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존중 부탁해요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Friday입니다. 

오늘은 왜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면 안 되는지 써보려고 합니다. 리메이크는, 쉬운 애정이거나 게으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거스트~스러운 주관적 감상에 따른 분석이오니 업계 관계자 분들은 선배 미소를 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늘의 에디터 : Friday
잠을 많이 못 자서 예민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1. 여러분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2. 일드와 한드의 차이는...
3. 일본은 대체 왜 그러는거야?
4. 요상하고 이상한 나라

😋 여러분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요즘 누굴 만나면 꼭 물어봅니다. "취미가 뭐에요?"
딱히 취미가 없던 저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었고 덕분에 집에 오는 택배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파산할 것 같아 다른 취미를 찾고자 이것 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러닝부터 클라이밍, 전시회, 마작까지… 다 재밌긴 한데 (이것도 다 돈이었고) 마음 먹지 않아도 손이 가는 건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 드디어 한 가지 취미를 찾은 것 같아요. 바로 일드! 일본 드라마(이하 ‘일드’)를 보기 시작한 것이죠.

저는 원래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TV를 보면서 드라마 평론(?)을 하곤 했어요. 한국 드라마는 물론이고 흔히 말하는 미드, 영드까지 섭렵했죠. 추억의 석호필과 프렌즈, xoxo~ 가십걸, 그리고 스킨스, 셜록… 하도 유명하니까 많이들 보셨겠죠? 넷플릭스가 생기면서 더 다양하게,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출처: Unsplash
하지만 일본 드라마는 잘 보지 않았습니다. 편견 때문이었죠. 일드를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을 받으면 오타쿠냐고 놀리곤 했었어요.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일드에 빠져버리게 될 줄. 저 말고도 매니아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대중적이진 않으니까요. 알고 보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본 드라마 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리메이크한 사례도 많았는데 드라마에선 딱 떠오르는 게 많지 않네요. 기억나는건 <꽃보다 남자>와 <하얀 거탑> 정도? 가장 최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명작으로 꼽았던 일본 TBS 드라마 <중쇄를 찍자!>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오늘의 웹툰>이 1.6%의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습니다. 분명히 일드를 리메이크한 사례는 많은데 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을까요?
출처 : SBS

👀 일드와 한드의 차이는...

출처 : TBS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여기서 스타일은 단순히 느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드라마는 영화 같고, 일본 드라마는 문학 같습니다. 한드가 장면 한 컷 한 컷의 연출에 공을 들인다면 일드는 마치 줄글처럼 대사를 읊습니다. 중간 중간 독백 형태의 나레이션도 자주 삽입되죠.  


그래서 일드를 보고 있으면 마치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그 느낌을 좋아하지만, 어찌보면 촌스럽고 오글거리죠.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10여 년 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되었던 후지TV의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의 어느 한 장면에서는 2분 남짓한 시간동안 한 사람이 다음 대사를 소화합니다.

출처 : 왓챠 (후지TV '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진실은 하나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있다고 합시다. 어느 날, 계단에서 부딪혀서 B가 떨어져 다쳤습니다. B는 평소에도 A가 자신을 괴롭혀서 이번에도 일부러 민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A는 자신이 괴롭힌 게 아니라 같이 논 거였죠. 이번에도 그냥 부딪힌 거라고 합니다. 둘 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이럴 때 진실은 뭡니까? 괴롭히지 않았다는 건 A의 생각일 뿐입니다. B처럼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거죠. 사람은 자기 주관으로만 대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옳다고 말할 수밖에 없죠. 그곳에 일의 자초지종을 목격한 C가 있었다면 또다른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죠. 신 같은 제3자가 없다면 알아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 전쟁이나 분쟁에서도 적끼리 행한 일과 당한 일이 다른 거죠. 둘 다 거짓말이 아닌데도 이야기를 부풀리지 않았는데도 절대 일치하지 않아요. A에게는 A의 진실이 전부이고 B에게는 B의 진실이 전부죠. 아오토 씨, 그러니까요. 진실은 하나가 아닙니다. 둘도 셋도 아니죠. 진실은 사람의 수만큼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이 경우에는 A와 B가 부딪혀 B가 다쳤다는 거겠죠. 경찰이 조사해야 할 건 그겁니다. 사람의 진실이 아니라요. 진실 같은 애매모호한 것에 사로잡혀 있으니 누명을 씌우게 되는 거 아닐까요?”

