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감독 정주리)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45 〈다음 소희〉
2월 22일 오늘의 큐 💡   
Q. 우리, 다음에 만날 수 있어? 🙌
님, 몸도 마음도 건강한 2월 보내고 계신가요? 🌞 어쩌면 2월은 1월과 3월 사이에서 들뜬 마음을 갖고 있는 달일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2023을 2022라고 잘못 쓰는 일도 적어지고📆 두꺼운 점퍼를 보관해둘지 말지🥼 아침마다 고민하기도 하죠. 3월에 새로 시작하는 새학년에 관한 일들부터 우리 주변에서 시작되는 무수히 많은 일들까지, 긍정과 기대의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요즘인 것 같아요. 🌈

〈다음 소희〉의 '소희' 역시 새로운 일들로 부푼 마음을 가지고 콜센터의 문을 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의 책상 앞으로 자리를 옮긴 '소희'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2017년 발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가 생전에 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하는데요. 사라지고 나서야 존재의 무게를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 '소희'가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인디즈의 글을 소개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이 외롭지 않도록 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소희〉와 〈재춘언니〉를 엮어주신 글도 함께 아래에 풀어봅니다. 3월 30일 〈재춘언니〉 추모상영회 소식도 함께 확인해보세요.

그럼 님이 보낼 노동의 시간이 쓸쓸하지 않기를, 다음번에도 우리가 건강한 일을 하며 만날 수 있기를! 인디즈 큐가 매일 응원하겠습니다. 💓

어떤 삶의 가능성

〈다음 소희〉

 

교실보다 작은 연습실에서 소희가 춤을 추고 있다. 몇 번이고 같은 부분에서 넘어지고,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가도 끈질기게 일어난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 앞에서 좌절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관객은 소희가 듣고 있는 음악을 알지 못한다.


소희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해서 대기업의 콜센터에 실습을 나가게 됐고 어려운 가정의 멋있는 딸이 됐다. 그 열심의 끝에서, 소희는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인생을 몇 줄의 문장으로 정의해버릴 때면 잊고 만다. 그 사람이 지나온 인생의 사소하고 당연한 풍경들. 노래방에 가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부당한 일에 어떻게 반응하고, 무슨 춤을 출 때 즐거워했는지.


우리가 누군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는 이런 것들도 포함된다. 그가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당당히 삶에 맞서왔는지. 그 죽음으로 인해 어떠한 삶의 가능성들까지 강제로 종결된 건지.

(...)

죽음을 '직접 선택'하기에 이르기까지 소희를 외면했던 수많은 어른. 그들 중 아무도 소희를 직접 떠민 사람은 없다. 영화 속 누군가의 말마따나, 말하지 않고도 서로를 압박하는 세상에서 '재수 없게' 밀려나 죽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진정한 비극은 거기에 있다. 영화는 현실을 뻔할 정도로 닮았다. 구조에 의한 죽음이라는 말, 막을 수 있었다는 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말이 재수 없을 만큼 흔하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상상해본다. 어쩌면 소희는 그 노래로 연습실 식구들과 무대에 섰을 수도 있다. 어쩌면 월급을 모아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고, 친구 준희에게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다며 기분을 내봤을 수도 있다. 소희는 뭘 하고 싶었을까? 이 가능성을 잊지 않는 것이 희망의 시작이다. 스크린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다음 소희가 있다. 나는 무력하지만, 영화는 무력하지 않다. 그것을 체감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영화관에 가야 한다.


인디즈 김진하

〈다음 소희〉 감독 정주리|138분|드라마|15세이상관람가


“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다음 소희'말고, '다음 유진'이 되어보자고 🙋‍♀️🙋‍♂️

서로에게 접속할 수 있는 힘

〈다음 소희〉와 〈재춘언니〉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각각 특성화고 실습생 소희와 그의 죽음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찾는 형사 유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둘은 소희가 좋아하던 춤 연습실에서 한 번 스쳐 만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소희와 유진은 다른 이유로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지 소희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으며 유진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형사라는 직업을 가져서만이 아니다. 그보다도 둘은 현대 사회의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인내’를 갖추지 못한 결핍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소희는 식당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는 친구를 비난하는 옆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분노를 표출한다.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콜센터에서도 잔업을 하면서까지 일했지만 그만큼 인센티브가 돌아오지 않자 팀장에게 달려가 항의한다. 부당한 언행을 일삼는 팀장에게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유진 또한 끝난 사건을 괜히 왜 들추느냐는 상사의 말에 저항하고 노동청에 찾아가 소희와 같은 아이들이 왜 이런 노동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 책임을 묻는다. 모종의 이유로 좌천되어 지방에 내려와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유진의 불 같은 성격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렇게 소희와 유진은 누구보다도 불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런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들이다. 소희는 친구 준희 대신 화내고 공장에서 일하는 태준 오빠의 힘듦을 보고 곁에 있어주려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유진은 그런 소희와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지만 소희를 이해하는 인물이다. 소희의 선생님도, 회사 임직원들도, 행정 직원도, 그 누구도 소희를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취업률을 높여주는 수치 혹은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있을 뿐. 아무도 소희가 실제로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책임을 돌리기에만 급급한 사람들과 달리 유진은 소희에게 벌어진 사건의 행간을 읽고 전말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소희가 즐겁게 추는 춤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유진은 이토록 쉽게 소희에게 접속해버린다. 

