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다섯 번째 흄세레터
벌써 3월이네요.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지는데 마음은 그렇기 힘든 요즘입니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어디엔가 작은 기쁨과 동력은 있을 거예요. 금요일 오후 2시쯤엔 흄세레터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지난 레터에 이어 5, 6호에서는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회색 여인》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회색 여인》은 〈회색 여인〉, 〈마녀 로이스〉, 〈늙은 보모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에요. 표제작 〈회색 여인〉의 줄거리와 함께 천희란 소설가의 리뷰 〈허락되지 않은 모험의 기록〉을 보내드려요. 💌
📚엘리자베스 개스켈, 〈회색 여인〉 줄거리
허락되지 않은 모험의 기록
천희란(소설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여성 인물들을 낯선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인물들에게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모험심이나 호기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에게 주어진 이동이 그들의 선택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회색 여인〉의 아나는 투렐의 적극적인 구애에 떠밀리듯 결혼해 그의 성으로 가고, 〈마녀 로이스〉의 외동딸 로이스는 부모를 여의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외삼촌을 찾아가며, 〈늙은 보모 이야기〉의 로저먼드 아가씨 역시 부모의 죽음 이후 나이 든 보모의 품에 안겨 친척인 퍼니벌가에 맡겨진다. 신분 유지 혹은 생존을 목적으로 부모를 대리하는 일종의 보호자를 따라(찾아)가는 이 여성들의 이동은 여러모로 제한되어 있다. 특히 앞선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끝내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의 사랑이나 이해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질서와 규범에 순응해야 하는 극단적인 통제의 상황에 놓이고야 만다. 이때 여성 인물들의 정서를 통해 친부모가 존재했던 정겨운 공간에 대한 그리움은 낯설고 폭력적인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대비되지만, 독자는 낯선 세계에서 느끼는 극대화된 긴장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활달하고 즐거웠던 삶 역시 그들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보장하지는 않았음을 상기하게 된다. 약혼식을 치르고 결혼식을 앞둔 아나가 아버지에게 결혼을 재고하고 있다는 뜻을 밝히자, 아버지는 “미래의 남편” 외에는 누구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그녀의 의사는 “상황을 뒤집을 만한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이로써 여성 인물을 적대적이거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이동시키며 전개되는 개스켈의 서사는 역설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통제가 보호의 명목으로 지속되고 있었음을 폭로한다.


이처럼 사물화된 여성에게 가해지는 통제는 타고난 고유의 매력은 물론, 이들이 가진 지적 호기심이나 상상력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주어진 금기를 깨뜨리거나 통제 밖으로 벗어난 여성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축출되거나 비이성적인 공격의 대상이 된다. 〈회색 여인〉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빨리 받아보고 싶었던 아나는 허락되지 않은 성의 일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남편 투렐의 잔인한 범죄를 알아채며 위험에 빠지고, 〈마녀 로이스〉의 로이스는 사촌인 머내시와 젊은 놀런 목사의 일방적 구애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교도라는 사실 때문에 마녀재판의 주인공이 된다. 〈늙은 보모 이야기〉의 모드 양은 “집안의 체면을 손상한 죄”로 대저택에서 쫓겨나 아이와 함께 휘몰아치는 광풍 속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개스켈의 서사는 가부장적 질서와 규범이 억압하는 대상이 여성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데까지 나아감으로써 얼핏 전형적으로 보이는 서사를 비틀고 깨뜨린다. 이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1692년 미국 세일럼에서 벌어졌던 마녀재판을 바탕으로 한 〈마녀 로이스〉다. 태파우 목사는 마녀로 의심받을 위기에 놓인 딸의 혐의를 그녀를 위해 헌신하던 인디언 하녀 호타에게 전가하는가 하면, 로이스의 외숙모인 그레이스 힉슨은 우울과 망상에 시달리는 아들 머내시를 보호하기 위해 로이스를 마녀로 몰아붙이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로이스 역시 종교적 광신에 의해 마녀로 몰린 이후에야 인디언 하녀 네이티의 말과 행동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며 경계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이는 이들이 공동체에 야기된 불안을 외지인의 희생을 통해 봉합하려 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끊임없이 공포의 대상을 찾아내 타자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체의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상성의 강박은 자신들과 구별되는 상상적 타자의 조건을 쉬지 않고 찾아낸다. 그렇게 작동하는 사회 안에서 온전히 피해자일 수만은 없는 여성의 분열적 운명을 꿰뚫고 있는 개스켈의 서사는 지극히 현대적이며, 짐짓 여성이라는 성별 외부에 대해 배타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어째서 근본적으로 가부장적 질서를 전복할 수 없는지를 예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세기 서양 소설 속의 범죄나 유령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지금 우리에게 공포로 다가오지는 않겠지만, 두 세기 전 여성의 삶을 지금의 현실에 빗대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압도적인 공포가 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긴 세월에 걸쳐 혹독한 삶에 대해 스스로의 목소리로 증언해왔다는 깨달음은 비참함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 《회색 여인》에 수록된 세 편의 작품은 모두 비극적인 비밀이나 호도된 진실을 여성의 힘과 목소리를 통해 바로잡으며 이야기를 맺는다. 《푸른 수염》을 모티프로 한 〈회색 여인〉의 아나는, 오빠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을 해치우고 그 부를 상속받는 샤를 페로의 서사와 달리 하녀 아망테와 성 바깥으로 도망쳐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마녀 로이스〉나 〈늙은 보모 이야기〉에서도 여성을 위해 속죄하고, 여성을 구원하는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여성의 말과 글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과거의 서사에 합리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그 이야기 속 여성들의 명예를 복원하려는 개스켈의 사려 깊은 마음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소설 속에는 베일에 덮인 여성들의 삶을 기억해 기록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고, 그 바깥에는 과거의 동화 속 여성 인물에게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는 여성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있다. 그것이 과거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도달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자유와 책임이 함께 전달된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는 이유다.


