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족하고 힘든 삶이어도 주어진 것에 감사할 것을 찾다 보면 견딜만 했습니다. 노력해서 얻지 못해도 땀 흘리는 과정에 감사할 거리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 배우고, 얻고, 나누고, 깨닫는 등의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쓴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죄>라는 시를 알기 전까지, 나의 감사함 때문에 누군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추수감사절 담임목사님이 안내해 준 시를 읽다가 눈물이 터졌습니다.
박 시인은 노동운동가였습니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란 문구에서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을 정도였어요. 복역 후 전 세계의 분쟁 지역을 돌며 평화운동가, 시인, 사진작가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내 또한 약사이면서도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했습니다.
박 시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되신 후 막노동 판을 전전하면서 자녀를 키운 모양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엄혹하고 모진 세월을 살아 내면서 매일 기도하면서 감사함으로 사신 박 시인의 어머니.
큰아들과 막내딸은 신부와 수녀가 되고, 둘째 아들은 사형선고까지 받을 정도로 민주화 운동에 목숨을 걸었고, 며느리 또한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한 가정입니다. 그러한 자녀들의 삶을 너무나도 감사하다면서 기도합니다. 시에 그분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