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시청자에게 텔레비전을 인식하게 만들었듯, 모든 청취자에게 디지털 오디오 기술을 다시 보게 하는 《다른 방식으로 듣기》가 출간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다른 방식으로  보기  듣기

🌱죽순


[배경 음악: 갤럭시 500의 〈 Blue Thunder 〉]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귀는 관점을 가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디오 기술은 관점을 가지고 발전해왔습니다. 말, 악기, 보컬의 소리가 깨끗하게 귀에 닿도록, 노이즈캔슬링 기술이 도입되고 각각의 소리를 세심하게 배치할 수 있게 새로운 툴들이 개발되었죠. 아날로그 오디오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유선 전화기나 카세트테이프를 일상적으로 접했던 ‘옛날’ 사람이라면 지금의 디지털 오디오 기술이 어딘가 너무 매끈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짧게 활동한 미국의 록밴드 갤럭시 500의 멤버이자 《다른 방식으로 듣기》의 저자 데이먼 크루코프스키는 묻습니다. “우리 귀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듣고 있을까?” 혹시 지금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의 이야기가 배로 재밌으실 거예요.


《다른 방식으로 듣기》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오디오로 전환되면서 우리의 시간, 공간, 사랑, 돈, 권력, 신호와 소음에 관한 인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건드리며 듣기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1. 시간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시간과 컴퓨터가 표현하는 시간은 좀 다릅니다. 후자가 정박이라면 전자는 종종 엇박이죠. 엇박, 즉 시간의 지체 혹은 당김의 틈에서 들리는 소음들이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2. 공간
우리는 지하철에서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합니다. 근데 사실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을 더 공유하려 들지 않습니다. 공원, 길, 대중교통, 공유 오피스에서 이어폰을 낀다는 것은 공간의 사유화 조치이기도 합니다. 

3. 사랑
소리 그 자체는 언어보다 앞서는 소통의 수단이에요. 잡음도 그렇죠. 디지털 기술로 제거된 소음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친밀감까지 지웠는지도 모릅니다.


4. 돈
음악은 물건이 되어 사고팔립니다. 가령 CD 말예요. 음, 그럼 우리가 사는 것은 음악인가요, CD인가요?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한다는 것은 음악을 산다는 의미일까요?


[배경 소리: “이건 피유알에 사철 제본 해야 돼. 그냥 풀로는 안 돼.” 인쇄 상담 중.]


5. 권력
서점, 레코드숍, 도서관에서 우리는 탐색하는 법을 익히고 적지 않은 탐험 끝에 자기 세계를 찾습니다. 우리가 그 세계의 법칙에 적응해야 하죠. 디지털 서비스 기업들은 이용자에게 고도로 적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클릭한 몇 번의 ‘동의’ 버튼으로 누리는 호사일까요?


6. 신호와 소음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과 디지털 신호만을 추구하는 세상 사이에서 듣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동명의 인기 팟캐스트를 원작으로 한 《다른 방식으로 듣기》는 2월 말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각주* 59호를 오픈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다다음주에 만나요.

주택·도시 및 지역계획 연구실 HURPI 구술집
🔈모베

20세기 한국의 지식과 산업계의 제일 모토는 ‘국산화’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의 지식과 공업생산품을 쉼없이 모방하면서 국산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자동차, 전자 제품 등은 물론이고 음악과 만화 같은 문화상품도 국산화(번안)해 왔습니다. 이는 건축과 도시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저개발 국가에 서구 건축가들은 여러 방식으로 직접 작업을 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 같은 대가들은 신생독립국의 국회의사당이나 기념비적 건축물을 지었고, 바우하우스 출신 건축가들은 세계 곳곳에서에서 신도시를 건설하고, 집합주택을 대량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델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끊임없이 일본과 미국에서 지식이 흘러들어왔고 수많은 이들이 유학을 떠났지만 외국 건축가나 계획가가 한국에 들어와 활동한 예는 무척 드뭅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다룬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건축가 김수근이 주도한)는 엔지니어링 산업의 ‘국산화’ 프로젝트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거의 모든 산업이 냉전 구도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쉽게 포착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런 흐름을 반복하는 것이면서 예외이기도 한 기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HURPI입니다. 아마 대부분 처음 들어보실 듯해요. HURPI는 Housing, Urban and Regional Planning Institute의 약자로, 1965년 5월 아시아재단과 건설부의 협정에 따라 건설부 산하에 설립된 도시설계 조직, ‘주택·도시 및 지역계획 연구실’을 말합니다. 아시아재단은 냉전 시절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확대하기 위해 미 중앙정보부가 운영한 조직입니다. 이 협정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미얀마에서 활동한 오스왈드 내글러가 방한합니다. 그는 HURPI를 조직하고 젊은 재원을 모아 도시계획가로 키우는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서울과 수원 등 여러 도시의 계획을 세워보기도 합니다.


