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도 식물 잘 키우나요?
Jan 10,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8
미국 바위손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식물을 키우다보면 전문가의 손길이 절실한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특히 식물의 정확한 이름이 궁금할 때 ‘식물학자를 한 분 알았으면 참 좋겠다’ 싶거든요. 그날 제가 일면식도 없는 김진옥 식물분류학 박사를 찾아간 이유였습니다.  


몇 달 전에 ‘공룡시대 식물키트’ 하나를 샀습니다. 어린이 교육용 키트였지만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키트 안에는 식물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설명서에는 이 식물을 ‘공룡식물’로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영상을 찍기 위해서는 좀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졌죠. 분명히 같은 모양의 식물인데 ‘부활초’ ‘바위손’ ‘부처손’ 등 온갖 이름이 난무했습니다. 결국 영상 촬영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김진옥 박사가 펴낸 <극한 식물의 세계>라는 책에서 ‘바위손’을 소개한 꼭지를 읽게 된 것입니다. 


‘후훗,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만.’ 


그날 바로 김진옥 박사에게 이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바위손 영상을 준비중인데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며칠 뒤 인터뷰 일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김진옥 박사가 식물학예사로 근무하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는 마침 ‘바위손’ 전시도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치고는 아귀가 딱딱 맞으니 ‘주작’을 걱정할 판이었지만, 바위손 표본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어, 제법 그럴 듯한 영상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식물의 이름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식물분류학 박사이니 당연히 식물의 종은 정확히 분류하겠지만 집에서도 식물을 잘 키우는지 궁금했거든요. 김진옥 박사는 부끄러운 듯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제가 식물 전공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꼭 물어봐요. ‘이 식물은 물을 얼마에 한 번씩 줘야 하나요?’ ‘이 식물은 어떻게 키우나요?’ 하고요. 하지만 저는 식물은 잘 못 키운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판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저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사람들은 주로 저에게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라거나 ‘읽을 만한 책 추천 좀 해주세요’라고 묻습니다. 저 역시 원고 읽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저는 책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ㅎ;


“물론 식물분류학자 중에서도 식물을 잘 키우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맞아요. 출판편집자 중에서도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바로바로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말을 이어갑니다.


“저는 멸종위기 식물을 찾아 조사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보다는 자생지에서 자라는 식물에 더 관심이 많아요. 전국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지구에서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식물을 발견하게 되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끼거든요. 꼭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에요!”


비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관엽식물을 키우는 식물집사도 화원에서 위시리스트에 있던 무늬 식물을 ‘득템’할 때 그런 희열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식물학자와 식물집사는 모두 식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식물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직업적으로 희귀식물을 찾아다니면서 조사를 하지만, 취미로 희귀식물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으로 기록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분들은 절대 서식지를 훼손하지 않아요. 식물의 사진만 찍고 돌아오죠. 심지어 취미인 커뮤니티 내에서 그 서식지가 공유되더라도 절대 훼손되지 않습니다. 일종의 불문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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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은 대부분 농장에서 키워낸 개량종이거나 번식 개체가 많지만, 최근에는 자생지에서 채집된 원종도 적지 않게 수입되고 있습니다. 특히 테라리움에서 키우기 좋은 소형식물인 정글플랜츠(jungle plants)는 처음 국내에 들어올 때, 상당수가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이나 수마트라섬에서 채집된 야생 개체들이었죠.


식물 콜렉터들은 농장에서 번식된 개체보다 원산지에서 채집된 야생 개체를 선호합니다. 야생 개체는 발색이 더 좋다거나, 원종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식물이 멸종 위기에 놓이는 이유가 콜렉터들이 야생 개체를 선호하는 취향이 한몫하는 것입니다. 


저는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테라리움에 사는 식물에게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오래된 잎들이 누렇게 되면 잎을 자르거나 떼어내버리지 않고, 그 잎들을 다시 잘게 잘라 테라리움의 흙 위에 뿌려두는 것입니다. 자연에서는 낙엽이 썩으면서 영양분 역할을 하는 부엽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리 상자라는 작은 생태계에 인위적인 순환체계를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하엽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일 정도는 타향살이하는 식물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하는 거죠. 


사실 야생 개체에 대한 선호도는 식물시장보다 생물시장이 더 강합니다. 생물 번식이 훨씬 더 까다로운 이유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종의 보존을 위해서는 번식된 개체를 키우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막의 작은 표범 레오파드 게코>의 저자 필립 드 보졸리는 ‘인기 반려동물인 레오파드 게코를 야생 개체보다는 번식 개체를 키우는 것이 사육자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해요. 비단 생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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