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공간이 나를 말할 때

한바탕 소란을 잠재우며

님은 그런 날 있나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권태롭게 느껴질 때, 내가 속한 공간이 비좁게 느껴질 때 말이에요. 여느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잔뜩 화난 얼굴을 한 주인공이 책상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온 힘을 다해 쓸어버리는 장면. 현실에서 그렇게 한다면 잠시야 후련할지 모르지만, 무너진 물건들의 뒤처리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까지 나의 몫으로 돌아오지요(웃음). 그럴 때는 치솟는 충동 대신 ‘청소’라는 처방을 내려주세요. 청소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여백이 생기도록 정리하는 거예요. 또렷한 목적을 따라 수북한 옷가지를 접고 또 접고, 수많은 잡동사니를 넣고 또 넣다 보면 마음을 소란스레 만들던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 뾰족함을 감춘답니다. 몸이 머무는 자리의 여백은 감정이 머무는 자리의 여백으로 이어지니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심신을 가다듬으며 마음에 길을 낸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과 일러스트레이터 코피루왁의 이야기를 다시금 들춰봅니다.  님, 함께 마음의 소란을 잠재워 볼까요?

08.31.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머무는 공간이 나를 말할 때

09.14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10.05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책에 실리지 못한, 숨겨진 어라운드만의 이야기를 전해요.

처음엔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고양이들이 대화를 마치고 나니 책장 한 칸에 걸터앉아 가만히 눈 맞춤을 해온다. “시루, 자루랑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나요?” 그의 요청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재민 디자이너는 본인을 ‘아빠’라고 칭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잘한다고, 예쁘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에서 쏟아지던 건 총천연색 사랑이었다. 이 집에 가득한 모든 물건에 사연이 있다는 그. 아마 이 모든 기록에 시루와 자루가 함께하며 길이길이 사랑이란 흔적이 남을 테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

청소는 어쩌면 잘 쉬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소모된 무언가를 다시 채우는 과정이겠죠. 그런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니까 몸의 충전만이 아니라 마음의 정화도 필요해요.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고양이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에너지를 청소한다.’고요. 저희 집에는 고양이도 둘이나 있으니까 빠르고 효과적인 정화를 기대할 수도 있겠어요(웃음). 아무튼 쉰다는 건 좀더 나은 상태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쉬는 걸 행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언하긴 어렵지만 저는 행동으로 간주하고 싶어요. 극도로 심하게 체력을 소모하여 꼼짝도 못 하고 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우리는 쉬면서 먹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지내잖아요. 쉬는 데도 각자의 의지나 취향이 어느 정도는 담겨 있는 거 같아요.

 

맞아요. 누군가는 움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쉰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요.

그렇죠. 다시 MBTI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INFJ 특징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거예요. 제가 정말 그렇거든요. 저에게 휴식은 온전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에요. 남들이랑 있을 땐 쉴 틈 없이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마치 중국의 변검술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간혹 있어요.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휴식은 역시 시루, 자루랑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에요. 밖에 있으면 어쨌든 제자리는 집이니까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집에 있으면 일하고 있더라도 압박이 없어서 마음이 편해요. 왜 밖에 있으면 마음이 불편할까 생각해 봤는데 이것도 역시 고양이들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없는 사이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어서요.

 

모든 질문이 시루, 자루로 돌아오네요. 고양이가 삶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나 봐요.

그럼요. 고양이들이 없던 때랑 지금은 확실히 달라요.

 

내 공간에 누군가 들어온다는 건 세계가 달라지는 일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공간이 사람을 대변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요. 이 집이 어떤 부분에서 나를 설명한다고 생각하세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음… 일단 이 집엔 고양이도 있지만 사람은 저 혼자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저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동네나 집을 고른 것부터 시작해서 공간을 이룬 소재들이라든가…. 원래 이 집에 들어올 땐 벽도 합판을 치고 페인트칠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공사여서 평범하게 벽지를 발라 작업했어요. 하다못해 이런 사소한 사실도 제 경제 상황이나 취향 같은 부분들을 설명하고 있겠지요. 이 안에 있는 물건도 전부 제가 고르고, 사고, 고쳐가며 쓰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요. 결국 아주 작은 것까지 모든 게 저를 설명하는 거죠.

 

많은 물건에서 일관된 취향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겠군요.

