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이 수엽을 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중앙역에 올라오니 솔아를 맞이하는 건 지독한 담배 연기였다. 7월의 베를린 하늘은 여름이 무색할 만큼 잿빛이었다. 얕게 부는 바람이 땀에 흥건히 젖은 솔아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솔아는 풀어진 눈동자에 생기를 모으고 베를린의 풍경 곳곳을 마음에 담았다. 뭐가 됐든, 뭐라도 되지 않으면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것 참…. 문다라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는데.”

 

솔아는 다라의 말을 떠올렸다. 베를린에 이미 여러 차례 발걸음했던 다라는 그곳을 고독한 도시라고 이야기했다. 얄미운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애써 마음에 담지 않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말을 건네며 살짝 올라갔던 다라의 입꼬리가 솔아의 뇌리에 아른거렸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일 테다. 솔아는 앞으로 펼쳐질 찰나의 순간을 온몸으로 헤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다라는 대학 동기였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묘했다. 서울대 첫 음악이론 강의에서 만난 다라의 표정은 5년이 지났는데도 다시 떠올리면 괘씸하다. 예고 동창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던 다라는 멀찍이 서있던 자신을 위아래로 훑더니, 쟤는 어느 선생님 제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농어촌 전형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린 것 같기도 한데, 서울대 콩쿠르 우승 특전으로 가산점을 받고 입학한 솔아는 퍽 억울할 뿐이었다.

 

“너 의대 다니는 애랑 사귄다며?”

 

먼저 다가온 건 다라였다. 솔아에게 같은 학교 의대에 재학 중인 애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였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도 성형외과 의사라며, 학과 동기 좀 소개해 달라고 얼마나 졸라 대던지. 질려 버린 솔아가 애인 한빈의 친한 친구와 소개팅 자리를 마련해 주자 그제야 살가워졌다. 짧은 만남을 갖긴 했지만, 3개월 만에 다라는 대차게 차였다. 마치 3년은 만난 사이처럼 식음을 전폐하며 눈물을 쥐어짜던 다라는 이내 행동을 바꾸어 틈만 나면 솔아 옆에 와 슬쩍 팔짱을 끼고 자신의 전 연인에 대한 안부를 캐물었다. 그러면서도 간헐적으로 빈정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솔아야 너 조심해. 의대 애들은 앞에서 보면 멀쩡한데, 뒤에서 보면 자신이 잘난 걸 너무 잘 알아서 여우 짓을 하는 교묘한 족속이래. 우리 아빠가 말해 줬어.”

 

다라는 사실상 솔아의 애인을 헐뜯는 언행을 쉽사리 쏟아 냈다. 그 날카로운 말들의 저의는 늦지 않은 시기에 꿰뚫을 수 있었다.

 

“나 지금 문다라 생각을 한 거야? 베를린까지 와서? 그러지 말자. 솔아야.”

 

먼 타지까지 와서 다라 생각을 하다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베를린 국가 장학생으로 선정이 되어 유학길에 오른 솔아는 이곳이 이방인에게 따듯한 도시이길 바랐다. 대학 진학을 위해 처음 갔던 서울은 소란스러웠다. 부모님이 보내 주는 용돈으로는 단칸방 월세만 내면 끝이었다. 너는 왜 이렇게 레슨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냐며 다라의 핀잔을 들을 만큼, 솔아는 저녁 일과를 어린 학생들과의 만남으로 빼곡히 채웠다. 창원에 있는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연인으로 발전한 한빈이 없었다면 아마 서울살이를 버텨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너는 뭐 그렇게 악착 같이 살아? 가끔 보면 좀 무서워.”

 

언젠가 다라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느냐 물었다. 너처럼 알록달록하게 살기엔 내 삶은 너무 무채색이라고 무심히 대답했다. 다라의 말들을 하나씩 돌아보다 보면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너랑 한빈이가 아무리 끈끈해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이한빈 딴 짓 안 하게 잘 관리해라.”

