한 복제본, 무설치파일 등을 이용해서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 알라딘 캡쳐
가장 유명한 '오덕생성기'는 에반게리온입니다. 90년대 말 한국과 일본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한 에반게리온은 한국 오타쿠들을 결집하게 했고, 관련 해설설서와 문화 담론과 엮은 서적 그리고 2차, 3차 콘텐츠 생산을 일으키며 신드롬이 됐습니다. 콘텐츠로 위로받는 것을 넘어서 비평적으로 접근하고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콘텐츠의 파급력을 키우는 현재 오타쿠 문화의 원류입니다. 

⭐ 알겠는데, 대체 왜 지금 와서 그래?

쉽게 말해서, 음지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10대와 20대들은 현재 사회의 주축인 40대와 50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윗세대 어른들은 그것들을 '이상한 것'으로 보곤 했죠. 이걸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국의 인터넷 커뮤니티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건 패배자나 보는 거고, 애들이나 보는 거고, 이상한 사람이나 보는 거다라는 안 좋은 인식 때문에 양지에서 논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덕질'이 약간 조롱받거나 놀림받는 부분이 있는데, 러브라이브, 러브히나, 레이파와 아스카파 그리고 미사토파 사이의 논쟁을 오프라인에서 하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사실 지금도 그렇죠
콘텐츠 소비가 불법의 영역에 있는 것도 함정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나온 이후 바로 즐기기는 어려웠습니다. 넷플릭스처럼 글로벌 OTT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스팀처럼 정식 게임 유통 경로가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식 결제보다는 와레즈, 토렌트 등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만화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불법 웹툰 사이트와 스캔본 파일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최신화를 떳떳하게 보고 즐기기는 어려웠고, 이를 이야기하기도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실상 음악(라르크앙시엘, 엑스재팬 등)을 제외하곤 어둠의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음지의 영역에 있으니 제대로 통계를 알 수가 없고, 알 수가 없으니 제대로 된 '시장'으로 접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드러나는 걸까?

어떤 현상이 각광받을 때는 과거엔 진짜 없었는지 알아보고, 과거에도 있었다면 왜 지금인지 탐구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소위 '덕후' 산업들이 관심받는 걸까요?
 © Visla

하나, 분위기가 변했습니다.


SNS의 발달로,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콘텐츠 시청자뿐만 아니라 코스프레 플레이어, 캐릭터 생일 카페 등을 하는 하드코어 유저들이 트위터 등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존재들이 더 자주, 많이 드러나면서 이젠 낮,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라프텔

둘, 접근이 쉬워졌습니다.


라프텔과 넷플릭스 뿐만 아니라 웨이브와 티빙 등에서도 최신 애니메이션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접근이 쉬워지니 하드코어 유저와 고인물 이외에 신입 유저들이 물밀듯이 들어옵니다. 이 시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IP들도 대박을 치게 됩니다. 주술회전, 체인쏘맨, 귀멸의 칼날,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등의 성공적인 애니메이션화에 힘입어 덕후 산업의 역동성이 더 커졌습니다.

더 크게 성공한 드래곤볼 © 알고파토이

셋, IP들의 부활.


에반게리온이 덕후 문화의 상징이라면, 드래곤볼은 만화의 상징입니다. 드래곤볼이 연재를 재개하고, 2000년대 초반 만화 3대장인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가 각각 후속작과 후속 애니메이션을 내면서 과거 IP들이 부활합니다. 이 IP들은 과거 팬들뿐만 아니라 과거 팬들의 자녀 등을 함께 포섭했습니다. 오히려, 과거 팬들은 실망하고 있는데 흥행은 과거보다 더 큰 기괴한 현상도 있습니다.

넷, 게임이라는 종합 예술.


덕질 문화에서 귀여움은 돈이 됩니다. 그런데, 가챠는 더 큰 돈이 됩니다. 거기다가 게임성을 더하면 돈 그 자체가 됩니다. 바로 원신이야기입니다. 과거의 오타쿠 문화는 만화에서 주로 출발했습니다. 모든 IP의 출발점이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게임도 있습니다. 원신, 명일방주 등 신생 게임 IP가 훌륭한 게임성과 디자인 그리고 가챠를 더해 완벽하게 상업적이고 고도로 설계된 블록버스터 흥행작이 됐습니다. 상업적인 흥행이 뒷받침되니 당연히 뉴스거리가 됩니다.

다섯, 중국이라는 공장.

여러분들은 집에 피규어가 있으신가요? 저는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롤, 다이의 대모험, 포켓몬 피규어가 있습니다. 박스를 버리는 쿨한 라이트 유저라 제조국을 확인하지 못했으나, 아마 중국일 겁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제조 수준이 높아지면서, 피규어 구현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 말인 즉슨, 예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제품이 나오고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가격으로 높은 퀄리티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 거죠. 좋은 굿즈는 매출로서 IP의 수명을 늘려줍니다. 동시에 팬들의 애정도를 높여주고, 열정의 크기도 키워주죠. 
© Bing 제작
여섯, 투자자들은 리스크가 싫어요.

투자 업계 등에서 관심 갖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연예 산업만큼이나 흥행성은 좋은데, 리스크가 덜합니다. 캐릭터들은 사고치지 않으니까요. 엔터 산업과 플랫폼을 제외하고 글로벌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회사를 찾다보니 결국 이 애니메이션 / 게임 IP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양지화는 시장을 키웁니다.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만화, 게임, 음악은 통계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관련 산업에 자본이 투자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번 양성화되면 통계가 잡히고, 성장세가 확인되고, 투자가 가능해집니다. 

소비자는 솔직하고 게으릅니다. 소비가 편하면 소비하게 되고(쿠팡은 참 소비가 쉽죠), 한 번 편해지면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덕질 산업의 성장은 지하 경제의 양성화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 덕질은 분명히 부끄럽고, 실명으로 말하기는 애매한 문화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니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완전한 익명 커뮤니티인 트위터가 덕질의 성지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덕질은 모든 투자자들이, 언론사들이, 전문가들이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산업이 됐습니다. "아니 좀 그렇지 않나?" 라는 눈빛으로 보기보다, 저 산업이 성장한 배경에서 우리 회사 혹은 내가 배울 만한 부분은 없는가라는 각으로 보면 좋습니다.

우리의 콘텐츠 혹은 게임 등에는 덕들이 붙을 만한 구석이 있을까요? 사실 90년대부터 이어진 질문입니다. 과거 남돌들이 콘서트와 자체 콘텐츠를 통해 멤버들 사이의 커플 구도를 설계하고, 민희진이 엑소의 교복 코디를 노린 것처럼 더욱 끈덕지고 은은하지만 노골적으로 설계해야만 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시작부터 노리는 정도가 남다릅니다. 매력적인 조연은 물론이고 섹스 어필 전용 캐릭터 등 이해하고 덕질하기 쉽게 만듭니다. 우리의 콘텐츠, 서비스는 어떨지 되돌아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17년간 방치된 대한민국, 안녕히 계세요 | 채부심 - 채상욱의 부동산 심부름센터

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재밌고, 콘텐츠의 깊이는 압도적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할 법한 문제입니다. 불편한 문제지만, 재밌게 풀어내는 만큼 쉽게 씹힙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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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후니 • 찬비 • 식스틴 • 나나 •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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