(1화 중에서)

주인공인 쿠노가 말빨로 추리를 선 보이는 드라마긴 하지만 다른 일본 드라마들도 대사가 긴 건 매한가지입니다. 이렇게 대사와 나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소화하다보니 함의를 내뿜는 눈빛이라거나 섬세한 표정과 몸짓, 미쟝센으로 보여주는 복선 같은 것들이 존재감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대신 말로 설명하고 남은 감정만이 의무를 다하듯 과장된 연기로 드러나죠.


우리가 보통 일드를 볼때 느끼는 어설픔은 여기서 기인합니다. “스토리는 좋은데 연출이 구려”라는 평은 일드의 특징을 한 번에 설명합니다. 물론, 스토리와 더불어 연출까지도 빛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상향 평준화된 한국 드라마와는 달리 드물게 눈에 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스케일이 크고 세련된 속도감이 특징인 영미권 드라마에 익숙해져, ‘쫄깃함’을 미덕으로 보는 한국 시청자들과는 결이 맞지 않죠.

문화강국 일본이 드라마에서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철저히 내수용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의 기사 중 서장호 CJ ENM 콘텐츠사업부 상무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은 DVD를 포함한 유료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덜해 국내 소비자만 겨냥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데 반해 한국은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제작비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 해외 판매를 하지 않아도 한국에 비해 10배나 되는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니 자가발전이 딱히 필요 없는 영역일 수 있겠네요. 반대로 한국의 경우 해외에서 돈을 따오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되는 상황인거고요. 자연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다보니 퀄리티가 올라갔습니다. 동시에 한국 시청자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졌죠.
  
  
출처 : 위키피디아 (2022년 1분기 일본 드라마 목록 중 일부)
문제는 내수용이라 한들 일본 내에서도 변화와 발전이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일본은 형식와 격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행을 갔을때 느끼는 질서라든지, 계절의 흐름을 나타내는 계절어를 꼭 넣어야 하는 정형시인 ‘하이쿠’라든지, 바보 역할과 다그치는 똑똑한 척 하는 역할로 이루어진 2인조 만담을 봐도 알 수 있죠. 드라마에서도 성역할이나 캐릭터성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이미 유명한 작가나 배우만 쓰려는 경향이 강하죠.

제작자들도 문제점에 대한 생각이 있을겁니다. 그럼에도 도전하지 않습니다. 그저 드라마를 찍어내죠. 드라마를 찍어낸다고 표현한 것은 실제로 일본이 한 분기에 편성하는 드라마 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2022년 1분기 일본 드라마 수는 132개로, 우리 나라가 16개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죠. 일본 드라마는 주 1회 방영하는 데다 보통 10~12부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1회 시간도 주로 한 시간을 잘 안 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기에 100개가 넘는 드라마를… 드라마 관계자 지인에 따르면 “일본 드라마는 품이 적게 들어서 많이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연출 자체에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으니 돈도 덜 들겠지요. 우리나라 드라마의 제작비가 평균 100억에서 300억원 투입된 반면 일본 드라마의 제작비는 작품당 11억에서 53억원 정도라니, 상당히 투자가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일본은 대체 왜 그러는거야?

‘스타일’이라고 쓰긴 했지만, 결국 ‘정서’의 문제입니다. 일본이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 환경, 신념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다릅니다. 잠깐, 다른 책 이야기를 해봅니다.
출처 : 글항아리 페이스북
굉장히 재밌게 읽었던 책 <<일본의 굴레>>를 쓴 태가트 머피는 쓰쿠바 대학에서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를 지내면서 일본에서 40년 이상 살았지만, 동시에 서양인인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봅니다.

