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왕 감독의 신작,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는 하나의 소재로 20세기 아시아의 냉전 구도를 맥락화하는 역사적 감수성, 사건과 사실의 연대기적 구성에 구애받지 않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충만하다. 이 단편 영화는 1965년 미국 재무부가 아시아의 주요 수출품이던 “아시아 머리카락”, 즉 가발에 금수령을 내린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후 금수 대상이 중국과 북베트남, 북한산 “공산주의 머리카락”으로 한정되면서 남한이 가발 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홍콩과 광주를 비롯한 아시아의 도시와 역사를 다룬 참신한 작품들을 선보여 온 감독은 어느 가발에 씌인 여귀의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가공한다. 잘려 나간 여성의 신체는 상품이 되어 일본에서 싱가포르, 만주, 유럽, 중국, 한국, 미국을 떠돈다. 여귀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처럼 상품은 언제나 변형되고, 과거를 감추지만, 과거는 소멸하지 않고 재출몰한다. 식민의 흔적이자, 냉전의 최전선이며, 초국적 교류의 중심이었던 홍콩의 역사와 미래를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유쾌하고 통찰력 있는 우화가 있을까? 지난 3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CPH:DOX에서 뉴비전 상을 수상했다.
- DMZ Docs 강진석 프로그래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