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포르노 논란과 감수성에 대한 고찰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Zoe입니다. 


도발적인 캠페인을 펼치기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가 최근 진행한 신규 광고 캠페인 때문에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 때문에 발렌시아가는 런칭했던 광고캠페인을 모두 폐기하고 사과문을 게재하고, 촬영 세트를 디자인한 제작사에 2,5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을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발렌시아가 사태를 돌아보며 광고 캠페인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회적 감수성과 도덕의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 오늘의 에디터 : Zoe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는 것 같다면 기분탓이 아니에요(...)
늘의 이야기
1. 발렌시아가 사태 한 줄 요약
2. 정말 몰랐을까? 아니, 몰랐어도 되는 걸까?
3. 사회적 감수성 VS 표현의 자유

발렌시아가 사태 한 줄 요약

발렌시아가가 최근 아동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광고 사진을 공개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미 이 뉴스를 보신 분도 있으실 테고, 사진까지 찾아보신 분도 있으실 텐데요. 이번에 논란이 된 화보는 11월 16일과 11월 21일, 총 2회에 걸쳐 공개된 2개의 서로 다른 캠페인입니다. 

11월 16일 공개된 가브리엘레 갈림베르티의 화보 (출처: Balenciaga)

지난 11월 16일 이탈리아의 유명 사진작가 가브리엘레 갈림베르티가 촬영한 화보가 가장 먼저 문제가 되었는데요.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이 사진들에는 총 6명의 아이들이 등장하며 모두 이번 발렌시아가의 신상품인 테디베어 모양의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테디베어들은 그물망의 옷을 입고 있거나, 하네스에 결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등 BDSM을 연상케 하는 모습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테디베어 가방들은 파리 2023 S/S 패션위크 때 런웨이에서 선보였던 제품이고, 이번 화보를 촬영한 사진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펑크' 느낌을 내기 위해 소품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화보 속에 등장했던 테디베어 가방 디테일 사진 (출처: Balenciaga)

11월 21일에 공개된 두 번째 캠페인에서는 아동 포르노에 대한 미 연방 대법원의 판례 문서가 노출되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대법원 문서는 아동 포르노의 배포를 금지하는 PROTECT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침해하지 않는가의 여부에 대한 판결문인데요. 이 문서에 따르면 PROTECT 법안과 수정헌법 제1조의 침해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담겨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동 포르노의 홍보(promoting)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실제 판례 문서가 소품으로 쓰인 데다가 16일에 최초 공개되었던 아동 출연 화보 이슈와도 얽혀, 온라인상에서는 ‘발렌시아가가 아동 포르노를 홍보(promoting)하려 든다’며 다양한 추측과 비난이 오갔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의 반(反) 낙태 운동가 릴리 로즈는 트위터에 “극도로 역겹다... 아동 성적화는 반드시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홍보 대사이기도 한 킴 카다시안마저 자신의 SNS를 통해 “아동의 안전은 최우선시되어야 하며 모든 종류의 아동 학대를 일상화하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해당 사태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죠.

정말 몰랐을까? 아니, 몰랐어도 되는 걸까?

발렌시아가를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텍터 뎀나 바잘리아의 철학은 ‘당신이 입는 옷이 태도를 만든다’라고 하죠. 그 때문에 발렌시아가는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패션과 캠페인을 선보이는 행보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사실 명품업계에서 발렌시아가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독특한 아이템으로 이슈를 몰고 다니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지난 10월에는 진짜 가방인지 감자칩 봉지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클러치백을 내놓아서 화제가 되었고, 또 지난 5월에는 다 떨어진 스니커즈를 $1,850에 판매하는 등 기행에 가까운 캠페인을 지속해서 벌여오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이번 화보에 대해서는 ‘선을 넘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뎀나는 자유로운 걸까요? (출처: 머니투데이)

이 화보가 문제가 되자 첫 번째 화보 사진을 촬영한 가브리엘레 갈림베르티는 촬영에 사용된 모든 소품과 장소, 출연진까지 모든 선택과 책임은 발렌시아가에 있으며, 본인은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편 사태가 점점 악화되자 발렌시아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즉각 진화에 나섰는데요. 이 사과문에서 발렌시아가는 “이 캠페인 때문에 발생한 불쾌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테디베어 가방은 어린이들과 함께 등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즉시 모든 플랫폼에서 캠페인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런 사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부주의(reckless negligence)”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밝히며 소품을 준비하고 화보 세트를 제작한 대행사를 고소하겠다는 입장까지 언급했습니다. 

