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Vol.94 〈사랑이 밥 먹여주지〉

에둘러 꺼내보는 사랑

얼마 전, 아빠와 연락을 나누다 마무리할 즈음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덩달아 따끈하고 든든한 걸로 점심 드시라고 했는데, 이어지는 아빠의 답장에는 “너나 잘해라” 다섯 글자만 적혀 있었죠. 킥킥 웃다가 그 다섯 글자에 담긴 마음이 뭘까 고민해 봤어요. 밥을 먹었느냐는 인사말로 흔히 쓰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듣는 이의 오늘이 평안한지 묻고 싶고 일상을 다독여주고 싶거나, 아주 조금은 걱정도 담겨 있을 테니까요. 상대방의 하루 전부를 쓰다듬는 듯한 말 한마디가 사랑을 에둘러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님께도 물어보고 싶어요. 오늘 식사, 잘 챙겨 드셨나요? 나와 주변을 잘 보살피셨나요? 어라운드가 꺼내두는 사랑을 느끼시길 바라며, 《AROUND》 94호에서 먹는 것과 사랑을 하나로 매듭지은 배우 최강희의 이야기를 뉴스레터에 꺼내둡니다.

04.18.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AROUND Vol.94 식탁 위에서(Time To Eat)

〈사랑이 밥 먹여주지〉 최강희—배우


05.02.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오늘 다시 보아도 좋을, 그때의 이야기를 소개해요.


05.15.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사랑이 밥 먹여주지〉

최강희—배우

한입 가득 음식을 밀어 넣고 냠냠 먹는 것도, 썰지 않은 김밥을 한 손에 쥐고 우걱우걱 씹는 것도, 풍선껌을 한 통 가득 입에 넣고 오물오물 혀를 굴려 풍선 부는 것도, 미처 다 씹지 않은 음식물을 한쪽에 두고 또 다른 음식을 밀어 넣어 함빡 먹는 것도, 최강희에겐 재미이자 사랑에 다름 아니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

2009년에 나온 강희 씨 책 가지고 왔어요.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여기 ‘나에게 반짝이는 것들’이라는 글이 있는데 먹을 게 눈에 많이 띄더라고요. 라임 주스, 여름에 동아냉면, 칠리 덕 세트, 던킨의 플레인 베이글.

와, 2009년 판이네요. 오랜만이다(웃음). 던킨의 플레인 베이글은 사실 그냥 베이글인데요. 그걸 먹으면 외국에 촬영 나가서 먹던 베이글이 생각나서 좋아요. 영어를 잘 못해서 아침에 혼자 식당 가긴 부담스럽고… 그럴 때 베이글 집에 가서 베이글이랑 커피를 주문해서 먹곤 했어요. 새벽에 나가서 사 먹던 그 맛과 낯선 외국 느낌이 떠올라서 베이글을 좋아하게 됐는데요. 그래서 베이글을 먹으면 약간의 모험심과 용기가 생기는 기분이에요. 위로 같기도 하고요. 여름에 동아냉면은 제가 에디터님한테 서강김밥 먹어 보라고 했을 때의 재미랑도 비슷해요. 동아냉면이 되게 맵거든요. 아는 사람을 데려가서 “이거 먹어 봐.” 하는 게 저한텐 재미였던 거죠. 항상 그 맞은편에 있던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 가지고 가선 “사장님, 김밥이랑 같이 먹어도 돼요?” 묻곤 했어요. 매운 거 못 먹는 친구한테 냉면 먹이면서 매울 때마다 김밥 하나씩 먹으라고 했거든요(웃음).

 

강희 씨 기억 속 음식은 맛보다도 기억의 비중이 크네요.

정말 그래요.

 

이번 호에서 먹는 걸 다뤄서 그런지 책에서도 먹는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띄었어요. “기억 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말한다. ‘그래도 끼니는 알아서 챙겨 먹어야지, 그래야 착하지.’”라는 대목이 있지요. 스스로 끼니를 챙길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당부로 먹게 되는 일도 많은 것 같아요.

