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감독 윤단비) / 〈웰컴 투 X-월드〉(감독 한태의)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94 이사 특집
2월 16일 오늘의 큐 💡
Q. 내 꿈은 달팽이?🐌

님, 기지개 한 번 쭈욱 피고 시작할까요. 요새 몸이 좀 쑤시네요😔 6년을 지낸 공간에서 이사를 했거든요😭! 가구와 짐 옮기는 것만 해도 힘든데, 온갖 계약과 절차, 서류와 증빙, 시공설비에다 이전설치까지..!!! 해도해도 할 게 남아있어요📝 그냥 집이 저를 따라올 순 없을까요? 저...달팽이가 되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어떤 것들은 익숙한 곳을 떠나야만 시작할 수 있잖아요. 새로운 공간은 필연적으로 내 일상을 바꾸고, 그게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는 살아봐야만 알 수 있죠. 이사는 분명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로인해 마주하는 삶의 분기점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오늘은 이사, 집을 옮기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왔어요. 먼저 세 명의 삼대(三代)가 사는 집입니다. '미경'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시아버지와 딸과 살고 있어요. 사실상 시집살이인데요😶 딸 '태의'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데도 결혼에 묶여사는 엄마가 못마땅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분가 요청! 미경은 독립할 수 있을까요? 한태의 감독의 <웰컴 투 X-월드>에서 미경과 태의의 여정을 지켜봐주세요. '이사'가 개인에게 주는 변화를 보다 보면 비 온 뒤의 땅처럼 마음도 단단해집니다🌱
다음 집도 삼대가 사는데요. 여기는 도합 다섯명🖐️! 아빠와 옥주, 동주 남매는 셋이서 살던 집에서 단촐하게 짐을 챙겨 나갑니다. 말하진 않아도 아빠의 상황이 그리 좋지않아 보여요. 도착한 곳은 오래된 목조주택, 할아버지 집이에요. 연로하신 할아버지도 어색하고 얹혀사는 느낌도 들지만 옥주는 이 곳이 싫지 않은데요. 집을 나온 고모까지 합세하며 할아버지 혼자 살던 집이 다섯 식구로 복작복작해지고, 옥주는 가족들과 부대끼며 사는 법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잊지 못할 여름 한 때가 사려깊게 담긴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도 소개할게요🌻

달팽이는 등에 집이 있는 것 같지만, 주변 환경이 건조하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살기 좋은 터전을 찾아야 한대요. 어쩌면 우리 모두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나서는 똑같은 처지일지도 모르겠어요👣 님, 이사로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온다면 인디즈 큐의 레터가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오길 바랄게요. 언젠가~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패닉-달팽이) 

ps. 인디즈 큐 맨밑에 적혀있는 인디스페이스 주소가 바뀌었어요! 참고 바랍니다 😊

미지수의 세계로 내딛는 용기

〈웰컴 투 X-월드〉
 

변화로 내딛는 순간은 언제나 불안하고 어색하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보다 실패로 인한 후회가 앞설까 두렵다. 그럼에도 <웰컴 투 X-월드>의 ‘미경’과 ‘태의’는 X의 세계로 내딛는 것을 택한다. 영화는 구부(舅婦) 갈등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을 재기발랄하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한 지붕 아래서 오랜 시간 시아버지를 부양하며 살아온 미경과 태의는 갑작스럽게 시아버지와 따로 살 기회와 맞닥뜨린다. 물론 단순히 엄마 미경과 딸 태의의 이사 프로젝트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딸 태의가 잡는 카메라는 엄마의 인생으로까지 시선을 넓혀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미경이 며느리의 울타리 속에서 그동안 책임져야 했던 것에 과감히 물음표를 던지며 한국 사회의 모순을 영리하게 풀어낸다. 딸의 입장으로 주관적으로, 그리고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미경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사고로 남편을 잃고 시부모를 부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사이가 틀어져 별거를 시작하자 시어머니의 집을 따로 찾아가 챙긴다. 아이들이 어려 독박육아를 하면서도 생계유지를 위해 약까지 먹어가며 일을 다녀야 했다. 언제부턴가 뒤죽박죽 꼬여 본인을 잃어버린 그는 ‘거지 인생’이라고 자조한다. 그럼에도 미경은 딸 태의가 결혼을 하길 바란다. 나이가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사람을 데려와도 좋으니 결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미경의 세대에서 당연히 감내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을 태의의 세대는 단호히 거부할 줄 안다. 그리고 미경이 겹겹이 쌓아 올린 오래된 생각의 근원을 따라가기 위해 그를 이해하려 한다. 아이러니한 엄마의 생각에 반기를 들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물음표의 시작을 좇는다. 왜 미경은 모든 시월드를 혼자 떠안아야 했을까? 시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편하고 자유롭기보다 두렵고 불편해야 했을까? 하지만 감독은 모든 물음표에 온점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변화하고, 결국 해방감을 만끽하는 미경의 모습을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담아낼 뿐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이는 곧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어 관객을 자극한다. 자신의 안위보다 결혼과 부양을 더 소중히 여겨야 했던, 아니 여길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모든 여성에게 담담히 이 영상을 바친다.