 

다라는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독한 말을 내뱉었다. 여기에 와서도 그 아이 때문에 굳이 마음 상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이제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머물 곳을 정하지 못한 솔아는 베를린 중앙역 근처에 있는 작은 한인 민박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끝에 잔뜩 힘을 주며 솔아는 거듭 혼잣말을 했다.

 

약해지지 말기.

타인과 비교하지 말기.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프런트에 선 솔아는 2인실이 마감됐다는 설명을 들은 후 약간의 좌절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1인실로 3일을 예약했다. 생각보다 1인실 비용이 저렴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베를린은 물가가 착하다더니, 아주 섹시한 도시일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방에 들어가 블라인드를 올리니 볕이 눈가에 내려앉았다. 밖과는 달리 포근한 온도로 채워진 방 안에 있으니 안도감이 찾아왔다. 

 

압축팩으로 꾹꾹 눌러 담은 옷가지 사이에서 택을 떼지 않은 샤넬 티셔츠가 나왔다. 다라가 유학 선물로 건네준 선물이었다. 얼마 전 유명 아이돌 멤버가 공항 패션 때 입은 옷이어서 바로 절판됐는데, 샤넬 VIP인 어머니가 셀러에게 요청해 특별히 구매한 거라고 했다.

 

솔아는 침대에 누워 다라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일거수일투족을 스토리에 분 단위로 올리는 다라였다. 미국으로 유학 간 다라는 명품 매장을 돌아다니고, 미슐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자주 보고, 곧 입학하게 될 줄리아드 음악원 앞에서 해맑게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을 옆으로 집어 던진 솔아는 구깃한 샤넬 티셔츠를 바라봤다. 노곤함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 것만 같아 몸을 일으켜 샤넬 티셔츠를 입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파리한 입술색이 거슬려 캐리어를 뒤져서 파우치를 찾았다. 틴트만 바르려다가 얼마 전 다라가 알려준 쿨톤 메이크업이 생각나 구부정하게 앉아 기억을 더듬으며 화장을 했다. 다라가 여러모로 세련된 사람인 건 맞았다. 화장한 자신이 대학 때 다라 모습과 좀 비슷한 것 같아 거울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솔아는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었다. 다라에게 자신의 사진 한 장과 함께 ‘베를린 잘 도착. 선물 고마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해야 할 게 산더미였다. 아직 독일어가 부족해 어학원도 알아봐야 했고, 극장 인턴십 프로그램도 접수해야 했다. 담당 교수에게 메일도 보내야 했지만, 솔아는 오늘만은 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켜 방 곳곳을 영상에 담았다. 대학 때부터 일상 기록용으로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에 브이로그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좋아요를 눌러 주는 건 한빈과 다라 정도였지만, 어차피 기록용이었다.

 

*

 

뉴욕의 7월은 화려했다. 맨해튼 길목의 가건물 레스토랑마다 사람이 북적였다. 울창한 센트럴파크에서 뛰노는 개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다라는 게슴츠레 눈을 떠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치는 찬란한 빛을 바라봤다. 잠에 들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예배를 드리고는 있지만 따분함에 하품이 절로 나왔다. 옆에 앉은 윤 여사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졸 수도 없었다. 뉴욕의 한인 교회는 찬양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어서 예배가 늘 늦게 끝났다. 휴대폰을 보니 아직 5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이 번잡한 도시에서 다라는 감금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걱정이 많은 부모님은 유학을 보낸 고명딸을 뉴욕 지인 집에 머물도록 했다. 어디를 나가더라도 어머니와 고교 동창인 윤 여사와 함께 움직여야 했고, 통근 시간은 저녁 6시였다. 집은 으리으리했지만 서울보다 제한된 모든 것들이 다라를 옭아매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는 윤 여사를 곁눈질로 슬쩍 본 다라는 휴대폰을 열어 솔아의 인스타그램을 살폈다. 자신이 선물한 샤넬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앙증맞게 묶은 뒤 찍은 사진을 보니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얘한테 이렇게 깜찍한 면도 있었다고?”

 

순간 다라의 눈에 100개가 넘게 달린 댓글이 눈에 들어와 화들짝 놀랐다.