발렌시아가가 공개한 성명문 전문 (출처: 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실제 발렌시아가가 아동 포르노를 지지하는지, 특정 관계자의 음모가 진짜로 있었는지 진실 여부는 그 담당자만이 알 겁니다. 다만 진실 여부를 떠나 광고 캠페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포토그래퍼, 마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대행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태프가 참여했음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방지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광고 캠페인은 캠페인 컨셉 선정, 소품 선정, 촬영, 편집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치는 데다, 최종적으로 결과물이 릴리즈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고 몇 개월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브랜드마다, 캠페인마다의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해당 콘텐츠가 법적으로 문제는 없을지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도 있죠.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광고 사진이 논란이 되었을 때 과연 일부 담당자의 “신중하지 못한 부주의(reckless negligence)”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릴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사회적 감수성 VS 표현의 자유

우리는 이미 ‘언어적 감수성’ 또는 ‘성 인지 감수성’ 등의 용어와 함께, 특정 이미지나 게시글 한 줄이 어떤 파문을 불러오고, 브랜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지켜봐 왔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감수성’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상황, 감정 등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2019년 당시 거세게 비판을 받았던 유니클로 광고의 한 장면 (출처: 유니클로)

지난 2019년에는 유니클로가 제작한 광고가 ‘위안부 조롱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슈가 된 바 있는데요. 문제가 된 광고에는 패션 컬렉터인 아이리스 압펠(98)과 패션 디자이너 케리스 로저스(13)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광고에는 실제 두 사람의 대화엔 없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는 자막이 생뚱맞게 등장했는데요. 80년 전인 1930년대 후반에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이 이뤄졌던 점을 미루어 볼 때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해 ‘일제 전범 피해자들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거센 항의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유니클로는 ‘문화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죠. 


유니클로는 처음 이 이슈가 대두되었을 때만 해도 이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광고를 유지하겠다고 했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광고를 삭제했습니다. 최초 해명 당시 소비자들의 비판과 문제 제기를 ‘루머’로 단정하는 등 잘못된 위기관리 사례를 보여주며, 당시 국내에서 한창 거세게 일고 있던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겹쳐 오히려 ‘유니클로 퇴출 운동’으로까지 번지게 만들었던 트리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Matteo Paganelli on Unsplash)

시대적으로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지 않기 위해 브랜드는 내보내는 모든 콘텐츠에 대해 필사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수성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타인의 상황에 대한 ‘공감’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앞서 유니클로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부족한 감수성에서 비롯된 캠페인 전략은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매출 하락과 인지도 추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 구성원들이 분노할 만한 도덕적, 사회적 이슈와 관련되어 있다면 더더욱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는 위안부 이슈가 그랬고, 2022년에는 전 세계가 발렌시아가의 행보에 분노를 표하고 있죠. 수정헌법 제1조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고 이를 지상 최대의 가치처럼 강조하는 미국에서조차 아동포르노와 같은 사안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즉, 사회적 합의가 어디까지 이루어져 있는지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것 또한 브랜드의 책임이라는 것이죠. 


특히 기술이 표준화되고 상품의 퀄리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온 최근의 경향을 고려할 때, 상품 간의 차별적 특성이 현저하게 줄어든 상황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ESG 등 가치 요소가 브랜드 마케팅에서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것 역시 유사한 이유 때문입니다. 

 ESG 개념도. 이제 브랜드는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출처: 전기신문)

사실 이 레터를 작성하는 지금까지도 과연 발렌시아가의 마케팅 담당자는 어떤 기분일까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광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검수하는 과정에서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부분이 큰 문제로 돌아왔던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담당자는 지금 아주 억울한 입장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런 ‘의도’가 없었고, 아주 우연의 일치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그렇지만, ‘과연 몰랐어도 괜찮은 걸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씁쓸한 뒷맛처럼 남아있습니다. 해당 캠페인을 담당했던 특정 담당자를 비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광고를 만들고 촬영하는 사람들도 모두 인간일진대, 그들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검수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발렌시아가와 같은 큰 규모의 브랜드에서 외부로 내보내는 콘텐츠에 대해 체계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이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  오늘의 콘텐츠 추천

발렌시아가 손절합니다 | 런업

에디터 <Zoe>의 코멘트
이번 사태에 대해 제가 제일 먼저 접했던 창구인 유튜버 '런업'의 콘텐츠를 추천해 드리며 레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발렌시아가를 사랑했던 그는 이슈가 생기자 마자 발렌시아가를 비판하는 콘텐츠를 빠르게 업로드하며 앞으로 이 브랜드의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소신을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발렌시아가를 '손절'하실 건가요, 아니면 앞으로도 여전히 이 브랜드를 '소비'하실 건가요? 패션업계를 이끄는 엘리트들이 과연 이 브랜드를 '용서'해 줄 것인지 (혹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인지) 역시 궁금해지네요. 그러나 여전히, 선택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 오늘의 레터가 좋았다면 커피값 후원하기
💌 오늘의 레터를 피드백해주세요! 
💜  어거스트 구독하 : 어거스트 구독 링크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
💌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구운김 • 식스틴 • Friday
Copyright © AUGUST All rights reserved. 수신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