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정이 어떤지 시리아 난민에게 들었다
베를린의 공존 실험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3.17. 금요일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큐레이터 최미랑 기자입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기사를 열심히 골라 전하고 있어요.

이사철이 돌아왔나봅니다. 주변에 집 구한다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독일 베를린도 서울만큼이나 주거난이 심각한 곳입니다. 집값이 폭등해 베를린시가 임대료를 동결하는 정책을 쓴 적도 있어요.

베를린은 지금, 전 세계 난민이 속속 모이는 지역입니다. 독일은 시리아 내전 때 대규모로 난민을 받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또 많은 난민을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좀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독일 시민들이 난민을 더 많이 수용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얘기해, 선주민으로서 그저 달가운 일만은 아닐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낯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나라도 유엔난민협약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난민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인구 절벽 앞에 이민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고요.

어느 지역에서 이슬람 사원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를 놓고 심지어 돼지고기 파티까지 벌인 사건을 생각하면 착잡합니다.  

독일은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요? 유럽에 체류 중인 박은하 기자가 베를린에 사는 시리아 난민에게 직접 듣고 왔습니다.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눠봐요. 기사는 약 5분 분량입니다. 
☑️ 독일은 2014~2015년에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데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도 대폭 수용하고 있다.

☑️ 시리아 난민 사태 때 겪은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은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졌다. 정부가 지원정책을 준비했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집을 내주었다. 갈등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평균적인 여론은 난민에게 우호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 베를린은 난민처럼 독일 시민권이 없는 이들도 지방의 정치와 행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각 구별 참여·통합 자문위원회를 운영한다. 세계 여러 나라 출신의 거주자가 머리를 맞대 다양성 문제를 논의하고 해법을 찾는다.
시리아 난민과 공존···베를린은 한발 더 나갔다
2023. 03. 16. 박은하 유럽순회특파원
시리아 출신 난민이자 베를린 트렙토우-쾨페닉구 참여·통합 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인 압둘라 알 살레가 2일(현지시간) 베를린의 한 시리아 식당에서 자신의 난민 경험과 난민 정책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베를린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날이 아득하다 것을 의미한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전 세계 각지의 분쟁과 전쟁들은 난민들이 잠시 머물다 떠날 수 있는 ‘나그네’가 아님을 알려준다.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거 수용한 독일은 이들과 장기적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지난 2일(현지시간) 베를린의 한 시리아 식당에서 압둘라 알 살레(48)를 만났다. 시리아 알레포 출신인 그가 난민으로서 겪었던 경험과 독일의 난민 정책에 관해 듣기 위해서였다. 압둘라는 유럽 난민 위기가 불거진 2015년 독일에 정착했다. 현재는 IT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지난달 발족한 베를린 트렙토우-쾨페닉구의 참여·통합 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압둘라는 음식을 주문하면서 지진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된 고국에 대한 걱정과 슬픔을 전했다. 두 딸이 BTS의 열렬한 팬이라고도 했다. 압둘라를 만난 식당은 독일에서 흔한 패스트푸드화된 시리아 음식이 아닌 시리아식 정찬을 파는 곳이다. 시리아 출신이 아닌 손님들이 더 많았고, 역시 시리아 난민 출신인 직원 크리스틴이 능숙한 영어와 독일어로 주문을 받았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를 정치적 위기로 몰아넣었던 ‘2015년 난민 위기’의 파고를 넘어, 난민이 독일 사회에 어느 정도 녹아든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정부와 시민이 함께 쌓은 경험치

압둘라는 “독일에 온지 7년이 돼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 것 같다”고 말했다. 압둘라는 시리아에서 건설 엔지니어로 일했다. 2011년 발생한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발흥으로 시리아 전체가 쑥대밭이 되면서 난민 대열에 올랐다. 먼 삼촌이 살고 있는 독일을 행선지로 택했다. 독일 정부로부터 베를린의 대규모 임시거주 시설을 배정받았다. 당시 베를린은 치솟는 집값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뜨겁게 불거진 상황이었다. 난민이 대거 유입되자 주거난은 더욱 심각해졌고 난민을 향한 시선은 따가웠다.

압둘라는 시리아에서의 경력을 살려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시리아의 엔지니어링 관련 경력과 자격증은 인정되지 않았고, 독일어도 새로 배워야 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인 조부모로 인해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인으로 분류돼 취업 장벽이 더 컸다. 건설 보조 일로 돈을 모으면서 6년 가까이 임시거주 시설에서 살다가, 최근에서야 베를린 동쪽 외곽에 따로 집을 구해 이사했다. 독일 연방 정부가 사회통합 차원에서 일정 비율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난민의 몫으로 조성한 주택단지이다. IT 엔지니어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한 것도 불과 몇 주 전의 일이다.

압둘라는 자신이 시리아에서 전문직 종사자였기 때문에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여전히 많은 난민들에게 적응은 힘든 일이다. 압둘라가 지금도 예전에 거주하던 난민 임시거주 시설을 종종 방문해, 다른 난민들에게 취업이나 행정 관련 문제를 도와주는 일종의 사회복지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독일 정부는 다시 한번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인에게 독일 거주자의 장기실업수당에 준하는 지원도 즉각 이뤄졌다. 시민들은 대규모 수용시설에만 맡기지 않고 난민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내놓기도 했다. 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 모임도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독일 사회의 신속한 대응은 시리아 난민 사태를 통해 겪은 경험과 시행착오 덕에 가능했다.