물건이라는 건 어찌 보면 모두 사람의 역사예요. 이 집엔 제가 산 물건도 많지만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도 많아요. 저는 물건을 잘 안 버리는 편이거든요. 이건 매우 어렵게 구한 물건이고, 저건 선물 받은 거고, 또 어떤 건 할아버지의 유품이고…. 모든 물건에는 크고 작은 기억이 묻어 있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버릴 수가 없죠. 망가지거나 쓸 수 없는 것들 조차도요. 그렇게 하나하나 공간 위에 일기를 쓰듯, 기억과 사연들도 함께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 위에 먼지도 쌓이고 다시 청소하고 그러면서 지내는 거죠. 지금 막 생각해 낸 말인데 집은 ‘물건으로 쓴 일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는 경기도 안산이다. 일러준 주소로 찾아가니 오래되었지만 견고한 아파트가 보인다. 더듬더듬 단지 안을 헤매다 초인종을 누르자 “네!” 한 음절과 함께 문이 열린다. 부엌을 둘러싼 하얀 타일, 색을 맞춘 듯 새하얀 싱크대, 빈티지한 색감의 패브릭, 오직 침대만 놓인 간결한 침실… 음료를 담아 건넨 유리컵까지 마음에 들지 아니한 것이 없다. 못생긴 작업 테이블 하나 없이 일과 생활을 모두 품고 있는 이 집. 저기 작게 웅크린 게 고양이라면, 이건 정말 좋지 아니한가!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송정은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데는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영향이 클 텐데, 요즘 청소 일은 어때요?

어느덧 청소 노동자로 살아온 지 7년 차가 되었어요. 이제는 반사적으로 일하는 정도가 됐죠. 왜, 계속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생각 없이 하게 되잖아요. 거의 그 수준까지 왔죠. 제가 몸 쓰는 걸 좋아하고 경제적으로도 좋은 수입원이어서 청소 일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종종 매너리즘을 느껴서 지루할 때도 있어요. 제가 기계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요. 최근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끝은 늘 청소 일로 돌아와요. 여전히 저에겐 좋은 직업인 데다가 엄마랑 하고 있어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거든요.

 

내 집을 청소할 때랑 다른 점도 있나요?

가정집은 기본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잡다한 물건이 많아요. 저는 주로 학원이나 회사 같은 큰 건물을 청소하고 있는데 보통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어서 개인 물품이 거의 없어요. 집에선 작은 것들을 조심조심 조금씩 치워나가는 느낌이라면 일터에선 팍팍 치우고 정리하는 느낌이죠. 저는 일이 아니더라도 청소를 좋아해요. 청소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라 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정리하고 청소하는 걸 즐기거든요.

 

저희 에디터 중에서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스트레스 받으면 대청소하고, 일하다 말고 “빨리 집에 가서 빨래하고 싶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이해가 잘 안 돼요(웃음).

아휴, 저는 그 마음 알아요, 이해돼요. 치우고 나면 기분이 얼마나 좋아지는데요.

 

깨끗해지는 걸 보는 게 좋은 거예요?

정리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아요. 더러운 공간이 제 손을 스치면서 깨끗해진다는 거.

 

남이 청소하는 걸 봐도 좋아요?

남의 집은 더럽건 말건 크게 신경을 안 써요. 남보단 제가 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 깨끗해지는 과정과 깨끗한 상태도 좋고, 그걸 제가 해서 더 좋고. 아, 이렇게 말하니까 약간 청소변태 같네요(웃음).

 

청소 노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한번은 영어 학원을 청소한 적이 있는데 교실이 여러 개인공간이었어요. 아마 그날이 밸런타인데이였던 것 같은데, 불을 켜고 들어갔더니 칠판에 메시지가 써 있더라고요. “얼굴은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항상 깨끗하게 청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옆엔 초콜릿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순간 기분이 무지 좋았어요. 사실 청소 노동자는 ‘돈 주고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부분은 청소 노동자까지 신경 쓰진 않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챙겨 주는 분을 만나니 대면한 게 아닌데도 너무 감사했죠.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더라고요.

