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번째 편지 : 루틴, 다양한 변주, 달걀 요리

사실상 백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저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초조하고 불안해하거나 혹은 너무 들뜬 감정에 휩쓸려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내지 못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루틴을 만들어 온종일 적당한 기분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일상의 틀을 짜고 반복하여 실천해서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루틴이라고 하는데 누군가 정해주는 틀이 아닌 저만의 리듬을 만들다 보니 오히려 안정감이 들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일상 속 저만의 다양한 루틴이 있지만, 그중 제가 빼놓지 않고 실행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이 들기 전 제게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음악을 듣는 것인데요. 이렇게 쓰고 보니 어쩌면 그 시간은 담담한 음악에 제 감정을 동기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번에 추천 할 곡은 Kings of Convenience, The Whitest Boy Alive의 멤버로 잘 알려진 Erlend Oye가 칠레의 발디비아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 'Valdivia'와 색소폰 엠비언트 음악을 만드는 Joseph Shabason의 'Broken Hearted Kota' 입니다. 이 음악들처럼 구독자분들의 하루 시작과 끝도 언제나 적당할 수 있기를 바라요. 
🎧 Erlend Øye & La Comitiva feat. STARGAZE - Valdivia

🎧 Joseph Shabason - Broken Hearted Kota

 구독자님, 보통 서른을 맞은 사람 (예를 들면, 알렉스?)을 귀엽게 놀릴 때 달걀 한판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최근에 마트에서 달걀 한 판을 보다가 문득 그걸 달력으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달이 보통 30일 정도 되니까요. 달걀 한 알 한 알마다 숫자를 적고, 하루에 한 알씩 먹어나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달걀우리네 일상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아요. 짜지도 달지도 쓰지도 시지도 않은, 그런 덤덤한 맛. 하지만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누군가와 나눈 인상 깊은 대화에 따라서, 코가 꽉 막혔다든지 옅은 두통이 있다든지 하는 건강 상태에 따라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고 뜻밖의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달걀찜 같은 하루가 있는가 하면 달걀 프라이 같은 하루도 있고, 삶은 달걀 같은 퍽퍽한 하루에 목이 메어올 때쯤 촉촉한 반숙 같은 날이 또 불쑥 찾아오는 것 같아요. 

달걀
한판처럼 담백하게 반복되는 매일을 기왕이면 재미있게 요리해먹고 싶어요. 저는 편의점에서 신상 까까를 사보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머리를 묶어보는 소박한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루가 간간해지는 같더라구요.

구독자님만의 더 좋은 레시피가 있다면,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세요.

저는 달걀을 참 좋아해요. 친근하면서도 정말 다양한 얼굴들을 가지고 있고, 부담 없으면서도 괜히 함께하면 든든한 느낌이 들거든요. 닮고 싶은 친구 중 하나라 평소에 많이 보고 배우는 편인데, 이번엔 제가 반한 이 친구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프렌치 토스트' / 출처: AlexTheFood 블로그 리뷰
우선 달걀의 친숙한 모습인데요. 폭신달달한 프렌치 토스트와 타마고- 계란초밥입니다. 때에 따라 아침에 든든한 밥으로도, 가벼운 간식으로도, 마무리 디저트로도 가능한 인싸 프렌치 토스트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아요.

우정초밥, '계란초밥' / 출처: AlexTheFood 인스타그램 리뷰
계란초밥 역시 다른 화려한 초밥에 밀려 비록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어떤 초밥을 먹더라도 마지막에 달달한 이 친구가 없으면 허전하더라구요. 가끔 '연어 초밥 세트' 같은 메뉴를 시키면 계란 초밥이 따로 나오지 않는데, 그럴 때 이 친구를 따로 주문할 정도로 저는 이 친구를 애정한답니다.

옥앤수, '풀하우스' / 출처: AlexTheFood 인스타그램 리뷰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달걀의 모습은 고급진 모습이에요. 스테이크와 연어 옆에 있어도 꿀리지 않는 에그 스크램블, 그리고 에그 베네딕트인데요. 저 잘난 스테이크 옆에서도 도도하게 빛나던 에그 스크램블... 본연의 맛을 내면서도 촉촉한 물광 피부를 유지하던 이 친구, 얼굴값 하더라구요?

베르트, '연어 베네딕트' / 출처: AlexTheFood 인스타그램 리뷰
연어 에그 베네딕트는 또 어떻구요. 연어도 꽤나 꾸미고 왔는데, 이 친구는 계란 노른자로 만든 홀랜다이즈 소스에 반숙 계란까지 올려, 당당히 주인공을 차지했을 정도로 화려한 친구입니다. 그라브락스와 함께 느끼한 짠 맛과 깔끔한 짠 맛 사이의 밀당을 참 잘하던 게 기억이 나네요.

요코쵸, '명란치즈계란말이' / 출처: AlexTheFood 인스타그램 리뷰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달걀의 모습은 이색적인 모습입니다! 명란치즈계란말이와 키토김밥이에요. 사실 명란계란말이도 익숙하고, 치즈계란말이도 익숙하니, 명란치즈계란말이도 뭔가 상상이 가는 모습이잖아요? 근데 이 친구 한 번 만나보시면 놀라실 거예요.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더라구요! 촉촉하면서도 느끼하면서도 면서도 고소팔색조 같은 면모가 궁금하다면 꼭 한 번 만나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보슬보슬, '트러플 키토마요' / 출처: AlexTheFood 인스타그램 리뷰
키토김밥키토제닉 다이어트가 뜨기 시작하며 등장한 친구인데요. 김밥의 주인공이었던 밥을 제치고 메인 자리를 차지하며, 다이어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트렌디한 친구랍니다. 나름 더 트렌디해지려고 트러플 오일에 다른 야채들까지 넣었던데, 한 번쯤 만나보면 또 색다른 재미가 있으실 거예요.

사실 더 소개해드리고 싶은 달걀의 모습들이 더 많지만, 오늘은 일단 이 정도까지만 하려구요.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 말하지 못한 이 친구의 모습들을 더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독자님만 알고 계시는 달걀의 모습도 아래 '답장하기'를 통해 알려주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 오늘 하루도 비슷한 루틴 속, 다양한 변주가 시작되기 바라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도 행복하시길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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