이는 난민에 대한 독일의 평균 여론이 시리아 난민 위기를 거치면서 우호적으로 변한 덕분이기도 하다. <힙베를린- 갈등의 역설>에 따르면 2018년 독일 통합·이민재단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는 ‘난민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했고, ‘장기적으로 난민이 독일에 문화적, 경제적 이득을 줄 것’이라는 질문에도 70%가 동의했다.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7년 총선에서 연방의회 제3당이 됐지만 2021년 제5당으로 떨어졌다. 난민들과 정착해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해 본 결과였다.


갈등을 넘어서는 통합을 위해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인한 갈등이 주목받았던 2014~2015년에도 난민을 환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조직됐다. ‘환영의 문화(Willkommenskultur)’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압둘라 역시 “독일인들이 시리아인들을 손님으로 맞이해줬다는 고마움이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난민으로 살면서 느낀 불편한 점을 그 동안 이야기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압둘라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왔을 때 보여준 독일 사회의 모습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임시거주시설의 시리아 난민들이 퇴거해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임시거주시설은 ‘더 긴급한’ 이들을 우선 배정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독일인과 더 닮은 사람들을 우대한다’는 의심이 들기는 충분했다. 압둘라는 “유럽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신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고 그 점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대체로 독일 행정의 관료주의와 관련된 부분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어 수준이 일정 이상을 넘지 못해도 취업을 허가해주는 예외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이 아직까지 시리아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외 조항은 왜 우크라이나인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평균적인 여론이 난민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선 것과는 별개로, 노골적인 인종혐오도 동시에 늘어났다. 압둘라는 “모르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등의 공격을 받는 일이 체감적으로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이웃 여성이 모르는 이로부터 폭행을 당한 이야기도 전했다. 여론의 극단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을 향해서도 ‘우크라이나 난민이 독일인보다 더 우월한 대접을 받는다’, ‘극단적 범죄를 저지른다’는 가짜 뉴스가 온라인에서 대량 유포되고 있다. 원국적을 가리지 않고 난민과 이주민에게 크게 위협적인 상황이다.

베를린이 주법으로 각 구별로 ‘참여·통합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 것도 여론 일각의 극단화가 이뤄지는 현실에서 다양성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베를린에서 면적상 가장 큰 트렙토우-쾨페닉구의 참여·통합 자문위원회는 총 27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24명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폴란드, 영국, 러시아 등 17개 국가 출신이다. 한국인 정치철학자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도 자문위원에 포함돼 있다. 이진 소장은 통합·자문위원회를 “난민 등 독일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대표성을 부여해 지방의 정치와 행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기구”라고 설명했다.

압둘라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난민 정책 설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난민들은 의무적으로 독일어 수업을 듣고 일정 점수를 넘겨야 하는데, 시리아에서 온 고령의 난민들은 평생 학교를 안 다녀 본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분들이 문법 중심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이런 분들은 슈퍼마켓 등에서 쓰이는 생활 독일어 중심으로 가르쳐주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또 주거를 더 공정하게 배정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있고요.”

압둘라는 “누구나 자신의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이 고향인 압둘라 아버지의 아홉 형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흩어져 살다 이산가족이 됐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이 과정에 책임이 있다. 중동 정세에는 미국이 오래 개입했고, 시리아 내전에는 러시아가 적극 간여했다. 국제정치가 실패한 자리에 난민이 발생한 셈이다. 베를린에서는 난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정치이자 작은 국제정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압둘라는 다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리아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유럽 국경을 두드리던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1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을 포용하기로 했습니다. EU의 다른 나라들이 난민 유입을 막으려고 애쓰던 상황이었어요.

“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우리가 국경에서 거부한다면 독일은 더이상 나의 조국이 아니다.”

메르켈 총리는 당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여론은 싸늘했고 여당 지지율은 떨어졌습니다. 이는 2017년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연방의회에 입성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메르켈 총리는 이 정치적 위기를 잘 넘기고 2021년 퇴임했습니다. 현재는 시리아 난민 유입 사태를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독일 시민들의 난민에 대한 여론은 매우 우호적으로 된 듯합니다. 그러나 결코 갈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압둘라씨 얘기를 들어보니, 노골적인 혐오가 여전히 난민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 같고요. 이번에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이 비교적 매끄러웠던 것을 두고, 중동 출신 난민에 대한 차별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베를린시가, 난민과 이주민 당사자가 참여하는 정치의 장을 열었다는 것이 무척 고무적으로 느껴집니다. 앞으로 우리도 이런 장을 열어나갈 수 있을까요? 

🔗 안녕, 봄과 함께 온 꼬마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한국에 입국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멘 난민' 사태를 떠올리며 이들이 혐오와 차별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지요. 지난해 봄 조해람 기자가 울산을 찾아 직접 만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서로 잘 어울려 지내고 있었답니다. 이 기사는 특별히 아프간어로도 번역해 발행했습니다. 

🔗 한국에 온 '코피노'는 엄마와 살 수 없다

한국인 남성들이 필리핀 현지에서 낳고 책임지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 어린이들은 국내 법원에서 친자확인 판결을 받으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런데 양육을 엄마가 할 수 없다니, 어떻게 된 걸까요? 이민과 이주 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기사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막을 수 없을까?

말 많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이르면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됩니다. 일본은 2011년 원전 폭발사고 이후 녹아내린 고열의 연료 위로 계속해서 냉각수를 쏟아붓고 있는데요. 그렇게 생긴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를 이제 후쿠시마 앞바다로 내보낸다는 겁니다.

인접국인 한국은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과학적인 정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상 이렇게 막대한 양의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에 방류된 전례가 없기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2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 예고된 재난을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걸까요? 독자님의 생각을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3월22일 점선면에 반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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