 

- 언니, 착장 너무 귀여워요!

- 언니! 유튜브 보고 넘 재밌어서 인스타까지 방문했어요!

- 사용하신 블러셔 제품 정보 좀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 언니~ 샤넬 티셔츠 어떻게 구매하신 거예요?!ㅠㅠ 완전 절판이던데!!

 

솔아에게 이렇게 아는 동생이 많았나 싶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댓글을 단 이들의 인스타그램을 하나씩 눌러보던 중 대학 동기에게 DM이 왔다.

 

- ‘민솔아 브이로그 봤냠ㅋ 넌줄ㅋㅋ’

 

메시지를 읽고 재빠르게 솔아의 유튜브를 들어갔다. 솔아는 대학 때부터 연습이나 연주 영상, 대학 생활에 관한 브이로그를 종종 올렸다. 10명 남짓의 조회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는 걸 보면 끈기가 가상했다.

 

채널명은 ‘병아리 소프라노의 시크릿 공간’.

 

하루 전에 ‘서울대 졸업생의 베를린 유학 도전기’라는 영상이 게재됐다. 대학 때부터 매사에 분주한 솔아는 다라의 탐구 대상이었다. 영상에서 솔아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모습, 베를린에 도착해 처음으로 시나몬 롤을 구매하는 모습, 임시로 묵는 민박집을 소개하는 모습,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을 카메라에 찍는 모습 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자신이 선물한 샤넬 티셔츠를 입고, 자신이 알려준 메이크업을 하고 카메라에 찍힌 솔아의 모습은 어딘가 생경했다. 자세히 보니 대학 때 본인 스타일과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해서 몸이 찌릿찌릿 울렸다. 순간적으로 낯선 결핍이 다라의 심장을 스쳤다.

 

집에 돌아온 다라는 계속 두근거렸다. 홀린 것처럼 10분 분량의 솔아의 브이로그를 다섯 차례 반복 재생했다. 갑갑한 통제에 묶여 있는 자신과 다르게 어딘가 들떠 보이는 모습. 그 아이의 원래 성격으로는 어림도 없는 발랄한 분위기를 보자 마음 속 한구석이 시큰댔다.

 

솔아의 베를린 브이로그는 분 단위로 조회수가 100회씩은 올라가는 것 같았다. 무슨 알고리즘에 걸리면 가끔 이렇기도 한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민솔아가 이 정도일 리는 없었다. 짜증을 감추지 못한 다라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 왔다. 대중을 의식한 모양인지 솔아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공개로 변환해 두었다. 피드에 달린 댓글을 다시금 읽어 내려가다 눈에 거슬리는 이가 등장했다. 솔아의 연인인 한빈의 친구이자, 자신이 지독하게 매달렸던 문제적 그 사람이었다.

 

- 솔아는 베를린 가더니 얼굴 폈네? 한빈이는 완전 울상인데!

 

다라는 솔아를 처음 만났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도전하는 콩쿠르마다 우승을 거머쥐었던 다라였다.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나간 서울대 콩쿠르에서 처음으로 고등부 2등을 했다. 1등이 누군가 싶어 민솔아라는 이름을 계속 들여다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어느 시골 교회에서만 노래를 배웠던 아이라는 걸 들었을 때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가 나왔다.

 

생애 몇 가지만 조금 더 탐냈을 뿐인데 그게 과분했던 걸까. 처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것만 있었지, 노력하여 얻은 것은 늘 쓸쓸하게 흩어졌다. 이상하게 솔아는 그 몇 가지를 꽉 움켜쥐고 절대 놓지 않는다. 배알 꼬이게 말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다라는 휴대폰 카메라를 열고 방안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윤 여사의 취향이긴 하지만 핑크빛 가득한 공주풍 방이 렌즈에 들어오니 꽤 맘에 들었다.

 

*

 

- ‘서울대 졸업생의 베를린 유학 도전기’

- ‘솔아의 쿨톤 메이크업 비법 대공개’

- ‘베를린 슈타츠오퍼 극장 랜선 투어 함께해요’

- ‘베를린 음대 수업 첫날 풍경, 어려운 독일어!’

