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빈곤자와 주 69시간 근무제
이번 주 4.5시간 적자예요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3.28. 화요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독자님은 시간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구에게나 매일 24시간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시간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아니에요.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영화를 보고 싶은데, 밀린 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며 밤늦도록 일터에 매여 있는 이들을 흔히 만납니다.


‘어서 퇴근해서 원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대체로 소용이 없어요. 퇴근을 몇 시에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시간주권’이 남들보다 희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임금 노동자가 대표적이죠. 오래 일해야만 낮은 소득을 보충할 수 있으니 여가는 물론이고 가족을 돌볼 시간도 갖기 어려워요. 


정부가 추진하는 ‘주 최대 69시간 근로제’까지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요? 누구에게나 일주일은 공평하게 168시간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중 69시간을 꼼짝없이 일터에서 보내야만 할 거예요.


그 외엔 먹고, 자고, 이동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겠죠. 다음 주에 휴가를 쓰면 해결될까요? 그럴 여건이 되는 일터가 많지 않은 데다,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쓰는 '시간주권'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를까요? 내 아이에게 내 시간을 쏟을 자유는 앞으로 더 줄어들 것만 같은데요. ‘시간빈곤자의 2023년’ 시리즈 첫 회를 함께 읽고 대화해 봐요. 약 3분 분량입니다.

☑️ 노동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나면 직장을 다니는 한국인은 수면·식사 등 기초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주당 4.5시간의 '빚'을 져야하는 상황에 빠진다.

☑️ 특히 자녀를 양육하거나 노인·장애인·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는 가구의 '시간 빈곤'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자녀를 혼자 키우는 '한부모' 가구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지만, 양부모 가구에서도 시간 빈곤은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만드는 주된 이유가 된다.
시간빈곤자가 아이를 키우는 방법
2023.03.26. 김태훈 기자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한 주 노동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나면 99시간이 남는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취업자의 주당 평균 ‘필수·의무시간’은 103.5시간이다. 노동시간을 제외하고 수면과 식사, 출퇴근, 가사노동 등 개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이만큼이다. 여기에 여가를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주 69시간을 일하면 4.5시간 ‘적자’가 발생한다.

‘시간 빈곤’은 소득 빈곤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다. 특히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노인·장애인·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는 가구는 수시로 시간 빈곤에 시달린다.

연구자들은 통상 여가(자유시간)가 그 나라 중위값의 60% 이하이면 시간 빈곤으로 여긴다. 국내 연구에서는 한국의 시간 빈곤율이 19.9%(신영민, ‘시간빈곤인의 노동시간 특성에 관한 연구’, 2021)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모자란 가구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늘려 시간 빈곤에 빠진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가족 돌봄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족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가족을 대신 돌봐주는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고, 그만큼 지출이 늘어나 경제적 어려움이 반복된다.

이런 만성적인 시간 빈곤은 저출생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양육비나 보육서비스 지원 등의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결국 아이를 낳아 기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자녀를 비롯해 늙거나 병들어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어 시간 빈곤을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까지 쪼개 최소한의 돌봄 시간을 확보하려는 이들은 ‘시간 복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부족한 돌봄 가구와 이들의 시간 빈곤 문제를 연구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혼자서 자녀 둘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임효빈씨(44)는 며칠 전 심한 두통으로 직장에서 조퇴했다. 그러나 병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인 두 아이를 일찍 만날 기회였기 때문이다. 임씨는 집에서 ‘휴식 겸 돌봄’을 하면서 두통을 다스렸다.

건설업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임씨는 평소에는 오후 7시 퇴근 후 곧바로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이어 설거지와 집 청소도 임씨의 몫이다. 지난 24일 기자와 만난 임씨는 “회사 회식에 한 번도 참석하질 못했다”며 “나 혼자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호프집 가서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셔보고 싶다”고 말했다.

홀로 ‘치맥’을 즐기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임씨는 급한 일이 생겨도 아이들을 부탁할 형제가 없다. 부모님은 만나기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노동시간을 더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한다면 임씨는 더 이상 가정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임씨는 “이런 정책 대부분은 한부모 가정을 배제해 놓고 논의가 진행된다”며 “애초에 ‘주 52시간 노동’조차도 나랑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임씨 같은 ‘한부모’ 가구의 양육자는 대표적인 ‘시간 빈곤자’로 꼽힌다. ‘양부모’ 가구보다 소득이 적을 가능성도 커 소득과 시간의 이중 빈곤을 경험하곤 한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2021년 5월 내놓은 ‘생활시간조사를 통해 본 한부모 시간빈곤’ 보고서를 보면 취업한 한부모 여성의 일하는 시간은 자녀가 있는 맞벌이 여성보다 하루 평균 13분 더 길었지만 가정관리 시간은 17분 짧았다.