보통 엄마가 그러죠.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고요(웃음). 저도 항상 “엄마, 나 뭐 먹었는지 궁금해하지 마! 알아서 잘 먹었어!” 그러거든요. 말씀해 주신 문장은 제가 겪은 걸 쓴 건 아니고, 상상하면서 쓴 문장인데요. 제가 어릴 때 출연한 〈광끼〉라는 드라마를 생각하면서 썼어요. 대학생 드라마였는데, 원빈, 배두나, 양동근 배우가 같이 출연한 작품이었어요. 제가 성연, 원빈 씨가 민 역할이었는데 극 중에서 성연과 민이 좋아하게 되면서 항상 서로의 끼니를 챙겨요. 대학 생활이 바쁘니까 잠깐씩 마주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 잠깐 “밥 먹었어?” 하고 묻고, 손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멀리서는 밥 먹는 시늉을 하면서 “밥 먹었어?” 하고 입 모양으로 묻고. 그런 표현을 유난히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사랑엔 많은 언어가 있지만 상대의 끼니를 챙기는 게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가 끼니를 걱정해 주면 왠지 더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강희 씨는 뭔가를 먹을 때 쓰레기 걱정을 하신다고요. 〈나도최강희〉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어요’ 편에서 “밥 먹을 때 이게 어디로 가는지 안 궁금해?” 하고 쓰레기의 행방을 궁금해하기도 했죠.

한동안 쓰레기 모으는 체험을 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네 달 동안 제가 쓴 쓰레기를 모았던 적이 있어요.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제 밑바닥을 보고 싶었어요. “진짜 사랑해? 너 가짜지?” 하는 마음으로요. 제가 먹은 거, 버린 거… 쓰레기를 모아보니까 깨끗이 닦아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지 않으면 엄청 지저분하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됐어요. 그대로 두면 금세 부패하고 냄새도 나고 흉측해지더라고요. 그 당시엔 제가 만든 쓰레기들을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고 그랬거든요. 악취 때문에 힘들다고,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제가 이타적으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도 그 체험 끝에 좋은 습관이 생겼어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연스럽게 환경을 지키는 태도를 갖추게 됐거든요. 텀블러를 꼭 챙겨 나가고, 쓰레기 많이 나오는 건 피하게 되고. ‘아, 나 지금 진짜구나.’라는 걸 깨달을 때 쾌감이 커요.

 

먹는다는 건 결국 책임이랑 관련 깊은 일 같아요.

맞아요. 사랑이랑도요. 나를 사랑해야 내 먹거리를 챙기니까요.


현대사회를 표현하는 말로 “바쁘다, 바빠.”라는 말이 자주 쓰이죠. 바쁠 때 제일 먼저 소홀해지는 게 밥이랑 잠인 듯한데, 바빠서 먹는 거에 소홀해질 때 있어요?

아니요. 저는 바빠서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돼요. 저는 바쁘면 잽싸게 김밥 한 줄 사서 통째로 뜯으면서 이동하거든요. 이에 뭔가 낄까 봐, 그거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안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저는 그럼 잽싸게 먹고 잽싸게 이를 닦아요(웃음). 맘이 바빠서 다 쏟고, 엎으면서도 어쨌든 먹어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뚝딱 해치우는 딸이었어요.

다른 삶의 모양이 궁금한 사람

배우 최강희가 꺼내둔 문장을 읽으니, 서두르지 않는 속도로 해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최근 그는 유튜브 채널 ‘나도최강희’를 개설한 후 그야말로 ‘이것저것’ 되어보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환경미화원으로, 어느 날은 소방관으로, 또 다른 날은 카페나 조개찜 가게의 일일 아르바이트생이 되어보며 다른 삶의 모양을 들여다보는데요. 누군가의 삶에 진득이 녹아든 후에는 애정이 담긴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최강희의 물음으로부터 더불어 사는 존재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오늘은 ‘나도최강희’ 유튜브 속 콘텐츠 하나를 소개할게요.


이명주

작은 병에 다정함을 담아 전하는,

‘나도최강희’ 프레시 매니저 편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트르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요쿠르트 주세요!”라는 노래를 알고 있나요? 어린 시절, 살구색 병에 달린 초록색 뚜껑을 따 요구르트를 ‘꼴깍’ 삼키며 부르던 노래인데요. 그 몇 모금이 어찌나 달콤했던지,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부르던 프레시 매니저가 전동차를 끌고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군침이 흘렀어요. 그 달콤한 기억을 따라 최강희는 일일 프레시 매니저가 됩니다. 이른 아침, 매니저 선배와 함께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동네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며 판매도 척척 해내요.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내가 쓸모 있을 때”라고 말하던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애정 듬뿍 담긴 시선을 보냅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웬만해서는 사람이 다 좋아요. 어떤 사람을 묵상하다 보면 매력이 무궁무진해서 마음만 먹으면 삽시간에 빠질 수” 있다던 94호 인터뷰 속 최강희의 문장이 떠올랐어요. 나와 사소하게 얽힌 주변 이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안아보자고 다짐하면서, 그의 걸음마다 응원을 보냅니다.

