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하룻밤 사이에 2주가 훌쩍 지나가버리는 느낌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보내드리던 레터가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보내드리게 되네요; 이런저런 핑계는 많지만, 그중 2주가 하루 같은 느낌이 든 이유를 생각해보니, 5월에 있을 전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글로스터의 홈가드닝 이야기>의 일러스트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식물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 후 틈틈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좋은 기회가 닿아 그간 그린 그림들로 전시까지 제안 받게 되었습니다. 막상 전시가 코앞에 닥치니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도 보이고, 새로운 그림을 더 그리고 싶은 욕심도 생깁니다. 맘이 조급할수록 시간은 제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이번에 전시할 그림 속 오브제들은 평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식물과 탈것과 한국의 전통장식이죠. 위의 그림이 이번 전시에 소개할 작품 중 하나인데요. 제목은 <글로리오섬과 콜브로 서커스 마차, 그리고 솟을빗살창>입니다.
콜브로 서커스 마차는 19세기 창립된 미국의 최대 서커스단인 콜브로 서커스단이 사용했던 홍보용 마차입니다. 이 마차에 실려 있는 물건이 재미있는데요. '칼리오페'라는 증기오르간입니다. 증기의 압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오르간이지요. 이 악기는 증기기관의 발명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19세기 미국의 미시시피강을 다니던 증기유람선에 하나씩 실려 있던 악기이기도 합니다. 워낙 소리가 커서 귀청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 소리 덕에 서커스단의 홍보용으로는 더없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로 부를 축적하여 산업화가 이루어진 덕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에서 막강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 중에는 플랜테이션(식민지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기업적인 농업경영)이 한몫했고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식물과 작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엄청난 수의 남미 관엽식물들도 유럽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에서야 관상하는 몬스테라나 필로덴드론 안스리움과 같은 관엽식물들은 이미 200~300년 전 유럽에 전파되어 연구의 대상이 되거나, 부유층의 수집목록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엽식물 취미의 역사는 그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지요. 5~6년 전부터 본격적인 시장이 열렸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식물을 향유하는 이들의 수준과 저변을 보면 유럽의 300년 관엽 역사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모든 문화는 흐르고 섞이듯이 우리의 관엽취미도 고유한 색깔을 입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글로리오섬과 콜브로 서커스 마차, 그리고 솟을빗살창>에서 마차의 한쪽면에 뻔뻔하게 들어앉은 문은 강화 전등사 대웅전에 있는 문입니다. 그 문에 새겨진 문양이 솟을빗살창 문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