 

솔아의 유튜브 구독자는 한 달 만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올린 네 개의 영상 역시 조회수가 100만 뷰를 쉬이 넘겼다. 학기를 앞두고 영상을 편집할 시간이 없어서 잠시 채널을 닫으려고 할 때, 유명 콘텐츠 에이전시에서 계약을 맺자는 연락이 왔다. 영상을 찍어서 파일을 보내 주면 에이전시에서 편집을 도와주었다. 유튜브 반응이 지속적으로 오자 이내 촬영 감독까지 베를린으로 찾아 올 정도였다. 화장품이나 식품, 액세서리에 대한 리뷰를 짧게 해 주면 한 개에 천 만 원 이상의 수익이 따라 왔다. 다라가 선물한 샤넬 티셔츠 덕분인지, 명품 업체에서도 옷을 협찬해 주겠다며 줄지어 연락이 들어왔다. 소탈하고 진솔한 솔아의 모습에 팔로워들은 열광했다. 팔로워들의 나이는 가늠이 잘 안 됐지만, 대부분 솔아를 언니라고 칭했고, 솔아는 실체가 불분명한 그들을 솔랑이라고 불렀다.

 

베를린에서의 영상이 10개 정도가 쌓이자 솔아의 구독자는 150만이 됐고, 학교 연습실에서 한국가곡 ‘마중’을 부르는 영상을 올리자 구독자는 2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유명 가수의 히트곡을 커버해 부르면 외국인들의 댓글도 달렸다. 솔아가 굳이 베를린에서 방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에이전시에서 도시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아파트를 렌트해 주었다. 자존감은 높아져갔다. 창원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에게 넉넉한 용돈을 보내 드릴 수 있게 됐고, 어려운 형편으로 의대 공부를 하는 연인 한빈의 한 학기 등록금도 선물로 줄 수 있었다. 다음 커리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색할 틈도 없이 찍어야 하는 영상 콘텐츠가 범람했다.

 

“아, 실기 점수 또 떨어졌네….”

 

그러면서도 놓치는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틈틈이 연습했지만 실기 점수는 차차 내려갔고, 어렵게 기회를 잡은 극장 인턴십 프로그램도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배웠던 교수님들에게는 유튜브 활동을 자제하고 학업에 열중하면 어떻겠냐는 연락도 받았다. 대학 동기 중 몇 명이 자신을 흉본다는 얘기도 다라를 통해 종종 들었다.

 

솔아가 유튜브 구독자 200만 명을 기념하며 집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만드는 영상을 찍고 있던 무렵, 다라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4년마다 1번 씩 열리는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베를린에 오기 전 솔아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콩쿠르였다. 한국에서 우승 기념 리사이틀을 열 계획이라며 꼭 와 줄 수 있겠냐는 다라의 메시지를 보고도 솔아는 개의치 않았다. 마음이 이따금 따끔해질 때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다음 달에도 돈을 보내 드릴 수 있을지 확인하면 금방 기분이 괜찮아졌다.

 

언제나 추울 것 같았던 베를린에도 쨍한 여름이 찾아왔다. 처음 맞았던 쌀쌀함이 희미해질 정도로 청량한 여름이 얼굴을 들었다. 비행기 표를 보내 주겠다는 다라의 말을 정중히 거절하고, 무성한 여름 내내 유튜브로 팔로워들과 소통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

 

“아 진짜 얘 왜 이러지?”

 

다라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학업이 바쁘다며 한국 리사이틀에 못 온다고 한 솔아가 거의 3일 단위로 브이로그를 업로드했다.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 거리를 누비는 영상 속 솔아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느긋해 보였다. 이제는 자신보다 먼저 명품 신상을 몸에 걸쳤고, 얼마 전 생일에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가 꽃다발을 보낸 듯했다. 솔아의 커버 영상에 한 아이돌 가수가 ‘요정 같아요’라고 댓글을 달자 조회수는 절로 늘어났다.

