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열한 번째 흄세레터
여러분은 어떤 결말을 좋아하시나요? 새드엔딩? 해피엔딩? 혹시 열린 결말이라고 대답하신 분? 🙋‍♀️ (일단 저는 아닙니다) 오늘은 열린 결말의 끝판왕, 《석류의 씨》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석류의 씨》의 후기를 보면 빠짐없이 결말에 대한 얘기가 있더라고요. 답답해 죽을 것 같다’라든가 작가 앉혀놓고 뒷부분 쓰게 하고 싶다’라든가...

오늘 소개해드릴 최은영 소설가의 글을 읽고 나면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충족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표제작 〈석류의 씨〉 속 두 주인공을 빌려 와 쓴 짧은 소설이에요. 주인공들의 성격, 상황... 읽는 사람마다 닮았다고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 같습니다. 
📚이디스 워튼, 〈석류의 씨〉 줄거리
다른 미래
최은영(소설가)

샬럿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샬럿은 그가 적어도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이기적이고 그녀의 성과를 깎아내리기를 좋아하고, 책임감 없고, 정서적으로도 메마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그녀를 기만하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외도가 밝혀지기 얼마 전, 친구와 통화하면서 샬럿은 그가 투명한 사람이며,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고, 거짓말을 덮기 위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었다. 이미 알아낸 진실에 대해 묻는 샬럿에게 그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진실을 알고 있는 그녀조차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떨림 없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거짓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게 아니었다. 비범할 정도로 거짓말에 능했을 뿐.


“남편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술 한 잔을 못 마시게 했다면서? 시시때때로 전화를 걸어서 간섭하고. 별것도 아닌 걸로 의심하고?”


이혼 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샬럿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소수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가 드셌다, 남자를 잡았다, 남자가 잡혀 살았다, 이런 말들은 그가 외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당화하는 말이었다. 여자가 작은 일에도 의심이 많았다, 의부증이었다, 이런 말들은 별것도 아닌 일을 외도로 부풀려 해석한 여자의 망상증을 비난하고 있었다.


의부증 환자, 집착과 망상 덩어리. 그건 이혼 후에 만들어진 말은 아니었다.

남편은 자신이 밖에서 술을 마실 때, 특히 밤 12시가 지났을 때 전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샬럿에게 그는 슬픈 목소리로 그녀와의 결혼으로 자신이 다른 선배 유부남들처럼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탄식했다.


그가 그녀에 대해 밖에서 어떻게 말하고 다녔는지 그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그의 친구가 그녀에게 “저는 샬럿 씨 같은 여자랑은 결혼 못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어느 날은 그의 친한 선배가 “샬럿 씨는 아직도 연애하는 줄 알아요? 남편이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걸 왜 물어요?”라고 따졌으며, 그의 지인인 어떤 남자는 “형 좀 그만 잡아요”라며 초면인 그녀에게 충고하기도 했다. 결국 그와 밤을 보내다 들킨 사람은 “샬럿 씨가 단둘이 몇 번 차를 마신 걸로 기분 나빠 했다는 걸 들었어요”라고 그녀의 ‘과민함’을 지적하기도 했으니까.


의부증 환자, 망상에 빠져 가련한 남자에게 고통을 안긴 괴물 샬럿.


그녀는 아직도 모른다.


하루에 적어도 여덟 번씩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확인했던 그의 태도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한 남편의 모습으로 해석되었는지, 그것이 어째서 집착이나 통제로 읽히지 않았는지. 신혼 시절부터 일주일에 두 번은 친한 친구의 집에서 외박했던 그가 실제로 그 집에서 머물렀던 것인지. 외도 상대와 언제부터 외도를 시작했던 건지, 그것이 결혼 후부터였는지, 혹은 결혼 전부터였는지. 샬럿 씨, 샬럿 씨, 웃으며 그녀를 대했던 그의 지인들은 외도에 대해 어디까지 알았던 것인지, 어디까지 조력했던 것인지.


그녀는 모른다.


만일 그녀가 결혼을 이어나갔다면, 이 모든 의문은 영영 해소되지 않은 채로 매 순간 그녀를 갈기갈기 찢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좋으니 진실을 원했지만 샬럿은 비겁한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없다는 것도, 그들이 얼마나 쉽게 진실을 왜곡하여 다르게 기억하는지, 자기 자신을 끝끝내 ‘좋은 사람’으로 남기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일까지도 쉽게 부정하고 그 거짓을 믿어버리는지도.


모두의 오해를 산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의부증에 빠져 남자를 괴롭힌 미친 여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거짓과 더불어 사는 일보다는 나았다.


샬럿은 확신한다. 자신이 결혼을 이어갔다면 그의 외도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먼 미래에서 그와 그의 조력자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로 괴로워하는 샬럿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며…… 미친 여자와 함께 사는 그의 고된 삶에 위로를 전했을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그런 미래를 택하지는 않았다.

“‘거짓말 위에 세워진’ 행복은 언제나 무너졌고,
그 폐허 밑에 주제넘은 건축가를 묻어버렸다.
그녀가 여태껏 읽은 모든 소설의 법칙에 따르면,
그녀를 이미 한 번 속인 적이 있는 디어링 씨는
반드시 계속해서 그녀를 속일 것이다.”
_〈편지〉에서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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