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플랫 PICK

한주간 중요하게 볼 이슈는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하는 사회

'살인미수' 혐의가 '강간살인미수'로 유죄가 인정되기까지 1년여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법당국이 놓친 지점에 대해 피해자가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목소리를 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따라가 무차별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야기입니다.

지난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습니다. 재판부는 강간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피해자를 성폭력 범죄의 수단으로 범행했다"고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피고인은 여전히 성범죄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폭행하고 사각지대로 끌고 간 '7분'의 시간을 경찰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성범죄가 의심되는 만큼 속옷을 중요한 증거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먼저 의뢰했어야 하지만, 피해자의 속옷은 마지막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식결과 피해자의 청바지 뒷면 엉덩이 부위에서 가해자의 DNA가 검출됐는데, 바지의 바깥쪽인지 안쪽인지 구분되지도 않았습니다. 미흡한 경찰수사로 가해자에게 강간이나 살인 같은 '특정강력범죄' 적용이 안 됐고, 검찰도 그대로 기소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해 10월 1심 판결 이후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언론에 알렸습니다. 피해자가 사건기록을 직접 프린트해서 가지고 있다며 내보인 페이지만 무려 1268쪽에 달했습니다. 그제야 재판부와 검찰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범죄 추가 확인을 위한 DNA 재감정이 받아들여졌고, 청바지 안쪽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됐습니다. 이를 근거로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이 변경됐습니다.

사법당국의 미흡한 수사는 신상공개 이슈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신상공개 확대 타당성 유무를 떠나 사법당국이 놓친 지점이 이번 사적제재 논란을 가져온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사각지대 7분'을 제대로 밝혀내 처음부터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더라면, 신상공개 결정 요건에 해당했을 테니까요. 피해자가 용기 내 자신의 피해 상황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더라면 공소장 변경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의문입니다.

강간살인미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어도 낮은 형량에 피해자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번 항소심 선고는 1심 징역 12년보단 높아졌지만, 검찰 구형 35년보단 낮습니다. 선고 이후 피해자는 "다리가 마비되고 온몸이 멍투성이일 때보다 피고인이 꾸준히 내는 반성문을 읽는 지금이 더 아프다. 출소하면 그 사람 50살인데, 저와 몇 살 차이 안 나는데 죽으라는 얘기와 똑같다"고 했습니다. "괜히 살았다"는 피해자의 울분에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이 무너집니다.

페미사이드 이야기를 한 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는데, 여성 관련 범죄 이야기를 하게 돼 마음이 무겁습니다.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회 안전망'을 논하는 건 공허하기만 합니다.

📌신대구부산 수납원 '완승'으로 보이는 판결 이면엔 '저임금여성' 현실

저임금 직종에 여성들이 많이 분포되는 걸까요, 아니면 여성들이 많은 직종에서 저임금 구조가 나타나는 걸까요? 저임금 여성노동자 취재를 할 때 제가 품었던 질문입니다. 입주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취재를 하면서 만난 여성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모두 '후자'에 무게를 뒀습니다. 여성이 하는 일이 너무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평가절하한 인식이 임금에 반영된다는 겁니다. 결국 여성이 많이 분포한 직종에서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는 '일반적 패턴'의 반복입니다.

'불법파견 인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고도 신대구부산 민자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이 '2차전'을 준비하는 이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플랫에서 저임금 여성들의 임금명세서를 분석해 다룬 적이 있는데, 신대구부산 요금수납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본급 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인 '전형적인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명세서를 보이고 있습니다. 임금 항목도 별로 없어 '단순'하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사각지대에 있는 다른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도 비슷할까요? 계속 사례를 발굴해 임금명세서 데이터로 보여주려고 해요.

저임금 처우 시정을 위한 싸움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교 대상 직군'이 없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에 대한 문제제기가 번번이 기각되면서 두 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래 내 아이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서 수납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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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 유선희 기자 y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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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젠더이슈

놓치지 말아야 할 뉴스

📌 60년간 남성만 마을이장으로 선출해온 관행은 여성을 배제하는 '간접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이 마을에선 소수 남성이 이장 선출을 주도했고, 관행적으로 여성은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위는 이장 임명 시 남성이 모인 방에서만 임명 절차가 진행된 점을 두고도 "의사결정자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기저에 있다"고 봤습니다.

✔마을이장은 남성만 하라는 법이 있나요? 인권위 "간접차별"

📌 오세훈 서울시장이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추진하던 만남 주선 사업 '서울시 소개팅(서울팅)'을 전면 재검토 하기로 했습니다. '서울팅'은 추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곧바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저출생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저출생은 결혼·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높은 주거비용, 일과 육아 병행이 어려운 현실 등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이 정책으로 인해 더 좋은 저출생 대책이 희석되거나 우선순위가 흐려질 수 있어 현재 수준에서는 접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저출생 대책으로 '서울팅' 추진하던 오세훈, 비판 여론에 '전면 재검토'

📌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이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피해자들에게 약 3741억원을 지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엡스타인은 2008년부터 성범죄자로 등록됐지만, JP모건 계좌를 통해 미성년자에게 송금하는 등 성착취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이번 합의는 금융 기관이 성착취를 적발하고 차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신호"라고 밝혔습니다.

✔JP모건-성착취 피해자 합의, 금융기관도 성범죄 '연대책임' 있다

문화가 있는 플랫

이번주에 소개할 콘텐츠는

⚒️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 보셨나요? 여성들의 전투생존 서바이벌으로, 군인과 경찰, 소방, 경호 등 6개 직군의 출연자가 승부를 겨루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서바이벌이 주로 남성 위주로 진행되고, 힘을 겨루는 과정에서 '남성성'이 부각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예능은 무척이나 반갑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작발표회에서 소방팀 리더 김현아 소방교의 발언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직군 자체에 집중하기에 앞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덧씌워진 편견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그의 고충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편견이란 편견을 먹고 사는 직업인데, 세 가지 무기가 필요합니다. 밥, 사명감, 그리고 신뢰입니다. 실제 현장에 나가서 보여주기 전까지는 국민께서 많이 안 믿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보여줘야겠다, 보여주고 코피 터지게 하면 다르겠구나, 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현장처럼 생각하고 다녀왔습니다."

사이렌을 연출한 이은경PD도 "가장 우려하는 점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여자치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분들은 여자 소방관, 여자 군인이 아니라 소방관, 군인, 경찰 등을 대표해서 나온 분들이다"고 강조했습니다.

각 직군의 명예를 걸고 살아남기 위해 거침없이 몸을 날리는 장면을 보면 덩달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