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죽인 범인을 찾아주세요!
Nov 29, 2022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5
알로카시아 핑크 드래곤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지난 겨울, ‘아피스토 식물병원’으로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알로카시아 프라이덱을 안고 왔죠. 식물은 말라버린 잎 2장과 새 잎 1장을 겨우 달고 있었습니다. 줄기는 성인 엄지손가락 굵기였고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는 언니한테 선물로 받았는데 처음엔 잎이 풍성했거든요.”


목대의 굵기를 보니, 전 주인이 제법 튼튼하게 키웠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대략 10장의 잎이 나온 흔적이 있었죠. 유묘 때부터 키웠다면 적어도 1년은 되어야 나올 수 있는 잎의 수였습니다. 


“처음엔 큰 잎 3장 정도가 있었는데, 새 잎 한 장이 나오면 그 전의 잎 한 장이 시들더라고요.”


의뢰인의 잎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노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응애가 창궐하고 있던 거죠. 응애는 식물의 잎이나 줄기에 있는 세포액을 빨아먹는 해충입니다. 응애가 먹은 자리는 잎이 노랗게 변합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잎 한 장에도 응애가 있었으니, 그전에 살았던 잎이 새 잎에게 응애를 물려주고 죽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과감하게 처방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의뢰인에게 가위를 건넸습니다.  


“의뢰인은 응애와 잎 한 장을 키우고 있었군요. 아예 남은 잎 한 장도 잘라버리세요.”

“아…?”

“응애는 해충약으로 방제가 가능하지만, 아주 질긴 녀석입니다. 잎이 하나밖에 없으니 차라리 깔끔하게 새로 시작합시다. 알로카시아는 일종의 구근식물이기 때문에 잎이 없어도 습도를 높여서 키우면 다시 새 잎을 키워낼 수 있습니다.”


의뢰인은 그 자리에서 남은 잎 한 장을 잘라냈습니다. 그다음, 알로카시아의 뿌리를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뿌리는 식물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뿌리의 건강 상태에 따라 처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괜찮으시다면, 화분을 엎어서 뿌리를 한번 보고싶습니다.”


화분을 뒤집어 흙을 쏟아내려는 순간, 흙보다 먼저 힘 없이 쏙- 빠져나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줄기였습니다. 잔뿌리가 다 녹았기 때문에 줄기는 몽둥이처럼 깔끔한 상태였죠. 대부분의 알로카시아가 죽는 첫 번째 이유가 응애 피해라면, 두 번째는 뿌리의 과습입니다. 의뢰인의 알로카시아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던 겁니다. 

 

“음…. 이제야 모든 게 분명해졌군요. 의뢰인께서 가져온 이 알로카시아는 1차로 응애 피해를 입으면서 잎이 시들어간 걸로 보입니다. 잎이 병들자 잎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잎은 한 장만 남게 되었죠. 그나마 남은 한 장의 잎마저도 응애를 물려받았으니, 제대로 광합성을 못했을 테고요.”


이어서 알로카시아가 죽음을 목전에 둔 두 번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잎의 수가 적으면 광합성과 증산작용을 못하게 되니 잎에서 물은 덜 증발하게 됩니다. 그러면 뿌리도 물을 덜 먹게 되겠지요? 결국 화분 속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물을 가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화분 속의 물이 많아지는 것, 이것을 우리는 ‘과습’이라고 부릅니다. 알로카시아는 유난히 잔뿌리가 많아서, 과습에 잘 노출되어 있어요. 그래서 잔뿌리가 많은 식물일수록 화분의 공기는 더 잘 통해야 합니다. 자, 결론을 냅시다. 알로카시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범인은 바로… 응애와 과습입니다!” 

“명탐정 코난님.. 아니, 아피스토님, 그럼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처음 키웠던 알로카시아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

제가 처음 키운 알로카시아는, 알로카시아 핑크 드래곤(Alocasia sp. “pink dragon”)입니다. 키운 지 4년이 넘다보니 이제 제법 대품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핑크 드래곤은 이름 그대로 핑크빛 줄기 위로 용의 거친 등껍질 같은 잎을 펴내는 매력적인 식물이에요. 저는 핑크 드래곤 외에도 여러 알로카시아를 키웠지만, 용케 이 친구만 한 번의 부침도 없이 잘살고 있습니다.


저도 그 이유가 궁금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토분에 비밀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핑크 드래곤을 심은 이 토분은 농사를 짓는 지인의 텃밭에서 굴러다니던 ‘막토분’을 가져온 것이죠. 형태는 투박하고 질감은 거칠지만 통기성만큼은 뛰어났던 겁니다. 낮은 온도에서 소성하는 전형적인 저화도 토분이었던 거죠. 저화도 토분은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다른 화분에 비해 물이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습니다. 화분이 숨을 잘 쉰다는 반증입니다.


이제는 화분이 작아 보일 정도로 컸지만 여전히 풍성한 잎을 내주고 있습니다. 뿌리가 건강하다는 뜻이겠지요. 알로카시아가 겨울에 유독 몸살을 앓는 이유는 과습이 한몫합니다. 온도가 낮아지면 열대관엽식물은 급격하게 성장이 더뎌집니다. 여름 때와 같은 루틴으로 물을 주다가는 화분의 물마름이 느려지면서 알로카시아의 잔뿌리들이 순식간에 녹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가늘수록 흙속의 뿌리들은 서로 쉽게 엉키게 되고, 그러면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뿌리는 숨 쉬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흙속의 공기 흐름이 좋아야 하는 것이죠. 알로카시아는 겨울이 오면 특히 물을 적당히 ‘굶길’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반려식물 인테리어>라는 책에서 영국에 사는 사진가 제스카의 물 주는 법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식물을 사랑하지만 솔직히 말해 약간 험하게 다루는 편이에요. 대부분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만 가끔 물을 줍니다. 말하자면 무시하듯 대해서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지만 제 나름으로 기억하는 성장기 때가 되면 저절로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물론 식물들에게 말도 걸기도 하고요.              


이 얼마나 긴밀한 유대감의 결과인지. 대략 식물과 이런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을까요.


“물 줘.”

“조금만 기다려.”

“빨리 줘.”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진짜 지금 물 안 주면 나 죽는다.”

“알았어.”

“...?”

“내일 꼭 줄게.”

“(부글부글)”


만약 식물과 집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물주기의 접점을 찾아낸다면, 그 어떤 매뉴얼도 필요없겠지요. 어쩌면 식물과의 밀당이 관심의 시작인지 모릅니다. 


-아피스토 드림

 

*유튜브 <논스톱 식물집사 아피스토TV>의 "다 죽은 알로카시아 살리는 법" 편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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