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어린이의 최애 시리즈가 「스타워즈」가 되기 이전에, 「해리포터」도 「반지의 제왕」도 아성을 허물지 못하는 대단한 시리즈가 있었으니, 바로바로 「바다탐험대 옥토넛」입니다. 8인의 대원이 바다를 탐험하며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연구하는 옴니버스식 시리즈인데, 각각의 캐릭터가 매우 전형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에요. 그 가운데 탐험보다 '연구, 공부'에 집중하는 캐릭터가 있었으니, 해달 '셸링턴'입니다. 점잖고 유순한 성품에 약간은 어눌한 목소리를 지닌 그는 탐험선 운전에는 영 소질이 없고 거의 몸치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여름 휴가를 앞둔 어느 날, 대원들이 서핑보드며 래시가드를 챙길 때 셸링턴은 그 어눌하고 순딩순딩한 목소리로 콧노래를 불러요.


"한 권만 더, 한 권만 더~"

(트롤리가 닫히지 않는데도) "아직 괜찮아~~ 한 권만 더~~"

영화
타르(Tar) 
감독 로드 필드 | 주연 케이트 블란쳇
🦻팔랑

각주를 통해 두어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마티의 첫 책은 브루터 발터의 말러 평전이었습니다. 제목에 들어 있는 '사랑과 죽음'이야 말러의 교향곡 전체에 흐르는 주제이자 근원이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데, 1판 표지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초판 표지는 세기말 빈의 타이포그래피에서 착안했습니다. (전혀 안 비슷하다고 느끼실 수도...😅) 마티에서는 『구스타프 말러』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을 출간했었고, 포노출판사에서 '거장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되었어요.

무튼, 「타르」는 번스타인을 흠모하는 리디아 타르가 마침내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으로 취임해 말러 전곡 녹음 완성을 눈앞에 둔 시기의 짧은 기간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 한 줄의 소개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실제 줄거리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지 영화를 보시면 압니다. 어떤 검색도 하지 마시고 그냥 보세요.🤐)


제 평생에 음악 영화를 꼽으라면(어린 시절의 추억 「사운드 오므 뮤직」 빼고) 「마지막 사중주」였는데, 대번에 바뀌었습니다. 어제부터 「타르」입니다.

한 장면도, 한 문장도 딴 짓을 하면 안 됩니다. 떨어진 팝콘 주을 새도 없습니다. 집에서 관람하기 좋은 영화는 아니지요, 자꾸 움직이게 되니까. 엉덩이 뗄 때 일시정지 누르세요. 주옥같은 대사들이 쏟아져서 메모장에 적곤 했는데, 박장대소와 허탈을 남기는 한 문장은 뇌리에 박혔습니다. “자네의 영혼 설계자는 소셜미디어인 것 같군!”

번스타인이 청소년음악회에서 실황 강의를 하는 오래된 비디오 필름이 영화 막바지에 등장합니다. 타르의 모든 것이 허물어진 직후입니다.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번스타인, 말러, MTT, 푸르트벵글러, 제임스 레바인까지, 알고 보면 재미가 백 배 이상 부풀어오르는 이 영화는 캔슬 컬처와 젠더 이슈, 비장한 권력욕과 비참한 굴욕,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의 숭고, 그렇습니다, 음악의 숭고를 다룹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정확히 인식하나 비윤리적인 사생활로 포디움에 오른 온통 모순적인 이 인물이 명쾌하게 제자를 비판하며, 관람자에게 질문합니다. “음악을, 예술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탁월한 예술적 성취 앞에서 시대의 윤리를 어찌할 텐가?” 

「타르」는 치밀하게 우아하고, 미학적인 동시에 위트 넘치게 씌어진 한 권의 평전과도 같습니다. 
 
호들갑스럽게 매긴 별점은 4.5인데, 0.5가 어째서 빠졌는가. 더할나위없이 빼어난, 이보다 더 '타르'일 수는 없어 보이는 케이트 블란쳇 때문입니다. 엄청난 대사들의 파도 속에서 타르 이외에 건져올려진 조연이 없어서입니다. 그들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과 각본 모두 굉장합니다. 두어 차례 등장한 가상인물(은퇴한 베를린 필의 상임)조차 인상적이에요(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이 혼재되어 있어 그걸 알아보는 즐거움이 또 백만배). 또 영상은 어떻고요. 절제된 구도가 차가운 동시에 우아하고, 우스운 동시에 연극적입니다(특히 개와 악어 씬). 다만, 케이트 블란쳇이 너무너무 차고 넘쳐요. 단 한 장면도 '타르'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없을 정도로. 이 배우는, 아… 한숨만… 
음반
토마 방갈테르의 『신화』
🔈모베

토마 방갈테르(Thomas Bangalter)라는 이름이 낯설 수 있지만, 전혀 모르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멤버 중 바이저 부분이 튀어나온 헬멧을 쓴 바로 그 분입니다.
EDM, 하우스, 전자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온 다프트 펑크가 2021년 해체한 뒤, 토마 방갈테르가 발매한 첫 번째 솔로 앨범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전에 하던 음악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오케스트라 & 발레 음악’입니다. 하우스나 발레나 어차피 다 같은 춤곡이고, 전자기기로 합성하든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든 그리 큰 차이가 아니라는 걸까요?