발견담, 우리의 시선을 나눕니다


어라운드가 지나온 10년의 기록을 풀어두었던 전시 <발견담>,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모은 장면을 꾸준히 나누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현재 오프라인 공간 ‘발견담’을 준비하고 있어요. 5월 초 공개될 이곳은 오직 정기구독자분들을 위해 어라운드의 시선을 빌려드리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평범하고 익숙한 장면을 맴돕니다. 자주 걷던 길, 사소한 대화, 엇비슷하게 이어지는 일상에서 오래 보아도 귀하게 느껴질 이야기와 삶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같은 마음으로 ‘발견담’에서 잡지를 마음껏 넘겨보고, 어라운드의 지난 발자취가 담긴 질문에 답해보세요. 우리의 취향을 말미암아 나만의 애정을 발견해 봐도 좋습니다. 94호 한편을 채워주었던 ‘아워플래닛’과의 만남도 준비하고 있답니다. ‘발견담’을 준비하는 마음과 장면을 앞으로 차근차근, 풀어내어 들려드릴 테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A. 서울 마포구 동교로51길 27 하얀색 타일 건물 AROUND


어라운드가 건네는 하나의 질문, 
‘Question’

지난 레터에서 영상을 통해 건넨 어라운드의 첫 질문과 답변, 재밌게 감상하셨나요? 오늘은 서울 연희동에서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하는 나카가와 히데코의 답장을 보여드립니다.

고마운 사람에게 유쾌함을 음미할 수 있는 식사를 선물하는 그에게서 좋은 맛을 완성하는 비법은 다름 아닌 만든 이의 마음이라는 사실이 와닿더라고요. 다음에는 《AROUND》 94호 속 어떤 이의 답이 공개될까요? 하나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진 후에는 나만의 답도 떠올려보세요.

푸르스름한 어둠을 지고 하루를 시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환한 빛이 무거운 눈꺼풀을 힘껏 일으켜 세웁니다. 오늘은 시간의 흐름을 눈과 마음으로, 가벼워진 옷차림과 가까운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밤보다 낮이 길어진 덕분에 더 잘 보이게 된 것도 있을 테니까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지나간 어라운드의 이야기에 더불어, 우리의 시선을 나누는 오프라인 공간 ‘발견담’에 대해 자세히 들려드릴게요. 그럼,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식탁 위에서(Time To Eat) 주제로 한 《AROUND》 94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AROUND Subscribe 1년 정기구독 | 격월 정기구독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

도전과 집요함, 현대차답게 일하는 법

 

어라운드와 현대자동차 기업문화혁신팀이 함께 만든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의 발행 소식을 전합니다. 현대차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기업 문화를 현대차의 연구원, 기획자, 마케터들의 일하는 방식으로 담아냈습니다.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라는 질문을 모두에게 던지며, 책 속 일에 진심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만의 일의 이유를 찾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게 일에 진심이야?는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어라운드를 보다 더 가까운 일상에서 만나고픈 독자분들을 위해 AROUND Club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라운드가 꾸준히 쌓아온 3,200여 개 이상의 기사를 온라인 구독 서비스 AROUND Club 통해 만나보세요. 주변을 살펴 모아둔 다정한 이야기를 여러분의 손에 내어드릴게요.
•《AROUND》 전 호의 모든 기사 열람
• 가족 매거진 《wee》, 어라운드가 함께하는 브랜드 매거진 열람
• 매거진에는 없는 비하인드 컷 감상
• 생생한 콘텐츠로 감상하는 오디오 북
• 하나의 주제로 지난 기사를 톺아보는 큐레이션
• 지난 뉴스레터 콘텐츠를 한 번에 감상
• 북마크 기능으로 나만의 페이지 소장
• 원하는 기사와 인사이트를 검색
• 어라운드만의 포스터 에세이, AROUND Page 공개

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또 다른 콘텐츠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넓혀볼게요.

당신의 주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2024 AROUND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