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ㅣ  구독  지난레터
지식人 지식in
강인선 기자

폴 마틴 전 캐나다 총리
재무부 장관 재임 시절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
연금 지속 가능성 획기적 개선
향후 소득 보장 강화 초석

한국 연금 개혁 과정서도
캐나다 경험 참고할만

폴 마틴 전 캐나다 총리 <사진=구글 이미지 '갈무리'>

“만약 우리가 지금 연금의 재정안정성에 대해 행동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점점 미래에 자신들을 위한 연금이 있다는 확신을 잃게 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우리를 따르는 세대에게 엄청난 보험료 인상을 부과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우리가 땅의 기름을 빨아먹고 있다고 말할 것이며 그것은 국민 정서에 정말로 엄청난 해가 될 것입니다.”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캐나다를 이끈 폴 마틴 제21대 캐나다 총리가 지난해 말 캐나다연금(CPP)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CPP 개혁의 배경입니다. 최근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한국에서는 익숙한 문제의식이지요. 마틴 전 총리는 재무장관 재임 시절이던 1990년대 후반 캐나다의 국민연금인 캐나다 연금(CPP)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주도한 연금개혁은 전세계 주요국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힐 만큼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공로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그는 이후 총리에 당선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주 ‘지식人지식in’에서는 마틴 전 총리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폴 마틴 전 캐나다 총리 <CPP Investment 유튜브 계정>
1. 의지의 정치인이자 성공적인 기업가

1938년 마틴 전 총리는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폴 마틴 시니어는 외무부 장관을 포함해 25년간 장관직을 수행한 집권 자유당의 원로였습니다. 자유당 당수직에도 도전했지만 결국 총리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훗날 본인의 취임식에서 마틴 전 총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못이룬 꿈을 자신이 대신 이뤘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틴 전 총리는 정치에 발을 들이기 전 변호사와 기업가로서 커리어를 쌓습니다. 1969년 32세였던 그는 ‘파워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에서 CEO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파워 코퍼레이션이 ‘캐나다 스팀십 라인(CSL)’이라는 해운사를 인수하자 그곳의 이사로 지목됩니다. CSL의 CEO 자리까지 올라간 그는 이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자 동료들과 함께 CSL 그룹을 직접 인수합니다. 인수 후 CSL의 글로벌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끈 마틴 전 총리는 1988년 자유당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CSL에서의 직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정계 입문 이후 그는 2년만에 자유당 총재 자리를 두고 경선 레이스를 펼칠 정도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당 장 크레티앵 후보에게 총재 경선에서 패했고 크레티앵 의원이 이후 10년간 총리로 집권하면서 그는 총리의 꿈을 10년간 접어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캐나다 국민들에게는 크게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크레티앵 전 총리가 정치적 경쟁자였던 마틴 당시 의원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고 이때 그가 주도적으로 연금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연금 개혁 외에도 그는 재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27년만에 처음으로 균형예산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향후 5년간은 흑자 재정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캐나다 정계에서는 그를 ‘양심적인 자본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2. 재정건전성・소통・정부 주도... 캐나다 연금개혁의 특징

마틴 총리가 주도한 1990년대 캐나다 연금개혁은 왜 가장 성공한 연금개혁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캐나다 연금의 건전성을 눈에 띄게 개선시켰기 때문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연금 개혁 논의에 불이 붙었던 1998년 캐나다는 오늘날 한국처럼 출산율 저하 및 기대수명 증가, 2011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퇴직으로 향후 연금 지출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우려됐습니다. 마틴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내가 재무장관이 됐을 당시 캐나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124%로 주요 산업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캐나다 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전체 국가 부채보다도 많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미적립 부채란 연금 가입자가 받기로 되어 있는 연금 급여에서 가입자들이 납부할 보험료와 적립된 기금액을 뺀 차액을 뜻합니다.

재무 장관 시절 캐나다 연금 개혁을 주도한 폴 마틴 전 총리(사진 왼쪽 세번째). <CPP Investment 유튜브 계정>
파산 직전이었던 캐나다 연금은 어떻게 바뀐 걸까요? 개혁의 골자는 재정운영방식을 ‘부과방식’에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부분적립방식’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보험료율도 바꿨습니다. 당시 캐나다 국민들에게는 두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두 선택지 모두 보험료율의 인상을 수반했지만 첫번째 선택지의 경우 2003년 보험료율이 7.35%까지만 오르는 대신 2030년 14.2%까지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1998년 6%대). 반면 후자는 2003년 보혐료율이 9.9%까지 상승한 뒤 멈추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결국 전자는 지금 일하고 있는 세대가 보험료를 더 적게 내면서 보험료율은 미래로 갈수록 더 높아지는 구조였고, 후자는 지금 일하고 있는 세대가 좀 더 빨리 많은 보험료를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캐나다 국민들은 전자를 택했고 보험료율은 점진적으로 5~6%대에서 9.9%로 올랐습니다. 동시에 연금 수급 세대가 받는 급여도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뼈를 깎는 노력을 단행한 성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마틴 전 총리는 “연금개혁이 있고난 뒤 11년이 지나자 캐나다 연금 규모는 전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규모로 성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로도 연금 규모는 계속 커져 2006년 1000억달러에서 2017년 3000억달러로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물론 협의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연금제도의 개혁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헌법상 책임을 공유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주정부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는 10개의 주와 3개의 준주로 이뤄져 있습니다. 마틴 전 총리는 각 주를 일일이 설득해 10개주의 동의를 받아냈습니다. 이후 재무부는 해당 주들과 합동으로 연금법 개정을 추진했는데, 재무부가 개혁 어젠다를 마련하고 장기 재정상황을 평가하는 합동보고서를 작성해 향후 캐나다 연금에 대한 협의 과정에서 기초 자료로 삼기도 했습니다.


협의 과정에서 개혁을 반대하는 진영과 타협한 부분도 있습니다. 자유당 정권이 추진한 개혁의 원안은 보험 급여를 현행 대비 확 낮추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급여를 낮추는 데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매우 심한 것으로 나타나자 급여 삭감은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살짝 ’톤다운‘ 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주도해 끊임없이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간 소통을 이어나간 것이 개혁 성공의 비결이었던 셈입니다.


3. 연금 소득 보장 강화 VS 세대간 형평성... 국민연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지난주 한국에서는 연금개혁으로 뜨거운 논란이 일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이 보험료율(내는 돈)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받는 돈)도 인상하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1안)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내는 돈이 오르는 비율보다 받는 돈이 오르는 비율이 더 커 미래 세대의 부담이 높아질 것이란 비판이 일었습니다. 반면 시민들이 연금 소득보장 강화를 택한 것을 두고 비판할 수는 없단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선택 결과 <매일경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어떤 방향일까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해외 주요국의 연금개혁 심층 사례 연구’ 보고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개혁으로 연금에 대한 사회의 신뢰가 회복된 캐나다는 2016년 또 한번의 연금 개혁을 단행합니다. 이번에는 보험료율은 9.9%에서 11.9%로 소폭 올리되 25%였던 소득대체율도 33.3%로 대폭 끌어올리는, 연금의 소득 보장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혁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시민대표단이 고른 것처럼 ‘더내고 더받는’ 연금개혁이었던 셈입니다. 연구원은 가장 최근 단행된 두번의 캐나다 연금개혁에 대해 “1997년 개혁에 따른 재정안정화는 훗날 CPP 강화를 가능케하는 주요 기반으로 작용하였다”며 “급여 인상을 동반한 2016년 개혁은 연금재정에 대한 정부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캐나다 국민 역시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보험료 인상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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