2022년 12월 30일, 우리는 또 하나의 죽음을 맞이했다. 3월에 개봉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임재춘을 다룬 다큐멘터리 〈재춘언니〉는 13년 간의 투쟁을 이어오다 긴 싸움을 끝내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한 시민이자 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외롭고 무의미할 것만 같은 오랜 시간 속에서 임재춘과 그의 동료들은 서로를 챙기고 날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며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 한다. 농성을 이어가는 해고 노동자의 삶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들과 마찬가지로 계속 변하고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단순히 비극적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죽음 이후 우리에게는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힌다. 노동자들은 왜 자꾸만 죽을 수밖에 없는 걸까. 그들은 왜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수밖에 없는가. 어떻게 해야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가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의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 〈재춘언니〉는 이제는 우리가 유진처럼 탐정이 되어 이들의 죽음을 이야기할 차례라고 말하는 듯하다. 진실을 쫓는 탐정이 되어 화를 내고 분노하며 왜 자꾸 사람들이 죽어가는지에 대해 파헤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에겐 소희와 유진이 가진 바로 그 ‘결핍’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우리는 유진이 소희의 행적을 따라가며 소희에게 빠르게 접속한 것처럼, 소희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유진의 춤사위에 미소지었던 것처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다 고립되는 사람들이 이대로 지치지 않도록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건네 줄 힘을 길러야 한다. 다음 소희나 다음 재춘언니가 아닌, 다음 유진이 될 힘을 말이다.


인디즈 김소정


〈재춘언니〉 감독 이수정|97분|다큐멘터리|12세이상관람가


“나는 대한민국에서 기타만 30년 동안 만든 기타 기능공이다.”

기타 공장에서 30년 일해온 ‘재춘’은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는다. 앞에 나서기를 싫어했던 그는 연극 무대에 서고, 일인 시위도 하게 된다.
두 딸의 아버지인 그는 자신의 삶을 박살낸 사장의 사과를 받고 가족과의 시간을 되찾고 싶다.
몇 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투쟁이 10년을 넘어가고 투쟁을 그만둘 수도, 계속하기도 힘들던 무렵 재춘은 또다시 새로운 것을 감행한다.



〈재춘언니〉 추모상영회 안내

작년 말 세상을 안타깝게 떠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故임재춘 님을 기리며 그의 일생을 추억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재춘언니>의 개봉 일주년에 가깝기도 한 3월 말, 인디스페이스에서 이수정 감독, 정윤희 작가와 함께 '재춘'언니를 스크린에서 만나보세요.

  • 일시│2023. 3. 30(목) 19:00 <재춘언니> 상영 후 인디토크 진행
  • 장소│인디스페이스
  • 참석│이수정 감독, 정윤희 작가 * 참석자는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정주리 & 배두나 콤비의 전작 살펴보기 🎬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배두나 배우의 첫 만남은 바야흐로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외딴 바닷가 마을의 상처 입은 소녀 '도희'🙍‍♀️를 보살피는 마을 파출소장 '영남'🚓의 이야기, 〈도희야〉에서 배두나 배우는 '영남'역으로 참여했는데요. 2014년 5월 개봉한 〈도희야〉는 국내외 유수 영화제들에서 수상하고 그 해의 눈여겨 볼 작품으로 남았지요. 차가운 세상을 향한 냉철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담은 정주리 감독의 영화 〈도희야〉, 아직 못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에 관람 어떠신가요?

〈도희야〉 감독 정주리|120분|드라마|2014


빠져나갈 길 없는 그곳에서, 친 엄마가 도망간 후 의붓아버지 용하와 할머니로부터 학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도희 앞에 또 다른 상처를 안고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된 영남이 나타난다.


도희를 보호해주는 영남, 하지만 도희는 영남과 헤어져야 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온 세상인 영남을 지키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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