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의뢰 메일이 오면 스팸메일이 아닌 이상 거의 다 받았다.

가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일을 되도록 많이 경험하고 노하우를 쌓고 싶었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메일을 통해서도 좋은 의뢰인과 좋지 않은 끝이 예상되는 의뢰인을 알아보게 되었다. 마치 카페나 매장 일을 하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 손님이 진상일지 아닐지를 알아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좋지 않은 의뢰인이 될 수 있는 신호를 몇 가지 들어보면.


<가장중요!!!> 내 이름을 안쓰거나 틀린다.


프로젝트 설명이 장황하나 요점이 없어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없다.

  1. 작업 일정이 터무니없이 짧다.(평균적으로 최소 3주 이상은 필요하다)
  2. 무조건 작업 가격을 내가 정해서 말하도록 유도한다.
  3. 작업물 받는 일정만 챙기고 정산 날짜는 말하지 않는 곳.
  4. 양도 계약서를 선호하는 곳. 
  5. 예산이 터무니없이 적은 업체

등등이 있다. 내 이름을 틀리거나 쓰지 않은 업체는 나중에는 답장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의 일을 두고 여러 작가에게 제안 메일을 돌리면서 이름조차 제대로 쓸 여력이 없는 곳과 일하면 작업물이나 정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경험 중에 일화를 말하면 십 년 전에 어느 업체에서 신년 달력을 만들기 위해 메일을 보냈는데 읽어보니 내 성씨를 틀리게 적었고 읽는 순간 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답장을 했었는데 일을 조율하는 과정 중에 담당자가 일주일 동안 연락이 두절되어버렸다. 잠수를 탄 것이다. 메일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며칠이 더 지나자 메일로 작업 작가가 바뀌었다면서 메일을 보냈다.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함께 일을 했다면 더 좋지 않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담당자의 잠수는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외주 작가의 잠수 역시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잠수를 타거나 마감이 늦은 적이 단 한번도 없기에 적어본다.) 나도 회사를 다니면서 외주 작업자와 소통한 일이 있었기에 이해는 간다. 대한민국의 회사들 중에 부족한 예산으로 일을 진행하는 곳이 많고, 담당 직원 한 명이 여러 업무를 쳐내는 상황이 많아 여러 일들을 하다 보면 외주작업자를 챙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을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과 예감이 좋지 않은 의뢰업체에게  일 진행 중에 외면당하는 일은 다른 문제다.


의외로 다양한 분야에서 의뢰를 받았다. 그중에서는 답장을 기피하게 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제조업을 바탕으로 작가들과 콜라보를 하여 제품을 만드는 곳이다.(물론 업체와 담당자마다 편차가 크다.) 메일을 보면 정산 방식이 인세 방식이라던가 어딘가 이상한 계산 방식으로 자신들이 새로 시작하는 굿즈 사업에 작가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편이라 환경오염도 싫고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 작업물이 제품화되어 돌아다니는 것도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런 업체들은 여러 작가들에게 메일을 돌려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작가 한 명 한 명 신경 쓸 수 없다. 대규모 업체거나 제조업을 오랫동안 했던 곳이 아니라면 신생업체와의 콜라보는 지양하는 것을 추천한다. 토사구팽 당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덧붙여 쓰면, 모든 업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잘 알아보고 진행하기를 바랄뿐이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담당자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없다면 나중에 엎어질 확률이 높고 진행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 프로젝트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진행하다 보니 조율이 필수이다. 분명하게 전달받은 내용도 의뢰업체 내부 사정으로 전면 수정이 될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려는 곳은 자자할 변경이 있어도 문제없이 끝나지만 처음부터 작업 관련 사항을 모호하게 설명하는 곳은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왜냐 하면 담당자의 담당 권한이 너무 적어 윗선에서 급작스러운 변경에 영향을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글을 잘 쓸 수 없지만 진심을 글자에 담아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문체가 화려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법이다. 이렇게 쓰는 분들의 메일은 가격보다는 담당자와의 일 자체가 의미가 있어 거의 모두 진행하는 편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돈은 늘 중요하다. 아주 가끔 돈보다 일의 의미를 앞에두는게 내 생활에 타격이 없다는 것을 덧붙인다. 


돈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좋은 의뢰인을 찾은 법이 그 사람의 진심이라니 참 어려운 기준이다.


하지만 진심과 진심은 늘 통하는 법이니까 어쩌다 한번은 사람을 한번 믿어보는 도박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