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노릇은 필수!
October 17,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29
집사

저는 식물 덕후이고 큰누이는 차(茶) 덕후입니다. 그 덕에 저도 보이차를 띄엄띄엄 마셔왔습니다. 어느 날, 한참을 잊고 있다가 추운 겨울이 되니 다시 보이차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누이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는 염치 없이 보이차 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누이는 그러마 하고는 고급스러운 자사호에 30년 묵은 보이차까지 바리바리 싸서 보내왔습니다. 보내온 보이차를 마셔보니 역시 저 같은 ‘막입’에게도 제법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보이차와 식물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묵은둥이가 가치 있다는 것이지요. 식물은 오래될수록 기품이 있고, 보이차는 오래 묵을수록 풍미가 깊습니다.


보이차를 우리는 다구를 자사호(紫沙壺)라고 합니다. 누이가 보내온 자사호는 ‘서시호(西施壺)’로 불린다고 했습니다. 자사호의 모양이 중국 고대의 4대 미녀 중 한 명인 서시(西施)의 가슴을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누이는 손편지에 “이 자사호를 아이 다루듯 잘 닦고 길들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아, 주전자도 아이 다루듯이 해야 하는구나.’ 


식물 덕후만 집사인줄 알았는데, 차 덕후도 집사 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덕후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군요. 분야를 막론하고 집사 노릇을 할 때야 비로소 덕후로 인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카메라 덕후는 카메라 봇짐을 산소통처럼 여겨야 하고, 자동차 덕후는 쉼없이 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 하며, 물생활 덕후는 꿈속에서도 환수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덕질이란 나의 즐거움을 위한 일이지만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괴로움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요.


아피스토 드림  

정식출간판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처음 식물>의 북펀딩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서점 정식 출간판은 2023년 10월 23일부터
전국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11월에는 출간 기념 북토크와 몇몇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감사한 마음 담아 이후 행사도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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