HURPI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대단합니다. 손정목, 황용주, 홍성철, 김진균, 우규승, 강홍빈, 문신규 등등. 이들은 모두 현대 한국 건축과 도시 분야에서 대단한 영향을 행사하게 됩니다. HURPI는 당시 한국 정부에서 준비중이던 도시계획과 결이 달랐습니다. 서울시는 원형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청-종로를 중심으로 서울을 동심원을 그려나가며 확장하는 계획이죠. 내부순환로, 그린벨트, 강남개발, 1기 신도시 등이 대체로 이런 계획의 결과물입니다. 반면 내글러와 HURPI는 선형개발을 주장했죠(이 흔적이 목동 계획으로 흘러들어갑니다).


『HURPI 구술집』은 도시계획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1960년대 중반, 도시와 건축이 분화해 나가던 시절에 대한 놀라운 보고서입니다. 이 구술로 그간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HURPI의 실체를 드디어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기미술관,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 우규승이 50년 동안 잘 보관해온 놀라운 자료들도 가득합니다. 이 시기 건축과 도시를 비롯한 한국사회, 나아가 냉전 체제와 지식 등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책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후 HURPI에 대한 모든 연구는 이 책에서 시작될 겁니다. 목천김정식문화재단과 마티가 펴내는 구술집 시리즈는 아주 소량만 제작합니다.

듣는 방법 
🦻 팔랑 - 피에가(Piega) 701
피에가 701에 매킨토시 인티앰프 ma7900으로 사무실에서 간혹 들어요. 이 앰프의 장점이라면 역시 다양한 입력단을 소화한다는 것이죠. 포노부터 씨디, D/A 컨버터까지 갖췄는데 포노를 무려 MM, MC 모두 사용할 수 있어요. 물론 스피커 구동력도 뛰어나요. 파워가 무게와 비례하지는 않지만 과천 어느 댁에서 이 녀석을 입양하려고 무심코 들어올리다가 허리께에서 뚜둑, 소리가 나서 응? 했던 기억이 ... (찾아보니 34킬로그램이라네요) 피에가와 아주아주 찰떡 궁합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스피커와 합주를 시켜본 적이 아직 없어서요) 사무실 이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타이핑 소리도 한숨 소리도 누군가의 좋지 않은 뱃속 사정이나 코고는 소리까지도 묻히도록 현란하게 펼쳐주기는 합니다. 아참, 작년엔 이 조합으로 바흐 칸타타 청음회를 했더랬죠. 올 연말에도 한 번 더?

🧼 퐁퐁 - 하베스 SHL5

털 친구와 같이 살면 ‘듣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발바닥 젤리로 턴테이블 바늘을 망가뜨리진 않을지, 스피커를 스크래처럼 박박 긁어대진 않을지... 기계 걱정도 되지만,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고양이들에겐 어느 정도의 음량이 적당할까요? 인간에게 듣기 좋은 소리가 고양이들에게도 듣기 좋을까요? 매일매일 고양이 눈치를 봐가며 음악을 틉니다. (스피커에는 그릴을 씌웠고, 턴테이블은 뚜껑이 달린 것으로 구입했죠.)
작년 여름, 궤짝형 스피커 하베스 SHL5를 들였습니다. 부드러운 소리와 고전적이고 단정한 외관이 마음에 쏙 들었죠. 고양이들도 캣타워로 잘 활용해주고 있습니다.


🔈모베 - 아코르도

스피커는 오디오 장치들 가운데 가장 전자제품인 종류입니다. 네트워크 회로가 들어가지만 전자공학보다 물리학과 재료공학의 산물입니다. 제작자 가운데는 스피커는 악기와 같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대 스피커 제작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의 프랑코 세르블린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크레모나 바이올린 제작자들을 흠모하는 세르블린은 자신이 만나드는 스피커가 과르네리와 아마티의 뒤를 잇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스피커가 아코르도(Accordo)입니다. 나무, 금속, 가죽 등의 재료를 정교하게 짜맞춘 스피커는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 조스바 -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
나열해보니 영화 「나쁜 놈, 착한 놈, 이상한 놈이 생각나네요. 이어폰보다는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변 소음이랑 음악이 섞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거든요. 듣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각 기기의 스피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이맥으로는 재즈를 많이 들어요. 특유의 울리는 소리가 강한데(10년 가까이 되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명하게 들려야 하는 음악을 듣기는 힘들더라고요(가령 ‘랩’이 들어간 힙합).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아이맥보다는 최신기종이고 그래서 더 선명하게 들려요. 아이폰은 어딘가 지직 거리는 기계음이 강해서 아이패드를 조금 더 선호합니다(10년 전부터 아이폰만 써온 탓에 이전 아이폰의 음질을 기억해서 그럴수도 있어요. 기억이란..). 그래서 팟캐스트나 영상의 대화가 깨끗하게 들려요. 아이맥의 울림은 말소리가 전부 울려서 들기 힘들더라고요.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는 막귀인 저에게 사치인가 싶어 구매를 망설이는 중입니다... 

🌱 죽순 - LG전자 번들 유선 이어폰

아이폰 + 이어폰 젠더 + 유선 이어폰 조합을 이용합니다. 5-6년쯤 썼던 LG전자 스마트폰에 딸려 커널형 유선 이어폰이 망가져서요. 언젠가 식은 커피에 왼쪽만 빠뜨려서 ‘! 이제 고장나는 건가!’ 하고 조금 기대했는데, 건조가 잘됐는지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음질에 민감하지 않은 저는 앞으로도 한동안  조합을 유지할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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