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봐야 알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해보지 않으면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야말로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 선을 그어봐야 다음에는 어떤 선을 그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상상만 해서는 그림이 늘지 않는다. 이 논리는 비단 그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 악기, 춤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해보아야 알 수 있고 해야지 늘 수 있다. 재능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 갇혀서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의 재능을 가늠하느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억울한 일이다. 그림을 꽤 오랜 그린 나도 아직 못 해본 작업 방식이 많고 의뢰인에게 할 수 있다 없다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최근에 트위터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 잘 하지 못하는 자신을 견디는 것이 어렵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들은 사실 미숙함이 곧 어린이라는 사회적 편견 안에서 보호 받기 때문에 어리니까 당연히 못하지!를 등에 업고 되레 더 편하게 실수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시점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면, 무언가를 잘하는 나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나의 격차를 견디기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고 사회적 지휘가 생긴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하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막말로 쪽팔리기 때문이다. 


22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충동적으로 자퇴를 하고 다른 학교를 가야 할지 혼자서 공부를 할지 선택에서 고민만 하다가 2년을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알아보았고 다 떨어지다가 취업과 비슷한 수준의 경쟁률을 거쳐 한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나보다 더 빠르게 아르바이트를 시작 한 친구들이 있었고 뒤늦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좀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아주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즐거웠고 할만했으며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서 내 세계가 넓어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후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게 되어 같은 학교에 재입학해서(피같은 돈…) 복수 전공도 하고 2개의 졸업전시를 마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예체능의 범주 안에서 살아온 나였지만 2차 성징과 생리를 핑계로 체육은 나와 멀어진지 오래였기에 28살에 다시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저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집 근처 수영장 안내 데스크를 가는 게 무서웠다. 불친절한 수영장 관리인과 몰려다니며 잔소리한다는 고인물 할머니들, 예측되지 않는 나의 체력 등의 이유로 몇 달을 그냥 보내다가 더운 어느 날 가볍게 가서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강의를 등록했다. 다행히도 강사는 친절했고 오전 반의 할머니들과 아줌마들은 유일하게 젊은 나를 귀여워해 주셔서 몇 달 만에 초급반에서 고급반으로 올라가 어느새 오리발을 사용하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코로나로 수영장이 닫으면서 다른 운동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집 근처 구민센터에 PT와 크로스핏을 합친 강좌가 생겼다는 것을 보고 그 운동을 등록했다. 운동 광인이 된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체력 자체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하는 크로스핏이 좀 어렵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팔 벌려 뛰기조차 헉헉거리면서 제대로 못하는 것을 알게 되니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었다. 철봉에 매달려 하는 운동인 풀엎은 당연히 못하고 줄넘기도 80개 채우는 게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날 다짐했다. 


‘해보긴 하겠지만 잘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그리고 다짐하고 다음날 강사님이 ‘여러분 운동 잘하고 싶으시잖아요?’ 라고 물었을 때 ‘저는 잘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마음이 어찌나 편하던지! 그러니까 힘들면 잠깐 쉬고 할만하면 하면 되었다. 하나 둘 새로운 운동들을 익히다 보니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졌다. 저번달에 버피를 하나도 제대로 못했다면 그 다음 달에는 10개는 무리 없이 했다. 그리고 어느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내가 나의 발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성장과 실패를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게 마음을 가뿐하게 만들고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못하는 나의 상태가 좋았다. 그 말인 즉, 해볼 수 있는게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림을 오랫동안 그리고 꽤 잘 그리게 되면서 무언가를 잘하는 내 상태가 좀 감흥이 없었고 새로 시작하는 그 마음을 다시 찾고 싶었기 때문에 자꾸 내가 못하는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파민을 위한 나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레터는 같은 주제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