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에서 <기록 서랍 만들기> 리추얼 메이커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리추얼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좀 설명해주세요.
사실 일상을 기록하고 일기를 쓰는 게 무슨 변화를 가져오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기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것은, 나로 사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게 뭐지? 그 답을 오래 찾아 헤맸는데, 그게 그냥 사는 일이더라고요.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고 어떤 마음이 들었고, 오늘 하루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나의 평범함이 나만의 고유함이라는 것을 기록 리추얼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리추얼 메이트들이 기록한 하루를 보면 모두 너무 달라요. 리추얼을 함께하면 서로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모두 고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내가 내 하루를 기억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해 줄 사람이 없는 거죠. 일상 기록을 처음 시작하는 메이트들에게는 어떤 팁을 주세요?
기록 서랍 리추얼은 사실 별것 아니라 자기 주제를 정해서 그냥 계속 쌓아가는 거예요. 사실 일상 기록하면 뭐부터 해야 하지? 라고 좀 막막해지거든요. 저는 그래서 늘 3단계로 이야기해요.
1. 우선은 자기 일상이나 욕구를 잘 들여다보고 내가 기록하고 싶은 주제를 정하는 거예요
2. 그리고 2단계는 어떤 서랍을 사용할지, 그러니까 어디에 기록하면 좋을지를 정하는 거죠.
3. 마지막으로 이름을 붙여요. 비유적으로 정말 기록 서랍이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이름표를 붙여둔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정하면, 내 기록에 훨씬 애착도 생기고 만약 공개하는 기록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기도 훨씬 쉽거든요.
<오늘 도착한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아침 기록하는 것도 사실 별거 아닌데 동기부여도 되고 내 일상을 기획하고 콘텐츠로 만든다는 느낌이 들어서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리추얼 할 때 메이트분들이 서랍 정하고 이름 붙이고 하는 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요.
내 기록의 이름을 정해주는 것 너무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김춘수 시간의 <꽃>처럼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조금 더 의미가 부여되는 것 같달까요?
보통은 <오늘의 00> 아니면 <00 일기> 이렇게 이름을 정하면 쉬워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구름 수집 @clouds.soozip)>이나 <산보일기, @sanppo_diary> 계정 같은 걸 보여드리는데, 일단 이렇게 나만의 이름을 붙인 기록 서랍을 가지고 있으면 매일 하지 않아도 그런 순간을 만났을 때 '아 맞아 나 00 서랍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드니까 바로 거기에 넣을 수 있어요. 카페 좋아하는 분들은 <카페 일기>, 가드닝 좋아하는 분들은 <가드닝 일기> 이런 식으로 뭐든 될 수 있어요. <오늘의 아침밥>이라는 주제로 매일 아침을 기록하는 분도 있고 <해냄 일기>라는 이름으로 오늘 내가 해낸 것 하나씩만 적어보겠다고 시작하신 분도 있고 <오구오구일기>라고 나를 오늘 하나씩 칭찬해주겠다고 정한 메이트분도 있었는데 귀여웠어요.
신지님 리추얼은 유난히 반복해서 듣는 메이트들도 많은 것 같아요.
매일 <오늘의 아침밥>을 남겨주신 상현 님과 <행복의 ㅎ>을 저보다 더 꾸준히 올려주시는 인경 님이 떠올라요. 상현 님은 5개월 정도 리추얼을 하셨는데 우리가 5개월 동안 상현 님의 아침밥을 함께 본 거잖아요. 상현 님이 5개월 동안 더 건강해지셨고,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서 졸업하는 느낌으로 손뼉 치면서 보내드렸어요. 인경 님은 회사가 정말 바쁜데도 바쁜 하루를 쪼개서, 예를 들면 회사 화장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노을이 너무 예쁜 순간이 있잖아요, 기록을 남겨주셨어요. 아무리 힘든 하루라도 좋은 순간 하나는 꼭 있다는 걸 인경 님의 기록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기록하면 좋다는 건 다 알지만, 꾸준히 하기가 힘들잖아요.
우선 거창하게 하려고 하면 망하는 것 같아요. <오늘 도착한 아침> 기록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초고가 될 수 있는 정도의 한 문단을 써야지! 이렇게 시작했으면 아마 진작 그만뒀을 거예요. 근데 그냥 아침 하늘을 찍은 후에 쓰고 싶은 걸 간단히 적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찮게 하는 거예요. (웃음) 남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거 남겨볼걸, 아깝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아직 늦지 않았어요. 늦었다고 생각하는 날부터 1일. 하찮게 시작하고 기록하면 돼요!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