부족한 소득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그만큼 가정에서 쓰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보고서를 쓴 노경혜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한부모의 시간 빈곤을 논의할 땐 단순한 시간사용 차원뿐 아니라 소득과 한부모 가족의 특수성을 고려해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부모 가구는 한부모 가구보다 대체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양부모 부모 둘 중 한 명이 빠지면 한부모 가구와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 6세 아들 한 명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강호민씨(41)와 김진선씨(39) 부부에게도 ‘시간 빈곤’이 때때로 찾아온다. 부인인 김씨는 “남편이 일하는 회사 프로젝트 마감이 닥치면 새벽에나 귀가할 때도 종종 있다”며 “남편이 바쁜 와중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킨 뒤 다시 회사로 가거나, 내가 연차를 쪼개 써야 겨우 아이를 돌보는 게 가능한 날도 있다”고 말했다.

‘6시 퇴근’을 지켜도 시간이 풍족하게 남지는 않는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출근길에 함께 집을 나서서 퇴근 시간까지 어린이집에서 지낸다. 각자가 일터와 보육시설에서 지내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막상 세 가족이 함께 여가를 즐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김씨는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하지만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 69시간’까지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정부의 정책은 강씨와 김씨 부부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진다. 김씨는 “정부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겠다는 얘기를 계속해오면서 그게 가능해지려면 시간이 중요하다는 점은 몰랐는지 답답하다”며 “주 52시간제에도 현실이 이런데 주 69시간을 하겠다는 건 가정을 해체하겠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3년 전 결혼한 이석훈씨(39)와 조민정씨(37) 부부는 시간 빈곤을 ‘간접 경험’하고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이씨는 “누나가 첫째를 낳았을 때까지만 해도 다니던 대학원의 박사 논문을 곧 마칠 것처럼 보였는데 연년생인 둘째를 낳은 뒤 10년 넘게 해왔던 공부를 아예 놔버리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아이가 생기면 소득 빈곤과 시간 빈곤을 모두 경험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씨는 “무엇보다 2세가 늘 바쁘면서도 돈에 쪼들리는 부모 아래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며 “육아의 현실을 주변에서 어깨너머로 봐온 경험으로는 기본소득처럼 누구나 언제든 쓸 수 있는 기본휴가 같은 대책도 같이 나와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나 요새 일이 너무 바빠서 ○○○을 못해!”


혹시 이렇게 투덜거려본 적 있나요? 그렇다면 독자님 역시 시간빈곤의 경험이 있으시군요.


시간빈곤은 시간의 쓸모를 스스로 결정하는 ‘시간주권’이 보장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독자님께서 끝없는 야근 대신 ○○○을 하는 데 소중한 저녁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시간주권을 보장해줘야 하죠. 


그런데 우리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기존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늘린다고 하죠. 게다가 오늘 기사에 등장한 시간빈곤자들의 ○○○은 출산과 육아였어요. 출산과 육아에 시간을 쓰기 원하지만 긴 노동시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저출생 대책을 마련하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저출생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점선면에서도 저출생을 다룬 적 있지만, 저는 단순히 인구문제 때문에 저출생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포기할 정도로 척박해진 사회와 그 속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시간빈곤자의 2023년’ 시리즈의 다른 기사를 보면,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국내 노동자들이 자녀를 돌보는 시간이 하루 평균 4.2시간뿐이었다고 해요. 자녀와 상호작용이 이뤄진 돌봄 시간은 1.3시간에 불과했고요.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돌봄 공백에 빠집니다.


김태훈 기자는 2018년에도 주간경향에서 시간빈곤을 주제로 기사를 쓴 적 있는데요. 기사에서 그는 “부모의 시간빈곤은 자녀 세대의 양육환경 불평등과 양극화로 나타난다”고 분석합니다. 시간빈곤이 돌봄 공백으로 이어지고, 돌봄 공백이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낳는 악순환을 우려하면서요.


아이들에게 돌아갔어야 할 부모의 시간이 직장에서 흘러가는 동안,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미래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일할 '때'를 정해주는 이중빈곤의 사회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잡히지 않는 미래의 '때'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채워나가"는 한국인의 시간 개념이 우리가 겪는 시간빈곤과 연관돼 있다고 말합니다.

🔗 주 40시간도 길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두 어린이를 키우는 경제학자 우석훈씨 역시 양육자로서의 느끼는 시간빈곤을 호소합니다. 주 35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아내의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남편인 우석훈씨의 양육 강도가 '죽을 맛'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이야긴데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권리"로서 출산과 육아를 바라본다면 노동시간 축소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집니다.
오늘 주제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질문과 의견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구독자님의 이야기
📬 지난주 3월22일에 보내드린 점선면 <후쿠시마 오염수 왜 못 막는 걸까?>에 대해 독자님들께서 "심층적 포괄적 보도 감사합니다" "심각성을 알았지만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등의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 "점선면을 세심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없지 않다는 거에요. 지난 점선면에서는 지금까지 오염수 방류를 막지 못한 원인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중점을 두다보니, 앞으로 필요한 대책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지 못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이후에도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를 통해 일본이 더 이상 방류를 할 수 없도록 저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만 그러려면 우리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시민의 참여와 행동만이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어요. 계속해서 오염수 방류 문제를 공론화하고, 논의하고, 토론하고,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함께 해봐요!" 
오늘 레터를 공유하고 싶다면 '여기'를 눌러서
해당 사이트의 링크를 복사해 전달해주세요.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