머무는 공간을 쓸고 닦으며 기운을 차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엿보았어요. 그런데도 정리가 필요한 잡동사니에 손이 뻗어지지 않는다면, 노래의 힘을 살짝 빌려볼까요?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은 눈길 가는 대로 꺼낸 음반들로부터 얻은 단상을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 책으로 펴냈어요.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詠一의 ‘君は天然色(그대는 천연색), Niteflyte ‘If You Want It’ 등 기분 좋은 노동요를 골라주었답니다. 여기에 어라운드 사람들이 고른 노래 몇 곡도 더해볼게요. 흘러가는 노랫말을 따라 마음이 내킨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어보세요. 새바람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을 만끽하면서요.

🎧 Playlist | 청소할 때 듣는 노래

오지은과 늑대들 ‘마음맞이 대청소’

브로콜리너마저 ‘바른생활’

이상은 ‘비밀의 화원’

요조 ‘나의 다짐!’

Trent Reznor&Atticus Ross ‘(You Made It Feel Like) Home’

LANY ‘Dancing In The Kitchen’

까데호CADEJO ‘Vanessa’

LUCKY TAPES ‘MOOD’

권진아 Fly Away

GC ‘Breeze(Instrumenral)

AROUND Subscribe

어라운드는 언제나 지금, 여기서 주변을 살피며 훗날 돌아보아도 귀하게 느껴질 이야기를 수집합니다. 한 시절 반짝 빛나기보다 은은한 빛을 오래 품고 있을 이야기에 귀 기울여요. 다정한 시선으로 주변과 눈 맞추는 어라운드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매거진 정기구독으로 우리의 보통날에 알알이 새겨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AROUND Subscribe 1년 정기구독

한 번의 결제로 일 년간 여섯 권의 《AROUND》를 음미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짝수 달마다 어라운드의 매거진과 다양한 혜택을 품에 안겨드려요. 첫 구독이라면, 맞닿은 연에 기뻐하는 마음으로 《AROUND》 과월호 한 권도 선물할게요. 어라운드가 소중히 길어 올린 자그마한 가치들을 만나보세요.

AROUND Subscribe 격월 정기구독

두 달에 한 번, 결제를 통해 최신 호 《AROUND》를 빠르게 만나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어라운드의 이야기가 1년 정기구독보다 가벼운 금액으로, 개별 구매보다 풍성한 혜택을 안고 도착합니다. 매거진과 함께 익숙하게 오가던 장소에서 낯선 시선을 발견하고, 소소한 물건에서 의미를 찾아보세요.

연일 이어진 비 소식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듯 해요. 도무지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도 슬금슬금 우리의 언저리를 서성이나 봅니다. 새로운 계절의 기색에 몸과 마음이 탈 나지 않도록 다독여 주시길 바라며 이번 레터를 마무리합니다. 9월의 허리쯤 도착할 다음 뉴스레터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취향을 담뿍 모아 가져올게요. 하루 중 한가로운 찰나를 어라운드 뉴스레터로 채워주세요. 그럼, 다다음주 목요일에 만나요!

‘수집가들(My Favorite Things)’을 주제로 한 《AROUND》 90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영감이 시작되는 작은 상자 ‘AROUND Box’.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를 틀림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떠올리길 바라며, 8월에는 ‘My Favorite Things’를 주제로 찾아왔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향유할 때 느끼는 안온함을 곱씹으며 어라운드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보세요. 매월 다른 주제를 담는 AROUND Box는 어라운드를 만들고 말하는 사람들의 영감을 모아 도착합니다.

어라운드에서 함께 마음을 나눌 동료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지원을 반가움 한껏 모아 맞이할 테니

9월 3일까지 문 두드려 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News를 확인해 주세요.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매거진 《AROUND》 편집팀,
‘경력 에디터’

어라운드를 사랑하는 독자분들의 일상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온라인 구독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마련했습니다.  ‘AROUND Club’에 가입하여 정기적으로 우리의 문장들을 만나보세요. 격월마다 어라운드의 시선이 담긴 콘텐츠를 문 앞까지 배송해 드립니다.

•《AROUND》 전 호의 모든 기사 열람
가족 매거진 《wee》, 어라운드가 함께하는 브랜드 매거진 열람
매거진에는 없는 비하인드 컷 감상
• 지난 뉴스레터 콘텐츠를 한 번에 감상
• 북마크 기능으로 나만의 페이지 소장
• 원하는 기사와 인사이트를 검색

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또 다른 콘텐츠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넓혀볼게요.

당신의 주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2023 AROUND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