<웰컴 투 X-월드>는 태의와 미경의 성장기를 담아낸다. 태의는 마무리, 혹은 끝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 막 미지수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을 뿐, 시월드로부터의 탈출은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미경과 태의가 마주하게 될 다음 싸움이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위기도 곧 다시 찾아오게 될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견뎌낼 'X의 세계'를 기대하게 된다.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싸워서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 그 과정에서 얻은 변화의 가치를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새로운 출발은 누군가에겐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다. 이들의 발걸음은 또 다른 이의 용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인디즈 임나은
웰컴 투 X-월드 (감독 한태의)
다큐멘터리│2019│81분
엄마는 왜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시월드에서 나오지 않는 걸까?
구로동 집에는 나, 엄마 그리고 친할아버지가 산다. 12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희생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결혼이 싫다.
새로운 공간으로 흘러간다는 것, 그곳에서의 기쁨과 슬픔
〈남매의 여름밤〉

<남매의 여름밤>은 ‘이사’가 중요한 키워드로 다뤄지는 영화다. 어둡던 화면이 밝아지고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옥주가 가만히 빈 집을 둘러보다 아빠의 부름을 듣고 짐을 챙겨 나오는 모습이다. 영화는 옥주의 가족이 짐을 챙겨서 차를 끌고 이동하는 지난한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다. 몇 분 가량 옥주네 가족이 덜컹덜컹 짐을 싣고 터널을 지나오는 모습을 관객은 함께 바라보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먹고 자고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또한 짐을 다시 옮기고 놓는 고단함과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수고스러움이 동반된다. 그러나 그 어색하고 민망한 공간에서 옥주네 가족은 음식을 나눠먹으며,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새로운 공간에서의 추억을 쌓아간다. 이곳에서는 기쁜 순간과 슬픈 순간이 공존한다. 비참하고 짜증나는 기억도, 웃기고 즐거웠던 기억도 함께한다.

신발을 아빠 몰래 팔려다 실패하고 운동화가 짝퉁인 걸 알아차리는 순간, 하지만 그 앞에는 갓 따온 토마토를 동주가 나눠주는 순간이 있다. 고모가 남편과 싸우는 걸 본 순간 뒤에는 고모와 빨래를 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동주가 물장난을 치는 순간이 함께 한다. 할아버지의 용변 실수를 알게 되는 순간과 함께 할아버지의 생일파티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있다. 콩국수, 생일케이크, 수박, 비빔국수, 포도, 라면 등 여름의 싱그러운 제철음식과 상황에 맞는 식사를 나누며 새로운 공간과도 마음을 주고받으며 정을 쌓는다. 하지만 이들을 느슨하게나마 하나로 엮어주고 있던 할아버지라는 존재의 상실을 통해 옥주가 여름날 겪었던 따스함은 위기를 맞게 된다. 옥주네 가족이 이곳에서 다른 계절도 보낼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지난한 이사 과정을 겪어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여름날에 머무른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흘러가든, 우리가 멈춘 곳에는 삶의 온기가 깃들게 된다. 우리는 무엇 때문이든 자꾸자꾸 어디론가 흘러가게 된다. 좋든 싫든 잠시라도 머물렀던 곳에서 무언가를 남기고 가거나 혹은 반대로 무언가를 마음속에 안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공간에서 있던 즐겁거나 기쁜 일들을, 그리고 슬프거나 괴로운 일들까지도. 우리가 지나왔던 공간이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새로운 공간에서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그곳에서도 그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느끼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빌어본다.


인디즈 김소정
남매의 여름밤 (감독 윤단비)
극영화2019년│104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와 동주.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의 여름이 시작되고 한동안 못 만났던 고모까지 합세하면서 기억에 남을 온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 🎁 
오늘 소개한 두 편의 영화는 모두 20대 후반, 30대 초반 즈음을 지나가는 여성감독의 작품입니다. 어쩌면 '사회초년생'이라고도 표현할 수도 있을텐데요. 아직 어린 나이라 많은 집에 살아보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한국사회 속에서 급변하는 '집'과 '가족'의 의미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탐구하는 세대이기도 해요👩‍👧👨‍👧‍👦 두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까요?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를 만든 한태의 감독과 그의 동료 궁유정, 이옥섭 감독이 함께한 유쾌한 현장, 그리고 <남매의 여름밤>에 겹겹이 스민 의미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윤단비 감독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 당시엔 이사가 막막하기도 했어요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셨으니까요. 마음이 아팠는데 불과 3년이 지난 지금은 이사 안 왔으면 어쩔 뻔했지 싶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 되었잖아요.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겠는이런 게 참 재밌지 않나요?"
"이 가족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헤어진다는 틀 안에서 이들이 겪는 사건과 감정들을 촘촘히 쌓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애도에 대한 마음을 영화에 담고 싶었고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길 바랐어요."
가족은 아니지만 식구입니다🍚?  
식구(食口). 밥 식에 입 구. 한 집에 살면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한 식구인데요. 여기, 독특한 식구들이 있습니다. 사회가 정의하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식구다운 식구죠. 인디즈 김정연님이 <가족의 탄생>, <우리집>, <어느 가족>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가족의 경계를 우연히, 또 유연하게 넘나드는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정상가족 베일이 걷힐 때 
-〈가족의 탄생〉, 〈어느 가족〉, 〈우리집〉을 중심으로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오늘날 가족은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 별거 가정, 맞벌이 부부, ()자녀 부부, 동성 부부, 독신 등 가족의 구성과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혈연을 바탕으로 한 부계 혈통의 직계 가족을 그 범위로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생된 부모와 미혼의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 정상가족으로 정형화되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정상으로 일컬어지는 가족 형태를 제외한 다양한 다른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위험을 지닌다. 영화 〈가족의 탄생〉과 〈어느 가족〉 그리고 〈우리집〉은 경계를 구분하고 규격화된 정상에 벗어난 것을 비정상으로 배제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폭로한다. 세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정상가족 베일이 걷힐 때’를 포착해보자.
(...)

인디즈 김정연
인디스페이스는 이사중 💨
롯데시네마 홍대입구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인디스페이스! 
재개관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오늘의 이야기가 재밌었다면, 구독페이지를 친구에게도 소개해주세요!
우리를 만나는 영화관, 인디스페이스
indie@indiespace.kr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6, 와이즈파크 8층 02-738-0366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