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마흔한 번째 흄세레터
님은 요즘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
《위대한 앰버슨가》의 주인공 '조지'는 주먹을 슬며시 쥐게 하는 인물이에요. 자기 집안만 믿고 '천한 것!'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건 기본이고, '지옥에나 떨어져라'라는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에게 내뱉죠. 게다가 썸 타는 여자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자 고민 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트 타는 사람이요."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사는 남자 그 자체죠. 그러나 온 세상이 자신의 것인 듯한 조지의 호시절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썸녀의 아버지가 자기 어머니의 옛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데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앰버슨 가문의 몰락을 부추기죠. 작가 부스 타킹턴은 이러한 변화의 순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요? 오늘 흄세레터에서는 남다은 영화평론가가 《위대한 앰버슨가》를 읽고 쓴 리뷰를 보내드립니다.
  찬란했던 한순간
《위대한 앰버슨가》의 원작자가 부스 타킹턴이며, 그가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무지의 소산이지만,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슨 웰스의 창작물로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 영화를 관람하며 어떤 감흥을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영화사의 전설 〈시민 케인〉의 감독이 1942년에 만든 두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에 웰스의 탁월한 기법들을 아마도 그저 공부하듯 보았을 것이다. 뇌리에 남은 건 이 영화의 몸체에 새겨진 지독한 불운이다. 당시 제작사 RKO는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혹평을 쏟아내자 웰스의 편집본에서 엔딩 장면을 포함해 사십오 분을 폐기해버리고 일부를 새로 찍어 팔십팔 분짜리 영화로 개봉했다. 그때 브라질에서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던 웰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 버전이 지금의 〈위대한 앰버슨가〉다. 잘려 나간 장면의 흔적을 품은 채 세상에 남겨져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실을 환기하며 여전히 운동하는 영화의 운명은 대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이 글을 준비하며 원작을 뒤늦게 읽고 영화를 다시 보니, 소설 속 문장 하나가 내내 맴돈다. “그 부귀영화가 사라지는 것도, 앰버슨 가문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도. 앰버슨 가문 사람들은 소멸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모른 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거의 모른 채 천천히 삼켜졌다.” 물론 제작사가 영화에 저지른 횡포를 필연적이며 무력한 사라짐의 서사로 애틋하게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웰스의 장면들과 영화 〈위대한 앰버 슨가〉의 돌이킬 수 없는 물질적 상태가 부스 타킹턴이 응시하는 세계의 어떤 속성과 묘하게 닿아 있다는 느낌은 종종 기이하게 다가온다.
 
소설 《위대한 앰버슨가》는 크게 두 축의 이야기로 뼈대가 구성된다. 한 축에는 앰버슨 가문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저벨과 아들 조지, 자동차 사업으로 부를 확 장해가는 유진과 딸 루시 사이의 얽히고설킨 사랑, 질투, 갈등, 이별, 후회의 서사가 있다. 다른 축에는 귀족 가문과 신흥 자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충돌 혹은 어색한 공존의 풍경이 자리한다. 부스 타킹턴은 ‘자동차’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맹목적 혐오감을 드러내는 조지를 철없고 오만한 귀족으로 그리면서도 과거(정확히 말하자면 귀족들)의 가치, 건축, 문화, 질서에 대한 향수를 숨기지 않는다. 

21세기를 사는 한국 독자로서 그 감성을 온전히 공유하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 지난날을 자못 아련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문장들보다 개인적으로 매혹적이라고 여긴 건 웅장하고 화려한, 어쩌면 진짜 세상과 담을 쌓은 그들만의 옛 시절이 영속 불가능한 환영처럼 처참히 깨져버리는 대목들이다.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몰락의 움직임. 더없이 교만하고 무례한 인물이자 주변 사람들조차 그토록 망하길 바라던 앰버슨 가문의 마지막 귀족인 조지가 그 몰락을 체현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루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자, “요트 타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인물이다. 다소 고급스럽게 포장하자면 그는 “‘행동하는’ 이상보다 ‘존재하는’ 이상”을 지지하는 인간형이다. 행동이 아닌 존재를 고집하는 그의 지향은 얼핏 자본주의를 겨냥한 저항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축적된 부로 살 수 있는 자의 언변에 불과하다. 조지의 모든 말과 행동은 어쩌면 이 사실 하나를 우아하고 간교하게 변주한 표현들인지도 모른다.

앰버슨 가문의 영예와 그에 대한 기억조차 흔적 없이 소실된 소설 말미, 조지에게는 그럴듯한 수사를 떠벌릴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화학 회사에 고용되어 니 트로글리세린을 나르고 유정을 터뜨리는 노동자 조지의 모습은 소문으로 재현된다. “폭발로 하늘 높이 날아갔다 떨어진다고 해도 이미 추락한 것보다 더 크게 추 락하지는 못할” 처지. 짜릿하다. 후반부에 내가 맛본 이상한 쾌감은 이처럼 역동적이면서도 절묘한 문장력에 기인하는 것일까. 과한 자기애로 가문의 울타리 안에서 징징대던 소년이 마침내 현실 한가운데서 말없이 맨몸으로 사는 법을 처절히 깨달은 모습에서 비롯된 것일까. 앰버슨가는 완전한 몰락으로 사라진 뒤에야 가문이 아닌 구체적인 사람, 노동하는 조지의 육체로 비로소 대지에 발을 딛고 선다. 그러니 《위대한 앰버슨가》는 찬란했던 한순간에 대한 회한의 서사만이 아니라 허공을 허세 가득한 음성으로 떠돌던 존재가 땅으로 내려와 비로소 단단한 행동에 이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다은 | 200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감정과 욕망의 시간》 등이 있다.
위대한 앰버슨가 부스 타킹턴 | 최민우 옮김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단 네 명의 소설가 중 한 명인 부스 타킹턴의 대표작. 한 가문이 몰락하는 미묘한 순간을 재치 있고 완성도 높은 서사로 포착했다. 사랑과 명예를 한 손에 모두 움켜쥐기란 쉽지 않다는, 삶의 복잡성과 딜레마를 유머러스하지만 유려한 문장으로 파고든 수작. 모던 라이브러리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어 소설 100선’ 중 하나이자 오슨 웰스 감독이 제작한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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