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를 소소하게 뜯어고쳤습니다.

Gathering Words 라는 작은 코너를 신설했어요. 책을 읽다가 마주친 낯설고 신선한 단어들을 소개할게요. 

편집부의 취향 발산에 주력했던 Footnoters' Pick 코너에 마티와 함께해온 저자, 번역가, 디자이너의 Pick이 격호로 소개됩니다. 첫 손님은 『푸투라는 쓰지 마세요』, 『다른 방식으로 듣기』를 옮긴 정은주 번역가입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구독자의 Pick도 받습니다. 본문 하단의 "Footnoters' Pick"에 참여해주세요. 선정되신 분께 마티 책을 선물로 드려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버튼을 만들었어요. 마티 책과 편집부에 질문과 의견을 남겨주세요. 하나씩, 할 수 있는 선에서, 다음 각주*에서 답변드릴게요.


소소한 개편이지만 대단히 새롭게 즐겨주세요!🩵🩶❤️

한국 결식 아동 수가 30만 명이 넘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말이죠. 기초수급생활자로 살아온 97년생 저자 안온은 '요즘' 가난이 어떤 모습인지 일인칭으로 써 내려갑니다. 거침없이, 그러나 신중하게 쓰인 『일인칭 가난』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11월 출간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화 멸균우유


“방학식 끝나고 17번, 28번은 집에 가지 말고 교무실로 와서 우유 받아 가세요.” 17번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고 28번은 나였다. 우리 둘은 친구들이 다 떠날 때까지 교실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교무실에 갔다. 그러면 작년에도 만난 다른 반 아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선생님이 서울우유 멸균 팩 스물네 개가 들어 있는 상자를 두 개씩 나눠줬다. 열한 살이 들기에는 묵직했다. 나는 운동장에 아는 얼굴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질긴 비닐로 덮인 우유 팩의 윗부분을 쓰다듬으며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우유 상자를 들고 언덕배기에 있는 금곡주공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내가 고수했던 콘셉트는 공부도 잘하고 학원도 여러 개 다니고 엄마, 아빠에게 사랑도 듬뿍 받는 아이였다. 그 콘셉트를 지키려면 이 정도 수고는 들일 수 있었다. 그래도 한둘은 집에 가다가 마주쳤다. 한번은 어떤 아이가 왜 너만 그걸 받느냐고 물었다. 나는 반장이어서 우유를 받으러 오는 다른 아이들을 도와줬는데 선생님이 남은 걸 가지고 가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빠는 그 우유가 참 고소해서 좋다고 했다. 아빠를 위한 우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윳값이 굳어 엄마의 독박 살림에 보탬이 될 테니 그것으로 족했다. 방학식에 멸균우유 두 상자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아이. 그것이 내 기억 속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첫 번째 모습이다.


우리 집은 아빠의 술안주나 때때로 입이 심심한 나의 간식으로 그 우유를 소비했지만, 같은 반 남자아이 A는 그 우유를 상당히 소중하게 여겼다. 나와 A는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한번은 나란히 교무실에 서 있다가 내가 우유를 들고 아파트 언덕을 오르는 게 짜증난다고 투덜거렸더니, 그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우유 덕분에 할머니가 빈속에 약을 드시지 않아도 된다면서. 자기는 남자라서 네 상자쯤은 거뜬히 들 수 있으니 언제든지 우유를 넘기라고 똑똑히 말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상자 다 주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한 상자라도 A에게 주면 내가 간식으로 마실 우유를 아빠 술안주로 전부 뺏길까 봐 “무거워서 짜증이 난다는 거지 안 들고 간다고는 안 했어. 그리고 여자도 네 상자는 들 수 있거든” 하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A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A가 우유를 안고 가는 뒤에서 나도 내내 우유를 안고 갔다. 다른 친구들이 A와 내가 사귀는 게 아니냐며 주위에서 키득댔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사실 나도 이 우유가 꽤 고마워. 아까 내가 했던 말은 조금 철이 없었지?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많고 많은 음료와 음식 중에 ‘멸균우유’를 나눠준 것은 어떤 ‘배려’였을 것이다. 멸균 제품이라 실온에서 3개월쯤 보관할 수 있고, 복지 대상 아동보다 더 어리거나 소화기관이 약한 고령자도 섭취할 수 있다. 지금은 ‘배려’가 좀 더 추가돼 우유를 학생이 들고 가도록 하지 않고 택배로 보내준다고 한다.