 

다라가 우승한 벨기에 콩쿠르 결선 영상에는 고작 스무 개 정도의 댓글이 달렸다. 유튜브 구독자는 300명 안팎. 유명 해외 기획사에서 매니지먼트 계약을 물어 와도 기쁘지 않았다. 솔아는 유튜브 콘텐츠 회사랑 계약을 맺고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왜 자신에게는 대중 매체 쪽 연락은 오지 않을까 의구심이 생겼다. 주변 지인을 샅샅이 뒤져 능력 있는 개인 영상 프로듀서를 채용했는데도 유튜브 구독자는 영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따분했던 어느 날, 반응 없는 영상을 이렇게 올려 봤자 뭐하나 싶어 이제는 그만두기로 했다. 당분간 극장 오디션이나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자꾸만 솔아의 유튜브를 염탐하는 버릇은 고칠 수 없었다.

 

뜨거웠던 계절은 저물었다. 학기를 소화하고, 콩쿠르 우승 특전으로 주어진 몇 개의 투어 연주를 소화하고 나니 크리스마스 시즌이 성큼 찾아왔다. 운이 좋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주역 가수로 데뷔할 기회까지 거머쥔 다라였다. 질투가 파고들 틈이 없을 정도로 다라는 단단히 토양을 다지며 프로 소프라노로 걸어가는 첫 문을 활짝 열었다.

 

이런 자신을 보며 솔아도 분명 느끼는 게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뛰었는데 반 년 만에 솔아를 훨씬 앞섰다는 사실은 행복감을 줬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한국 케이블 채널에서는 지난해 인기가 있었던 연애 서바이벌 매칭 프로그램이 새 시즌을 시작했다. 여성 출연자에 솔아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안 다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동안 잠잠했던 고민에 젖어 들었다.

 

“둘이 헤어진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

 

연애 프로그램에 나가 보라고 먼저 제안한 건 한빈이었다. 섭외 연락이 왔을 때 솔아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 사실을 안 한빈은 자신과 교제하고 있는 건 비밀로 하고 나가도 괜찮다고 다정히 말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장거리를 이유로 헤어졌다고 얘기해 두겠다고 했다. 뭘 그렇게 철저하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자신을 연애 프로그램에 밀어넣나 싶어 내심 섭섭함이 찾아 올 정도였다. 한빈은 솔아를 잘 알고 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솔아는 이처럼 빛나는 색채감을 지녀본 적이 없었다. 늘 고단한 표정으로 타인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고, 단 한 번도 목청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지 않았다. 한 짐 덜어내면 새 짐을 들쳐 업고 어렵게 세상으로 내딛던 아이. 그리도 위태로워 보였던 솔아는 통장 잔고가 넉넉해지자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솔아가 그동안 결핍됐던 것이 무엇이었지 명확히 확인한 한빈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웃을 때 솔아의 눈꼬리는 곱게 휘었다. 그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한빈은 솔아의 연애 프로그램 출연도 쉽게 지지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빈에 대한 죄책감이 서려서, 솔아는 편한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기가 힘들었다. 일부러 자신에게 관심 없는 남성 출연자를 선택해 지고지순한 모습을 보여주니 그 모습이 또 대중의 심금을 울리고야 말았다. 한 여인의 애달픈 짝사랑에 함께 눈물짓던 대중은 망설임 없이 솔아의 유튜브를 검색했고 이는 구독으로 이어졌다. 평소 솔아를 따랐던 20대 뿐만 아니라, 30대 여성들까지 솔아에게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주요 잡지사는 물론 예능에서도 섭외 연락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웠던 솔아는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에 귀국하기로 했다. 어쩌면 다시는 공부를 이어갈 수 없겠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기회를 놓치는 건 더 미련한 것이었다.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왕 타이틀까지 쥐어진 솔아는 유튜버를 넘어 연예인으로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했다. 그 시기 발매한 한국가곡 녹음 앨범도 음원 플랫폼 상위권에 들며 솔아는 전성기에 들어섰다.