책을 읽기 전 저도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일본은 분명 획일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사회 같은데, 왜 동시에  ‘오타쿠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개성이 강한 나라일까? 왜 앞에서는 완벽하리만큼 친절하고 뒤에서는 엽기스러울만큼 기괴한 범죄가 일어날까? 평소에는 생각을 숨긴 채 침묵하고, 민폐 끼치는 것을 가장 수치스러워 하는 민족이 왜 전쟁이라는 갈등을 일으켰을까? 부패한 자민당이 계속 당선되고, 잃어버린 10년이니 버블 경제니 해도 왜 GDP 3위일까? 페미니즘이니, 백래쉬니, 일본에서는 왜 그 어떤 운동도 일어나지 않을까? 일본에 관심이 많은 만큼 질문도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머피에 따르면,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권력구조’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시절,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뒤에선 막부 정치가 횡행하고 사무라이 계급이 평민을 아무 이유없이 칼로 벨 수 있는 규정이 수백 년간 존재했죠. 눈치 볼 곳이 너무 많았던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집단에 순응하고 제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나를 해할 수도 있는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문화도 여기서 생긴 것이겠지요. 일본인의 정서라고 불리는 ‘아마에(甘え)’는 ‘어리광’이라는 뜻으로 ‘자신보다 힘 있는 사람에게 마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척 해서, 상대가 들어주면 관대한 기분을 느끼게 유도하는 행동’을 말한다고 합니다. 패전 후 미군정이 일본에 강요한 헌법을 겉으로 받아들였지만, 현실에선 해오던대로 과거의 정치를 버리지 못한 일본은 그때부터 모순을 지고 삽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권력구조때문에 전쟁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죠. 하지만 일본은 그 모순마저 ‘받아들임’의 정서로 수용합니다. 한때 이런 단결성과 희생이 성장의 원동력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게나 그렇듯 세상은 바뀌었는데 체념의 정서로 일관하는 일본이 쇠락하는건 당연해보입니다.

👘 요상하고 이상한 나라

사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아 아찔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할 수 있으면 하구요, 일본 드라마 얘길 하다가 갑자기 책 이야기까지 한 건 두 가지 이유입니다.
먼저, 이렇게 특이한 이중성을 가진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깝다고 문화적으로도 가깝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할 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모도 비슷하고, 집단 생활하는 모습도 비슷하니까 정서적으로 차용할 수 있는 점이 많을 것이라구요.

제 생각엔 과장해 얘기해서 ‘인류애’와 신체적 조건 말고는 공통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드가 리메이크 되었을때 가장 지적받는 부분을 떠올려보면, ‘과장된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다’ 혹은 ‘과장된 연기가 매력적인데 살리지 못했다’입니다. 일본 드라마 속 과장된 연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워낙 만화에 친숙하고 만화 기반 작품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앞서 책을 통해 설명했던대로 일상과 만화의 모순, 그 간극을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코믹 카툰 요소가 사랑받긴 하지만 일본만큼은 아니지요. 글 초반에 언급했던 SBS 드라마 <오늘의 웹툰>의 김세정 분도 깨발랄 그 자체인 원작 주인공을 한국에 맞게 연기하느라 힘들었을겁니다. 원작의 팬도 원작을 안 본 사람도 다 만족시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출처 : Nippon Television Network Corporation
가장 애정하는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두 번째, 그럼에도 저는 일본 드라마를 좋아한단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연출 미쳤다”라는 감탄은 안 나오지만 잔잔하게 스며드는 매력이 있거든요. 희한하게도 ‘따다다다’식 대사가 어떨 땐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담담한 위로를, 속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하기도 하더라구요. 바로 전까지 세상 크리피하게 일본을 묘사한 것 같아 민망하지만, 태가트 머피의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출판사 리뷰지만 너무 와닿아 레터에 남겨봅니다.
일본 사람들은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일본에서는 할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도(그리고 모두들 그렇다는 사실을 안다) 잘해내야 한다. 

(중략)

조금만 무언가를 하면 ‘오쓰카레사마데시타!お疲れ樣でした!’(과장된 감사의 톤으로 당신의 커다란 희생에 대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라는 외침이 되돌아온다. 누군가에게 차 한 잔과 디저트를 대접하면 진수성찬을 대접했다는 감사를 받는다(고치소사마데시타御馳走さまでした). 반대로, 성대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갔는데 너무 차린 게 없어서 부끄럽다는 인사를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형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이고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형식에 자발적인 감정이 가득한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모두가 그런 기대에 부응해 행동하고 있고 그게 또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가장 공허하고 형식적인 행위들이 오히려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중략)

하지만 타인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최고의 동료를 가진 것처럼, 누가 됐든 지금 상대하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양 행동하다보면, 애정이나 존경 그리고 주어진 일을 최대한으로 잘해내려는 의지 같은 감정을 실제로 내면화하게 된다.             

(<<일본의 굴레>>, 태가트 머피, 글항아리)
남의 말을 빌어 쓰지만, 이게 제가 일드를 보는 이유입니다. 너무 대놓고 교훈 주려고 힘을 빡 줘서 귀여워 보이는, 그래서 알면서도 당하는 위로가 있습니다. 터덜터덜 힘든 하루 끝에 맥주 한 캔과 함께 가벼운 일드를 보고 있으면 요상하게도 행복해져요. 일본은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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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Friday>의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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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구운김 • 식스틴 •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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