당시에도 결식아동을 위한 식비 지원 제도가 있었다. 내가 살았던 부산시의 경우 2000년부터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급식 사업을 실시해왔다. 처음엔 식권을 배부하는 형태였다가 2009년 무렵에 아동급식카드로 바뀌었다. 왜인지 나는 이 제도를 이용하지 못했다.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와 통화하던 아빠가 식권은 됐고 쌀이나 받으러 가겠다고 말했던 사실만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이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야 뉴스를 통해 아동급식카드를 알게 됐다. 아이들이 스스로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기사는 아동급식카드를 거부하는 식당이 많다고 지적했다. 아동급식카드는 내밀기만 하면 식당에서 무료로 음식을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한 끼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지자체마다 다른데 대부분 8,000원 선이다. 물가를 반영해 오르고 있다지만 8,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 ‘아동급식카드 환영’이라는 문구가 붙은 식당을 보면 일부러 메뉴를 더 시켜 매출을 올려주거나 계산을 하며 1-2만 원을 더 내곤 했다. 아이가 1식 결제 금액을 상회하는 메뉴를 골라도 기꺼이 내어달라는 마음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동안 나는 다른 형태의 멸균우유들을 받아왔다. 전기요금과 통신요금 일부를 감면받았고, 매달 일반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다섯 장씩 지급받았으며, 1인당 5만 원씩 지원된 문화누리카드로 엄마와 가끔 영화를 봤다. 무료 급식, 수학여행비 지원, 대학 입시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참 고마웠다. EBS 교재는 다른 참고서의 반값 정도였고, 개중 수능 연계 교재는 사회적 배려 대상 학생을 위해 과목별로 몇 권씩 학교에 납품되었다. 학생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선택 과목의 교재도 항상 여분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가난하니까 공짜 교재로 공부해라’라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 ‘너는 공부할 권리가 당연히 있으니 과목을 잘 고르라’는 격려와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교무실에서 받아 온 것이 멸균우유가 아니라 수능 교재가 되었을 즈음, 나는 그것이 여전히 무거웠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지은이 안온

가난하고 지난한 날에서 지나간 불온을 기록하는 사람. 나의 불온한 나날에 대한 기록이 당신의 생을 안온하게 덥히는 땔감이 되길 바랍니다.

쇄락(灑落/洒落)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대신 나는 쇠락과 쇄락을 가르쳐 줬다. 문제는 둘의 의미를 뒤바꾸고, 떠나기 전까지 바로잡지 못했다는 거였다.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하다는 의미의 ‘쇄락’을 ‘쇠락’이라고 써 준 거였다. 마담 J는 쇠락이란 단어를 좋아했다. 이 말에서는 바람 소리가 나는구나. 상쾌하고 깨끗하다는 의미를 그래서 외우기 쉽겠어. 오랜 후에야 반대로 가르쳤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좋아했던 건 쇠락일까 쇄락일까.” 

김지승, 술래 바꾸기 (낮은산, 2023), 181.

❝ 번역가 정은주의 일일 ❞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 봄에 계약이 만료된 작업실을 철수하고 서울 망원동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심하고 고요한 저의 일상을 함께하는 친구들(?) 소개합니다.