 

뮤지컬 업계에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솔아를 주역으로 캐스팅했다. 오페라 가수를 오랫동안 준비했던 솔아에게 뮤지컬 데뷔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솔아에게는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늘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시원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솔아는 뮤지컬 시장에서도 점차 몸값이 높아졌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자 한빈과의 관계도, 가족과의 관계도 모든 것이 평온했다. 흘러가는 모든 상황을 그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

 

“…실화야?”

 

다라는 참을 수가 없었다. 국내 오페라 첫 데뷔 무대였다. 시립 오페라단에서 유럽 유명 연출가를 데리고 와 대대적인 국내 초연 프로덕션을 제작하고 있었다. 워낙 까다로운 연출가인 만큼 모든 가수 캐스팅을 오디션으로 진행했다. 마침 한국에 머물고 있던 다라는 오디션에 참가했고, 이틀 후 주역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건 좀 아니지.”

 

자신이 B캐스팅이라는 건 얼마 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A캐스팅에서 자신과 똑같은 배역에 섭외된 이는 솔아였다. 처음 다라는 당혹감에 말을 잃었고, 조금 뒤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으며, 이후 분노에 찬 눈물이 흘러나왔다. 오페라에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은 적 없는 솔아가 어떻게 주역으로 캐스팅됐는지, 그것도 A팀에 들어가게 됐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연출가에게 메일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은 다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오페라단 사무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기획 님. 저 다라인데요. 제가 방금 기사 보고 다른 출연진들 리스트를 알게 됐거든요. 그런데 솔아… 아니. 제가 왜 B캐스팅으로 배정됐는지 연출 님이 설명을 좀 해 주셨을까요?”

“아, 다라 씨, 연출 님이 이번 프로덕션에 정부 예산이 많이 들어간 만큼, 티켓 파워에 신경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국내에서 민솔아 소프라노 인지도가 높아서 전략적으로 따로 캐스팅하신 거예요.”

“아니 그런데, 사실 지금 솔아가 소프라노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요? 거의 뮤지컬 활동만 하고 있는데….”

“네. 그런데 벌써 솔아 씨 공연 티켓은 다 매진됐거든요. 확실히 뮤지컬 배우여서 그런지 티켓 파워가 장난이 아니네요. 안 그래도 지금 B팀 티켓이 너무 안 팔려서 회차를 좀 줄이고, A팀 회차를 늘릴까 고민하던 중이에요.”

“네? 그런데 연출 님은 솔아가 노래하는 거 제대로 들어는 보셨다고 해요?”

“그럼요. 어릴 때 나간 서울대 콩쿠르 본선 무대부터 시작해 이후 여러 영상 모아서 드렸어요. 음색이 풍부하고 음역대가 넓어서 연출 님이 원하는 소리와 가깝다고 하던데요. 독일에서 전문 가수로 활동 안 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도 하셨어요.”

 

힘없이 전화를 끊은 다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어쩌면 벨기에 콩쿠르 1등도 솔아가 여유가 되어 나갈 수 있었다면 자신의 몫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슬픔이 스며들었다. 다라의 부모님은 캐스팅 비리로 언론에 폭로하겠다며 소리를 쳤다. 다라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솔아를 할퀴면 결국 생채기가 나는 쪽은 자신이었다. 거울을 본 다라는 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피고 입꼬리를 올렸다.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게 되니 한결 마음이 가뿐해 졌다.

 

*

 

오페라 기자 간담회 대기실 로비에서 솔아와 다라가 2년 만에 만남을 가졌다. 둘은 요란스럽지 않게 눈인사를 했고, 각자의 대기실에 들어가 메이크업을 고쳤다. 솔아의 팬들이 제작진들에게 돌린 간식을 먹으며 다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처음 보는 영상 감독이 솔아의 옆에서 밀착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극장 로비에 들어서는 모습, 연출가와 독일어로 대화하는 모습, 의상을 고르는 모습을 하나씩 영상에 담는 것 같았다. 솔아의 에이전시에서 브이로그 영상을 위해 따라 붙은 카메라인 듯했다. 다라는 이내 결심을 마치고 먹던 간식통의 뚜껑을 다시 예쁘게 재배치했다.