광폭의 행보가 놀랍습니다. 음반은 시디와 엘피 동시에 발매되었습니다. 앨범 커버는 1세기 로마 빌라 벽에 그려진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로 신화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정작 부클릿에는 크레딧 이외에는 어떤 정보도 없습니다. 왜 갑자기 발레 음악을 작곡했는지, 발레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등을 빼곡하게 구구절절 설명할 법도 한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선입견 없이 들어보라는 권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맹 뒤마가 지휘하는 보르도 아키텐 국립 오케스트라의 연주인데, 하이파이 시스템으로 볼륨을 높이면 귀의 쾌락을 끌어올릴 수 있는 녹음입니다. 하세요. 
 

더그 살라티의 『핫 도그』

🌱죽순


“알라딘에서 ‘핫도그’가 왔어.”

“응? 서점에서 뭐가 와?”

“핫도그? 먹는 거?”


마티 식구들의 뇌가 더위에 잠식당한 같습니다.🥵 여러분은 아시죠, ‘핫도그 『핫 도그』라는 것을요.


동네서점 특별 큐레이션 주제가 대부분여름 텐데요, 책이 마땅히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팔트 위에서 헥헥대는 다리 짧은 강아지의 애환을 느껴봐야 해요! 지친 반려견을 안고 냉큼 바다로 향한 반려인의 추진력을 본받아야 한다고요!


귀를 팔랑거리며 시원-하게 내달리는 강아지에게 이끌려 저도 휴가를 향해 달려가 보려 합니다.

 
발데사르 카스틸리오네, 『궁정론』
🔈모베

카스틸리오네라는 르네상스 시기의 정치인, 외교관이 쓴 책입니다. 1528년 베네치아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세기를 뛰어넘는 위대한 이인자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비되는 궁정 처세술의 바이블”이라고 표지에 적혀 있네요. 뒤늦게 처세술을 익히려 이 책을 고른 것은 아니고요, 르네상스 당대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전성기 르네상스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로 넘어가는 시기, 그러니까 완벽한 이상을 추구한 르네상스가 빨리 저물고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시기로 바뀌던 무렵의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습니다.

책의 무대는 (제 여행 버킷리스트 1순위인) 우르비노(Urbino)입니다. 탁월한 르네상스 건축 역사가 타푸리는 궁정인들이 연설문을 쓰면서 고대 로마의 문장을 선택하는 것을 건축가들이 건축 요소를 선택하는 것과 나란히 비교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이용해 르네상스의 문화를 빚어내는 건 연설이나 건축이 다르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완벽한 모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궁정인의 처세가 그런 것 아닐까요? 변치 않는 모델을 따르기보다 시간과 장소에 적합한 임기응변. 1500년 언저리 이탈리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책입니다. 한국어판은 영어를 번역한 중역판입니다. 언젠가 르네상스 이탈리아어 전문가의 새 번역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팔랑

여름 휴가에 걸맞지 않는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가난, 폭력, 차별 등 '왜 이렇게밖에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가'로 파고들게 되는 문제들에 비하면 죽음, 특히 (거의 모든 자살이 결국 타살인 현실에서) 안락사는 평범하고 제법 온기까지 느껴지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 신간은 그간의 책들에 비해 디그니타스를 좀더 상세하게 묘사해주어, 또 그 일이 지난 후 가족이 치르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안락사 찬성론자여서 관련 책들이 나오면 대부분 읽어요. 조력자살(요즘은 '동행자살'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고 해요)을 실제로 수행하는 의사의 경험담도 도움이 되었지만, 형제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전체의 슬픔과 수용의 과정을 쓴 책도 의미가 있었지만, 『사랑을 담아』에 가장 공감했습니다.

제일 가까운 인생의 파트너로서 '여전히 자신인 채로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저자는 파트너의 자살을 돕습니다. 수백 만 번의 검색과 연락, 미국 내에서 가능한지 여부와 전문의들과의 상담, 섣불리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강렬한 체험' 같은 단어로 사유화하지 않으며 미묘하고 복잡한 채로,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는 과정을 결국 혼자서 질서와 순서를 찾아 정해 나가며 파트너의 죽음을 돕습니다.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48시간 이내'라는 광고 카피가 틀리지는 않으나, 알츠하이머는 진단 이전에 이미 많은 일상을, '자신이 아닌 자신'을 단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경험시키기에 말도 안 되게 예상 밖의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은 바가 있다면, 사람이 사람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재고입니다.

