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9, 2024
아피스토의 풀-레터 S1.5-8 vol.39
아피스토,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과 콜브로 서커스 마차, 그리고 솟을빗살창>, 2022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 사이에 2주가 훌쩍 지나가버리는 느낌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보내드리던 레터가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보내드리게 되네요; 이런저런 핑계는 많지만, 그중 2주가 하루 같은 느낌이 든 이유를 생각해보니, 5월에 있을 전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글로스터의 홈가드닝 이야기>의 일러스트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식물 드로잉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 후 틈틈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좋은 기회가 닿아 그간 그린 그림들로 전시까지 제안 받게 되었습니다. 막상 전시가 코앞에 닥치니 그림에서 부족한 부분도 보이고, 새로운 그림을 더 그리고 싶은 욕심도 생깁니다. 맘이 조급할수록 시간은 제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이번에 전시할 그림 속 오브제들은 평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식물과 탈것과 한국의 전통장식이죠. 위의 그림이 이번 전시에 소개할 작품 중 하나인데요. 제목은 <글로리오섬과 콜브로 서커스 마차, 그리고 솟을빗살창>입니다.


콜브로 서커스 마차는 19세기 창립된 미국의 최대 서커스단인 콜브로 서커스단이 사용했던 홍보용 마차입니다. 이 마차에 실려 있는 물건이 재미있는데요. '칼리오페'라는 증기오르간입니다. 증기의 압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오르간이지요. 이 악기는 증기기관의 발명이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19세기 미국의 미시시피강을 다니던 증기유람선에 하나씩 실려 있던 악기이기도 합니다. 워낙 소리가 커서 귀청이 떨어질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 소리 덕에 서커스단의 홍보용으로는 더없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로 부를 축적하여 산업화가 이루어진 덕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에서 막강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 중에는 플랜테이션(식민지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기업적인 농업경영)이 한몫했고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식물과 작물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엄청난 수의 남미 관엽식물들도 유럽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에서야 관상하는 몬스테라나 필로덴드론 안스리움과 같은 관엽식물들은 이미 200~300년 전 유럽에 전파되어 연구의 대상이 되거나, 부유층의 수집목록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엽식물 취미의 역사는 그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하지요. 5~6년 전부터 본격적인 시장이 열렸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식물을 향유하는 이들의 수준과 저변을 보면 유럽의 300년 관엽 역사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모든 문화는 흐르고 섞이듯이 우리의 관엽취미도 고유한 색깔을 입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글로리오섬과 콜브로 서커스 마차, 그리고 솟을빗살창>에서 마차의 한쪽면에 뻔뻔하게 들어앉은 문은 강화 전등사 대웅전에 있는 문입니다. 그 문에 새겨진 문양이 솟을빗살창 문양입니다.


김윤구, 테라리움#2, 2023

문화란 그런 것 아닐까요? 내것인지 네것인지 알 수 없는 것,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것. 원조란 무의한 것 말이지요. 19세기 미국의 서커스마차와 남미의 식물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 그리고 전등사의 솟을빗살창 문양이 하나의 그림 안에서 만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로 채울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전시는 김윤구(구의정원) 테라리움 작가와의 2인전이기도 합니다. 김윤구 작가는 테라리움을 통해 다양한 공간 인테리어를 실험하는 젊은 작가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아름다운 테라리움 작품이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예정이지요.


사실 테라리움의 역사는 관엽식물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습니다. 테라리움 덕에 지금 우리가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지요. 관엽식물 역사의 시초 격인 테라리움 이야기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입니다. 


구체적인 전시 정보가 나오면 레터를 통해 공유하겠습니다.

따뜻한 봄날 만끽하세요. :)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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