〈회색 여인〉의 절반은 아나와 아망테가 성안의 닫힌 공간들을 열어젖히고, 비밀을 목도하며, 남편 투렐과 그 공모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처에 위험이 널려 있지만, 둘의 여정은 비로소 긴박감 넘치는 모험 이야기가 된다. 어둠 속에 숨어 망을 보고, 성별과 외모를 위장하고, 위기를 모면하며 안도하고, 잠깐의 휴식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간다. 아나와 아망테는 그들을 보호해줄 새로운 안식처를 목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끈질긴 추격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탈주는 개스켈의 소설 속 도입부에서 여성 인물들에게 강요되었던 운명의 속박을 끊어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우리는 아나가 직접 기록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살아남지 않았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이야기라는 사실이 기묘하게도 공포와 쾌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흄세 소식 📣
💝흄세X번역가의 서재
3월 한 달간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동네책방

‘번역가의 서재’에서 흄세 전시를 해요. 전시 기간 내 서점을 찾는 분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두었습니다. 흄세 외에도 양질의 번역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니 날씨 좋은 날에 한번 들러보세요.😊



번역가의 서재(@tlbseoul)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로17길 67(망원역)
영업 시간: 화~토요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제1회 흄세 리뷰대회🏅
기간: 3월 4일(금)~4월 1일(금)
선물: 대상(1명) 문화상품권 10만원
       최우수상(3명) 문화상품권 5만원
       우수상(10명)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참여 방법: 1. 흄세 시리즈 중 한 권을 읽고 인스타그램에 200자 이상의 리뷰를 남긴다.
2. #휴머니스트세계문학 #흄세 #흄세리뷰대회 해시태그를 달면 자동으로 응모 완료!
이벤트 기간 전에 올린 게시물도 응모 가능해요. 단, 비공개 계정은 확인이 어려워요😥
당선자 발표: 4월 6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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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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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추첨을 통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10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권(5명)을 드립니다.
흄세레터 5호 이벤트 당첨자는 3월 11일 발행되는 흄세레터 6호에서 발표합니다.

 지난 이벤트 당첨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5명)
신*재(7568), 백*기(6974), 송*영(7045), 김*우(0427), 조*정(5404)
스타벅스 아메리카노(10명)
오*현(5557), 박*정(6970), 최*화(3110), 배*경(4295), 손*희(5706)
하*서(5390), 류*혜(6094), 류*승(3077), 김*은(8563), 윤*정(5228)
선물은 레터가 발송되는 금요일에 문자와 택배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boooook.h@humanistbooks.com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23길 76(연남동) 휴머니스트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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