저자는 디그니타스의 강력하고 유일한 기준을 '분별력'으로 적습니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분별력'있게 판단하고 선택한 것인가가 승인의 관건입니다. 저는 이 단어가 그간 안락사 논쟁에서 사용하던 "자유 의지"와는 조금 다르게, 더 명확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분별력'이 나를 나로서 인정하며 세상에서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인지 단위가 아닐까 싶었어요.

분별력. 원서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discernment일 거라 짐작하는데, 아무래도 영어의 쓰임과 한국어의 용례가 좀 다릅니다. '사물과 상황을 분별, 구분하는 능력'이라는 영어의 사전적 뜻에서 넘어서 한국어에서는 세상 물정을 알고 이치를 깨닫고 판단하는 능력까지를 아우르는 듯합니다. "그이의 분별력을 믿어." 같은 문장처럼 말이죠. 제 기준에서 '인지의 기본 단위로서의 분별력'은 한국에서의 쓰임에 더 가깝습니다.


아무튼, 정신병력, 우울증, 자살 충동 등은 탈락의 제일원인입니다. 저자는 파트너의 죽음 승인을 받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고 노력합니다. '그린라이트 면접 대비 실전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자격 요건과 인터뷰가 엄격합니다. 디그니타스에 당도한 사람들이 주로 말기암이나 난치병 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인 이유입니다. 알츠하이머나 치매 환자는 대체로 '너무 늦게 결정'하니까요.

과하지 않고 티나지 않게 배려하며 그저 자연스럽다고 느껴지도록 일을 하는 디그니타스 직원의 안내가 인상적입니다. 안락사에 관한 글이 견지해야 자세입니다. 생명 경시 풍조를 들먹이며, 혹은 그저 관적이어서 그렇다는 거들떠볼 필요 없는 세평도 그렇거니와 놀라운 체험담, 살아갈 자산으로서도 동행자살이 유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모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전시가 한창입니다. “젊은 모색”은 국현에서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신인작가 발굴 프로그램입니다. 4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올해는 이례적입니다. 미술이 아니라 그래픽, 건축, 가구, 미디어,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초청해, 1986년 개관한 과천 미술관에 개입하고 주석을 다는 전시로 꾸렸습니다. 미술관에서 디자인과 건축을 전시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시대이지만, 분과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건축, 그래픽디자인과 가구디자인 등에서 두각을 보이는 작가들이 미술관 작업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살피는 재미가 제법입니다. 관람 포인트는 또 있습니다.

저는 요 지점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관의 화이트큐브가 미술이 아닌 (그래서 온전히 예술이 아니라고 여겨지곤 하는) 타 분야의 작업을 어떻게 수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 역으로 건축과 디자인 등이 미술관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등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어느 것 하나 답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지요. ‘젊은 모색’ 전시를 통해 건축과 디자인 전시의 효과를 묻는 셈입니다. 9월 10일에 막을 내리니 그리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8월은 빨리 가니까요. 

* 사진: 김주영

간식

딸기꽁꽁

🌱죽순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서 파는 펜슬형 아이스크림꽁꽁 딸기, 오미자, 포도, 우유, 감귤 맛이 있습니다. 우유 맛을 빼고 전부 맛보았는데요, 딸기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작년 여름부터 저는 냉동고에 딸기꽁꽁이 쟁여 놓고 살아요. 끈적한 단맛이 아니라 상큼하고 맑은 단맛이 중독적입니다. 얼음을 녹이겠다고 튜브를 조물조물하다 보면 더위도 잠시 잊을 있어요. 휴가에는 응당 하루 이상의 꽁꽁을 먹어줘야죠!


* 사진: 한살림 홈페이지

카페

벌새

🦈조스바


어느 순간 필터 커피에 시들해진 시점에 우연히 한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원목과 LP로 둘러싸인 공간에 빈티지한 찻잔이 2층으로 쌓여있습니다. 아늑한 공간에 커피 향이 가득합니다. 저는 '페루 라 팔마 게이샤'를 마셨어요. 잔을 비울 때까지 향이 그대로였어요. 커피를 다 마시면 카페오레를 서비스로 줍니다. 동행한 사람이 카페오레를 마셔서 서비스로 콜롬비아 핸드드립을 대신 받았어요. 오는 손님들이 한 명당 두 잔씩 마시더라고요. 커피 덕후들이 여기 다 모였구나 싶었습니다.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좋았어요🙂               아쉬워요🤔
책 좋아하는 친구에게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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