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분리된 생활은 꽤 즐거웠다.

 

급하게 찾았지만 운 좋게 꽤 좋은 전망의 오피스텔과 일 잘하는 부동산 중개인과 친절한 집주인까지..! 지옥의 한가운데서도 살만한 이유들이 계속 생겼다. 마침 이케아와 가까운 입지 덕에 집을 꾸미는데 즐거움을 느꼈고 여기에 집중하느라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거의 다 잊을 수 있었다.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것을 먹고 엄마와 동생을 불러 편하게 지내면서 마음과 몸이 조금씩 나아졌다. 어디에선가 ‘엄마가 없는 건 싫지만 엄마랑 같이 사는 것도 싫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는데 가족은 조금 떨어져 지내야 애틋해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몸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자취를 시작한 첫 1년 동안 지내면서 가정 내에 평화가 찾아왔고 2년에 접어들면서 금천구의 오피스텔은 자취 집에서 작업실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그렇게 본가와 작업을 왔다 갔다 하며 일을 했다. 2년째 되는 해에는 감격스럽게도 직접 운전하는 차에 아빠와 동생을 태워 운전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본가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작업실이 있는 금천구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서 자고는 일이 많기도 했고, 거주공간에는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어 월세로 세금 처리를 하지 못한 상태로 2년을 지내니 슬슬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자를 등록할 수 있는 사무실이 필요하여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상가를 알아보며 적절한 곳을 찾다가 이사 한 달 전에 본가에서도 가깝고 적당한 거리가 있는 사무실 하나를 찾았다. 이번에도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젊은 사장을 자신의 건물에 입주 시키고 싶었던 건물주가 특이하게도 원룸 매물 위주로 올리는 피터팬에 사무실 매물을 올렸고 이리저리 모든 앱을 둘러보고 내가 보게 되어 바로 계약까지 어렵지 않게 진행했다. 마침 건물주가 같은 건물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던지라 복비보다 월세를 원해 복비를 받지 않는 혜택도 함께 주었다. 이전 세입자가 창고로 쓰던 공간을 직접 고쳐가며 써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좋은 입지와 저렴한 월세, 복비 없음은 나에게 정말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계약을 하고 보증금을 전달하여 10월부터 셀프 리모델링을 했다. 동네 친구들의 일정을 조정해서 다 같이 페인트를 칠하고 동생 찬스를 이용하여 금천구에서 차를 가져가 대방동으로 작업실 짐을 옮겼다.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외주와 이사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정신없는 연말을 보냈고 그렇게 2023년이 다가오면서 두 번째 작업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현재까지 잘 쓰고 있는 이 작업실은 5평에서 7평으로 넓힌 것 밖에 없지만 짐이 평수에 맞게 금방 늘어나서 나름대로의 균형을 잡아가며 조절을 해야 할 정도로 완벽하게 적응했다.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좋고 화창한 날에는 작은 창문 쪽으로 해가 들어 좋은 곳이 되었다. 작업실 창밖의 나무 위에 눈이 쌓이던 때를 지나 꽃이 피고 연녹색 잎이 무성한 계정을 지나는 중이다. 이따금 초등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옆 사무실 어린이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즐거운 작업실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첫 전공이 인테리어디자인이었을 정도로 공간에 대한 관심 자체가 늘 높았다. 물론 지금은 직업으로 인테리어디자인을 삼고 있지 않지만 인간과의 관계를 제외한 공간과 나의 가장 첫 번째 물리적 관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공간은 인간에게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공간이냐에 따라 사람의 의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관심과 의욕을 작업실에 투자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은 본가의 부모님 집에서 잠만 자는 것으로 절충을 했는데 집에 있을 때는 모든 의욕이 0에 수렴한 채로 살다가 작업실만 가면 의욕이 생기는 것이 늘 신기하다 생각하고 있다. 인간이 참으로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존재라 간단히 신체를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다른 의지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대로 물건을 넣어 꾸릴 수 있는 한 줌의 공간이라도 인간은 정을 붙이려고 노력한다. 그 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아닌 공간에도 붙여보려는 것이 늘 신기하다 느낀다. 


인간에게는 생각을 꾸릴 수 있는 책상과 꿈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한 줌의 공간을 찾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다음레터예고! <프리랜서와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