 

“솔아야, 뭐해?”

 

솔아는 대기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온 이가 다라여서 살짝 당혹감을 느꼈다. 영상 감독과 함께 극장 대기실 내부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촬영하던 중이었다. 다라는 문을 빼꼼 열고 얼굴을 들이 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디올로 치장한 다라가 걸친 모든 것들의 가격을 합치면 천 만 원이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솔아는 대학 때와 별 다를 게 없는 다라의 모습이 새삼 재미를 느꼈다.

 

“솔아야. 너 팬들께서 보내 주신 이 크로플 진짜 너무 맛있더라~ 어머 촬영 중이었네?”

 

다라는 솔아의 팔짱을 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카메라를 보고 있는 다라를 보며 솔아는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 짠한 무언가가 솔아의 감정을 덮쳤다. 대학 시절의 다라는 매사에 비호감이어도 어디서든 꾸밈없는 모습이 꽤 매력적이었다. 얻고 싶은 게 있어서 갈급한 다라의 모습을 처음 보았고, 안쓰러웠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눈치 빠른 영상 감독은 금방 상황을 파악한 듯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이 대학 동기라고 들었는데, 원래 사이가 좋았나 봐요.”

“솔랑이들, 안 그래도 제가 꼭 소개해 주고 싶은 친구였어요. 작년에 세계 3대 콩쿠르라고 불리는 벨기에 성악 콩쿠르에서 무려 한국인 최초로 1위를 한 자랑스러운 대학 동기인데요. 이번 오페라에 같은 역으로 출연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다라 네가 나보다 오페라 선배니까 이번에 잘 좀 부탁해~”

“야, 무슨 소리야. 민솔아 얘가 얼마나 대단했냐면요. 서울대 콩쿠르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보통 성악 전공하는 친구들은 거의 예고 출신이어서 웬만한 콩쿠르에서 미리 다 얼굴을 익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는 완전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방심했는데, 글쎄 바로 1등을 한 거예요. 그때 사실 저희 예고에서 걔 누구냐고 난리가 났었어요.”

 

솔아는 지금까지 다라가 고등부 콩쿠르에서 만났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대학 입학 때 농어촌 전형으로 들어온 거라고 소문을 낸 것이 아니었나. 다 알고도 그랬다는 사실에 솔아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묵직하게 붙인 다라의 긴 속눈썹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솔아는 입을 떼었다.

 

“내가 너 대학 때 소개팅도 해 주고 그랬잖아. 아, 오랜만에 너 보니까 옛날 생각난다.”

 

다라는 갑자기 아픈 곳을 찌르는 솔아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예전의 솔아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씰룩이는 영상 감독을 슬쩍 바라보곤 팔짱 낀 쪽에 더 힘을 주어 몸을 밀착시켰다.

 

“나 다음에 너희 집에 한 번 초대해 줘~ 너 브이로그에서 봤는데 한강뷰 진짜 예쁘더라!”

“근데 너희 집도 그 근처 아니야?”

“우리 집은 조금 더 낮은 층이잖아~”

 

*

 

- ‘벨기에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친구와 대기실에서 깜짝 조우!’

 

벌써 세 시간 째 다라는 침대에 누워서 솔아가 올린 브이로그 조회수가 올라가는 걸 지켜봤다. 순식간에 10만 조회수가 훌쩍 넘는 걸 보자 다라는 너무 기뻐서 베개를 끓어 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떤 댓글을 달까 고민되어 쓰고 지우는 걸 30분 넘게 반복하는 중이었다. 질척거리는 느낌이 들면 안 됐다. 그래도 조금 친근한 느낌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솔아의 팔로워들이 자신의 유튜브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다라는 짧은 댓글을 남기고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 곧 집에 놀러 갈게, my baby!♡

 

다라는 당분간 뉴욕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다. 서울의 밤이 이처럼 보드라운 적이 있었나 싶었다. 창가에 내려앉은 달빛이 다라의 깊은 상념을 거두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