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Vol.89 〈후줄근한 친구들〉 세이수미―뮤지션

헤맬수록 아름다워지는 도시에서

근사한 여행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불시에 찾아오곤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없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거나,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버려 엉뚱한 장소에 가버리고, 예상치 못한 날씨를 만나 의도치 않게 시간을 허비하게 되기도 하죠. 역경에 마주한 순간마다 님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아마도,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이었을 거예요. ‘부산’은 낯선 도시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너른 마음으로 품어주었습니다. 실패한 계획을 보며 풀 죽은 여행자들에게 “좀 더 여유를 가져봐”라며 투박한 선심을 내어주었죠. 영문도 모른 채로 그들이 건넨 호의를 누리다, 돌아설 때쯤에야 넉살에 담긴 진심을 눈치채고선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AROUND》 89호에는 우리가 마주한 부산의 여유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부산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밴드 세이수미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06.08.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AROUND Vol.89 부산(Busan)

〈후줄근한 친구들〉 세이수미―뮤지션


06.22.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오늘 다시 보아도 좋을, 그때의 이야기를 소개해요.


07.06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후줄근한 친구들

세이수미―뮤지션

음반이 가득 꽂힌 벽면, 공연 포스터가 질서없이 붙어 있는 어둑한 공간. 사람들은 또렷한 자리 없이 서거나 앉아서 눈앞을 보고 있다. 기타와 베이스를 무대에 내려 두고 마이크를 매만지던 네 사람이 공연을 시작하겠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부산에서 온 세이수미입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영국으로, 미국으로, 유럽 전역으로, 대만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친구들에게 부산은 곧 집이고 가족이다. 지구 구석구석, 더 멀리 나아가도 떠나길 택하는 대신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친구들. 부산은 그런 그들에게 언제나 느긋하게 말한다. “잘 갔다온나.”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

세이수미가 활동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죠. 맨 처음 만든 곡이 ‘Bad Feeling’이라고 알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만든 곡 이야기도 궁금해요.

병규 올해 6-7월쯤 싱글로 발매 준비 중인 곡인데, ‘Bad Feeling’이랑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곡은 제가 만들고 가사는 수미가 붙이고 있는데요. 시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요즘엔 ‘초반 스타일 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작업 중인 때여서 ‘Bad Feeling’이랑 비슷한 느낌이 담겼어요. 제목은 ‘Mind Is Light’예요. 곧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10년 동안 앨범도 여러 장 나오고, 영국 댐나블리의 러브콜도 받고, 유럽 투어, 아시아 공연 등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엘튼 존Elton John이 팟캐스트에서 세이수미 음악을 언급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중략) 세이수미 음악을 말할 때 ‘서프 록’이나 ‘90년대 미국 인디’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저는 이런 장르 구분이 항상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좀더 설명해 주실래요?

병규 장르라는 건 어떤 면에선 음악의 구분이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선 뮤지션의 정체성이기도 해요. 사실 서프 록 같은 장르는 저희가 정했다기보다는 외부에서 언급하면서 굳어진 부분이에요. 저희는 90년대 미국 인디 록 기반으로 음악을 해나간다고 생각하거든요.

 

90년대 인디 록이 정확히 어떤 거예요?

병규 지금 저희 행색을 보면 아시겠지만, 꾸밀 줄 모르는 거?

수미 그런 면이 음악에도 분명히 있고요.

병규 저희 음악에 ‘꾸민다’는 이야기는 정말 안 붙거든요. 그게 외적으로도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외적인 모습도 음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음악이 외적인 모습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나의 정체성이 되는 거죠. 그래서 90년대 인디 록이라고 저희가 더 나서서 설명하는 거기도 하고요. 90년대 인디 문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그 당시 음악을 ‘너드 뮤직’이라고 표현했대요. 그런 게 저희를 표현하는 포인트가 분명히 되는 것 같아요.

수미 너무 힘주면 잘 안 붙는 스타일이랄까요(웃음). 굳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멤버들끼리도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정말… 후줄근한 인간들이에요. 시대는 변하고, 유행도 변하는데 저희는 계속 힘을 빼고 있으니까 가끔 이게 맞나 헷갈릴 때도 있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도 많이 보려고 하죠. 저도 가끔은 유행하는 스타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계속 의심이 들어요. ‘이게 세이수미가 맞나? 멤버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도 되고요.

 

외적으로도 그렇고, 음악적으로도 그런가요?

