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4일
언뮤 뉴스레터 제12호
by 음악학 허물기
교수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 학생들이 자라서 교수가 되면, 그때는 결국 이 세대가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술을 다룰 거 아녜요. 그 방식은 뭐가 됐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은 아닐 텐데, 굳이 이 방식을 수고를 들여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모니카 친, 『더 버지』
기사의 내용은 뭐 대충 이런 겁니다. 언젠가부터 “파일을 위계가 있는 질서에 따라 폴더별로 분류하고 보관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하는 신인류가 출연하기 시작했다. 왜? 그냥 ‘검색’하면 되니까. 이 학생들은 바탕화면에 파일 백만 개를 때려넣고 필요한 파일은 검색해서 찾는다. ‘요즘’ 학생들은 구조적 사고를 하지 못 한다는 이야기로 잘 못 읽기 쉽지만 인터뷰에 응한 사빅 포드 교수의 말처럼 “요즘 학생들 정말 똑똑”합니다. 기사의 요지는 “우리가 쓰는 몇 가지 기술, 도구는 지금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을 토대로 가동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 물론 그 역도 성립합니다. 음악학도 마찬가지. 불과 10년 위 선배들과 전혀 다른 훈련을 대학원에서 받았습니다. 10년 아래 후배들은 또 완전히 다른 세대입니다. 음악을 연구하고 정의하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그래서 어렵고, 또 그래서 재밌습니다. 조건은 어느 세대건 간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 그 여정에 뉴스레터 언뮤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1. 미하일 글린카의 피아노 소품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172번째 방송에서 만날 작품은 19세기 러시아의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의 피아노 소품.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걸작으로 거론되는 이반 수사닌(1836)이나 루슬란과 류드밀라(1842)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습니다. 덕분에 오페라 작곡가로 기억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오페라는 이 두 곡이 전부입니다. 소수의 관현악과 실내악을 쓰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가곡과 피아노 소품들. 오늘날 그의 피아노곡은 영국 ABRSM 시험곡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막상 들어보면 글린카가 얼마나 놀라운 작곡가인지 알 수 있는 주옥같은 작품들입니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오늘의 원픽은 가을에 유독 잘 어울리는 〈녹턴 F단조〉, ‘이별.’ 지금 바로 감상해 보세요.
2. 음악과 질병, 장애의 문화사 DB
지난주에 밝힌 것처럼 ‘음악학 허물기’에 연구와 강의를 위한 DB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작곡가의 질병(질환) 서사 연구를 위한 DB “Pathography of Composers”를 오픈했습니다. 메뉴의 Medical Humanities > Database (beta)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아직 ‘베타’ 버전이지만 목표는 NYU 의대에서 운영하는 LitMed(The Literature, Arts and Medicine Database)에 버금가는 DB를 구축하는 것. LitMed에 입력된 3,359개의 데이터 중 음악과 어떻게든 관련된 항목은 152개(약 4.5%)에 불과합니다. 언뮤에 구축하는 DB가 LitMed의 ‘음악학’ 버전이 되길 바라면서 ‘음악 허물기’ 시간에 만난 작곡가 두 명의 데이터를 시험 삼아 입력했으니 한 번 둘러보세요. 작곡가의 이름을 클릭하면 다양한 정보들로 연결됩니다. 주위에 필요한 분들 있으면 많이 알려주세요. 질병 서사에 관한 좋은 책들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최근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동아시아, 2021)를 추천합니다.
3. 음악학 강의를 위한 디지털 자료들
지난주 공개한 DB “Online Resources for Teaching Musicology”에 최근 새 단장한 “Bloomsbury Music and Sound”와 “Composers of Color Resource Project,” “Digitale Mozart-Edition (DME)” 등 총 5개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뉴스레터 발행 이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소식이 될 줄은 몰랐는데(거짓말이고 사실 예상했습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음악학 분야의 더 많은 학생들과 교강사 선생님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알려주세요. 메뉴의 Teaching > Resources 혹은 아래 버튼으로 연결됩니다.
4. 브라이트 솅의 ‘블랙페이스’ 오텔로
인종 차별주의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 예민한 요즘. 영미권 음악(학)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습니다. 최근에도 셰익스피어부터 베르디까지의 오텔로를 분석하는 자신의 수업에서 로렌스 올리비에 경의 ‘블랙페이스’ 오텔로로 유명한 존 덱스터의 1965년 영상을 사용한 브라이트 솅 미시간대 작곡과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해임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분이 아직도 학교에 계신가 했는데 석좌 교수가 되셨더군요. 덱스터의 1965년 작품을 제외하고 오텔로 연구와 강의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구성원 간의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솅의 사과문과 학생들의 공개 서한을 포함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버튼으로 연결됩니다. 참고로 이 글은 학생(기자)의 입장에서 작성된 것입니다. 문제가 된 덱스터의 《오텔로》도 (원한다면) 감상해 보세요. 그나저나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블랙페이스’로 출연한 1996년 프로덕션은 사실상 퇴출 분위기인데 르네 플레밍의 데스데모나를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블랙페이스’ 오텔로는 안 되지만 바그너 오페라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네요.
5. 뉴스레터 C 발행 소식
제가 연구원으로 있는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뉴스레터 C♯을 발행합니다. 한 달에 두 번, 국내외에서 발행하는 음악학 관련 학술지 소식을 정리해 메일함으로 보내드립니다. 젋은 감각의 담당자가 열일하고 있어 저는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언젠가 뉴스레터 언뮤와의 콜라보도 기대해 봅니다. 음악학자와 학생들을 위한 C♯레터의 첫 발행일은 10월 7일(목). 지금 바로 구독하세요. 물론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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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허물기 Undoing Musicology
© 2021 Hee Seng K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