하이놀리

빵을 그리 즐겨 먹진 않던 저는 3 망원동으로 이사한 친구가 추천한 동네 빵집 하이놀리에서 시골빵과 호밀블럭을 맛보고 반해서 매일 아침 빵을 먹고 있어요. 빵은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은 식사빵이 전문입니다. 종류는 많지 않지만 모든 빵이 맛있고, 사장님도 무척 친절하시고, 간혹 토마토수프나 들깨버섯치아바타 같은 특별 메뉴도 준비돼요. 거의 매주 방문해 이빵 저빵 돌아가며 사서 냉동해뒀다 팬에 데워 먹습니다. 3, 오후 시간에만 문을 열고 제품이 소진되면 닫기 때문에 사기가 쉽지 않은 유일한 단점이지만 저는 가까워서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이놀리를 아는 친구들한테 뻐기기도 해요. 방문 전에 인스타그램 계정 확인하고 각오를 해야 하지만 맛을 보면 모든 용서된다는 후기가 많은 곳이에요.


황정은의 야심한

예스24 팟캐스트책읽아웃황정은의 야심한 매일 침대에 누워 듣습니다. 식물 키우기에 한창 빠졌을 EBS ‘임이랑의 식물수다 즐겨 들었는데 방송이 종료되어 들을까 찾던 중에 고정적으로 듣게 팟캐스트예요. 작가님 목소리와 말투가 차분해서 자기 전에 듣기 좋기도 하지만 날카롭고 단호한 면이 정말 매력적이고, 인터뷰어로서도 너무 훌륭해서 감탄하곤 해요. 그러면서도 웃을 때는 더없이 해맑게 웃으셔서 따라 웃게 됩니다. 게스트 없이 제작진 분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삼자대책코너도 재미있고 유익해서 듣고 있고요. 듣다 잠들어서 보통은 편을 며칠에 걸쳐 듣지만요.

밴드캠프

저는 구독형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번역한 『다른 방식으로 듣기』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은해변의 모래알처럼 너무나 많은 음악을 너무나 쉽게 들을 있는 세상이죠. 그래서 음악 플랫폼은 밴드캠프 하나만 이용해도 관심 가는 음악들을 들어보기가 벅찰 지경입니다. 음원과 음반을 구매할 있는 밴드캠프는 음악가와 레이블에게 가장 공정하게 수익을 배분하는 플랫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로나로 공연 수입이 줄어든 음악가들을 위해 수익금 전액을 음악가에게 주는 날인밴드캠프 프라이데이 2020 3월에 시작해 여전히 운영하고 있고요. 전문 필자들이 직접 선곡하는밴드캠프 데일리 어떤 알고리즘 추천보다 믿을 만하다고 확신해요. 밴드캠프 업데이트 소식을 이메일로 구독 중인 음악가와 레이블의 신보를 체크하는 것으로 매일 하루의 음악을 시작합니다.


월드컵시장

망원시장이 끝나면 마포구청역 방면으로 월드컵시장이 이어집니다. 망원시장보다 작고 깔끔하고 오래돼 보이는 시장이죠. 그래서인지 훨씬 한적하고 놀랄 만큼 활기가 없습니다. 망원시장을 이용한 지는 오래됐지만 전에 살던 집은 합정동이어서 월드컵시장까지 일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월드컵시장이 가까워서 자주 이용하는데 알고 보니 동네 주민이장보기에는 망원시장보다 좋은 시장이더군요. 거의 집에서 밥을 먹다 보니 1 이상은 갑니다. 특히 모든 김치가 맛있는게박사’, 보통의 반찬 가게에서 보지 못한 머위대찜, 궁채나물, 노각무침 등을 파는 나물 맛집여주반찬’, 두부와 콩물과 식혜 등을 직접 만드는거두식품 단골 가게들입니다.

한여름의 끝에 박물관 소풍: 아무 때나 가볍게 저자 북토크가 열립니다. 전국 10곳 국공립 박물관을 미리보기 해보세요!

◌ 일시: 8월 31일(목) 오후 7시~

◌ 장소: 구산동도서관마을 (서울 은평구 연서로13길 29-23)

◌ 문의: 02-357-0100 (내선 3)

◌ 신청: https://www.gsvlib.or.kr/culture/event.asp?mode=view&lecture_seq=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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