수미 그렇죠. 아무도 눈치 못 챘을 수도 있지만(웃음) 저는 제 보컬이 초기랑 많이 비교된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난 무조건 꾸미지 않아야 멋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 저희 음악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근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부른다는 게 뭘까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사실 답이 없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제가 듣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때때로 꾸며도 보고요. 사람들은 꾸민 줄도 모를 수 있지만,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유연하게 흐르는 도시의 선율

세이수미의 앨범을 훑을 때면 이야기로 넘실거리는 사진첩을 넘겨보는 것만 같습니다. 규칙 없이 밀려드는 파도나 나른한 해변 위의 사람들, 물결에 일렁이던 도시의 빛을 보다 나도 모르게 쏟아내 버린 어느 밤의 이야기. 술기운에 마주한 골목과 아침 공기를 머금은 둘레길.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은 필름 사진처럼 그들의 음악은 유연하게 흐르는 도시의 시간을 꾸밈없이 담아냅니다. 제멋대로 나부끼는 선율은 자유로운 부산의 얼굴과 닮았지요. 후덥지근한 여름에 발매될 새로운 신보를 만나기 전, 지금의 세이수미를 있게 한 수많은 노래 중 유달리 마음이 가는 세 곡을 톺아보려 해요. 재생 목록에 넣어두고 편안한 행색으로 가볍게 산책을 나서보는 건 어떨까요? 이 또한, 도시를 알아가는 즐거움 중 하나겠지요.

어디를 가나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관광지가 지겨워지면 발길을 돌려 남포동과 중앙동으로 향합니다. 외지인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간 후, 주민들만 드문드문 나타나는 밤의 동네는 낮과는 다른 얼굴을 지녔습니다. 적요함이 내려앉은 거리를 걷는 동안, 멈춘 시간 속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순리에 따라 자연스레 낡아가고 있는 풍경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곳곳을 누비지요. 부산의 가장 오래된 표정을 들여다보며 리듬에 집중하다 보면 노랫말은 어느새 동네의 속삭임처럼 느껴집니다. 끝 무렵 반복하여 등장하는 ‘Let It Begin’은 빛바랜 도시가 꾸는 꿈이 아닐까요.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금정산은 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 위용에 휩싸여 눈앞에 펼쳐진 첩첩산중을 보면 막막한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전, 틈을 타 힘을 불어넣어 줄 만한 음악을 재생해 봅니다. 오선지를 활보하는 기타의 멜로디와 씩씩하게 스텝을 밟는 드럼의 리듬은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직진해! 직진!’하며 등을 떠밀지요. 이에 힘을 입어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범어사로 향합니다. 드넓은 절을 한 바퀴 돌고선 보다 느긋해진 마음으로 왔던 길을 돌아서 내려 옵니다. ‘I could find around you around you’라는 가사에 맞춰 걷다 보면 몸과 마음 모두 가뿐해진답니다.

오랫동안 광안리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삼익 비치 아파트를 기억하나요? 어디서나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외벽과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단지의 모습. 봄이 되면 큰 꽃이 피던 벚나무를요. 해변 끝에서 만나게 되는 옛날 아파트는 부산 시민들에게도, 부산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에게도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이 해변가의 다른 아파트들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라는 소식은 모두에게 아쉬움을 남겼지요. ‘광안리의 밤’이 수록된 〈We’ve sobered up〉의 앨범 재킷에는 아파트 내 커뮤니티 시설인 삼익 스포츠 센터 수영장 모습이 등장합니다. ‘광안리의 밤에는 오래도록 그리워할 어수룩하고도 정겨운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먼 훗날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한 광안리에 앉아 수평선 너머 빛나는 대교의 빛을 바라보다, 내가 알던 광안리가 그리워질 때면 이 노래를 재생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요.

AROUND Playlist 07 Vol.89 부산(Busan)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에서 들을 노래들을 신중히 선곡하여 플레이리스트를 꾸리는 것은 저뿐만 아니겠죠.《AROUND》 89호와 함께할 일곱 번째 플레이리스트에는 부산을 유랑하며 듣고 싶은 노래들로 꾸려보았어요. 오래된 동네와 드높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풍경, 그 모두를 감싸고 있는 자연을 아우르는 곡들. 오로지 ‘부산’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유튜브스포티파이를 통해 감상해 보세요.

《AROUND》는 매년 하나의 도시를 선정하여, 지역의 얼굴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6월 7일부터 부산을 조명한 89호를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답니다. 《AROUND》 89호 ‘부산(Busan)’에는 음식, 예술, 건축 세 가지 갈래를 통해 거대한 도시가 품고 있던 가장 사적인 장면들을 담아냈습니다. 10여 년이 흐른 뒤에 펼쳤을 때 철 지난 이야기라고, 촌스러운 이야기라고 여겨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부산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문장을 따라 도시를 오가는 것 또한 멋진 여행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가까운 서점이나 홈페이지의 ‘SHOP’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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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keeper X AROUND
〈가장자리〉 라운드 테이블
: 지키고 돌보는 사람들


씨앗을 매개로 식물 경험을 선사하는 씨드키퍼와 함께 준비한 〈가장자리〉 라운드 테이블에서 나눈 이야기를 3번에 걸쳐 시리즈로 발행 중이에요. 그날의 대화가 궁금하신 분들께선 매주 목요일 AROUND Naver Post를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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